1940. 06. 25. |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일본어음 표기법」, 「조선어음 라마자 표기법」, 「조선어음 만국음성기호 표기법」을 확정·공표함. |
1940. 11. 01. | 새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정통 9월 상한’이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한글날의 날짜를 10월 9일로 고쳐 발표함. |
1942. 10. 01. | ‘조선어학회 수난’이 시작됨. |
1945. 08. 25. | 긴급 임시총회를 열어 조직을 정비(간사장: 이극로, 간사: 최현배·김병제·이희승·정인승·김윤경)하고 “국어교본 편찬위원회”를 구성함. |
1945. 09. 08. | 조선어사전 원고를 서울역 창고에서 찾음. |
1945. 09. 10. | 서울 청진동 188번지로 학회 사무실(청진동 회관)을 옮김. |
1945. 10. 09. | 499돌 한글날 기념식을 열고, 이윤재·한징 선생 추도식을 엶. |
1946. 02. 03. | 임시총회를 열어 임원의 명칭 ‘간사(장)’를 ‘이사(장)’로 바꾸는 등 회칙을 고치고, 임원을 새로 뽑음(이사장: 장지영, 이사: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김병제, 정인승, 김윤경). |
1946. 02. 12. | 조선어학회 부설 “한글사”를 설립함. |
1946. 04. 01. | 4년 동안 중단되었던 『한글』 제94호를 펴냄. |
1946. 10. 09. | 500돌 한글날 기념식을 열고 『훈민정음』 원본(해례본)을 영인하여 펴냄. |
1946. 10. 13. | 500돌 한글날을 기리어 영릉을 봉심하고 참배함. |
1947. 10. 09. | 『조선말 큰사전』 제1권을 펴냄. 501돌 한글날 기념식을 서울에서는 천도교당에서 열고, 이때부터 경기도교육회와 공동으로 여주 영릉에서도 치름. |
1948. 05. 15. | “세종날”(음력 4월 10일)을 제정하고 숙명여중 강당에서 551돌 세종날 기념식을 엶. |
1948. 10. 01. | 세종 중등국어교사 양성소 제1회 입학식을 가짐. |
1948. 10. 09. | 숙명여중 강당에서 502돌 한글날 기념식을 엶. 이날 정부에서는 한글학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법률 제6호)」(1948. 10. 01. 가결) 공포식을 성대히 베풂. |
1949. 03. 24. | “재단법인 한글집”의 설립을 허가받음. |
1949. 05. 05. | 『조선말 큰사전』 제2권을 펴냄. |
1949. 05. 15. | 구왕궁 아악부, 중앙관상대, 진단학회와 함께 배재중학교(정동) 강당에서 552돌 세종날 기념식을 엶. |
1949. 06. 04. |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이 됨(대통령령 제124호). |
1949. 06. 12. | 학회 안에 “한글전용촉진회”를 둠. |
1949. 10. 02. | 학회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꿈. 이날 제안된 이름은 “한글학회, 국어학회, 국어연구회, 우리말학회, 한글갈모임, 대한국어학회, 한국어학회, 대한어학회” 들임. |
1949. 10. 09. | 부민관(오늘날의 세종문화회관)에서 503돌 한글날 기념식을 엶.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맞춤법 간소화’를 언급으로써 ‘한글맞춤법 간소화 파동’이 촉발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