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 03. 03. | 조선총독부로부터 조선어사전(나중의 『조선말 큰사전』)의 출판을 허락받음. |
06. 25. |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일본어음 표기법」, 「조선어음 라마자 표기법」, 「조선어음 만국음성기호 표기법」을 확정·공표함. |
11. 01. | 새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정통 9월 상한'이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한글날의 날짜를 10월 9일로 고쳐 발표함. |
10. 20. | 『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펴냄. |
12. 01. | 『한글』 제82호를 펴냄. |
1941. 01. 15. | 위의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비롯한 4개의 표기법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으로 펴냄. |
1942. 01. 01. | 『한글』 제92호를 펴냄. |
봄. | 『조선말 큰사전』 활자 조판을 시작함. |
05. 01. | 『한글』 제93호를 펴냄. |
10. 01. | ‘조선어학회 수난’이 시작됨. 학회의 임원과 중요 회원이 모두 구속되어 함경남도 함흥과 홍원으로 붙잡혀 가고, 학회의 모든 일이 중단됨. |
1943. 12. 08. | 이 윤재 선생이 함흥감옥에서 별세함. |
1944. 02. 22. | 한 징 선생이 함흥감옥에서 별세함. |
1945. 08. 18. | 광복과 더불어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고생하던 회원이 풀려나 서울로 돌아옴. |
08. 19. | 임원과 직원이 모여 조선어학회 재건 문제를 의논함. |
08. 25. | 긴급 임시총회를 열어 이 극로, 최 현배, 김 병제, 이 희승, 정 인승, 김 윤경을 간사로 뽑아 학회 조직을 정비함(간사장: 이 극로). '국어교본 편찬 위원회'를 구성함. |
09. 08. | 조선어사전 원고를 서울역 창고에서 찾음. |
09. 10. | 서울 청진동 188번지로 학회 사무실(청진동 회관)을 옮김. |
09. 11. ~ 24. |
제1회 '국어과 지도자 양성 강습회' 개최. 사범부 659명 수료. |
10. 09. | 오전 10시 반부터 천도교당에서 499돌 한글날 기념식을 가짐. 이어서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옥사한 이 윤재 선생과 한 징 선생 추도식을 가짐. 그리고 거리행진을 벌임. |
10. | 『한글 첫걸음』을 편찬하여 미국 군정청 학무국에 무상으로 넘겨 줌. |
11. ~ 1947. 01. |
『초등국어 교본』 상·중·하, 『중등국어 교본』 상·중·하, 『초등 공민』 1·2, 3·4, 5·6, 『중등 공민』 1·2, 3·4 등 11종의 교과서를 편찬하여 미국 군정청 학무국에 무상으로 넘겨 줌. |
1946. 01. 09. ~ 18. |
제3회 '국어과 지도자 양성 강습회' 개최. 132명 수료. |
02. 03. 03. 10. |
연구 발표회를 엶. 임시총회를 열어 임원의 명칭 '간사(장)'를 '이사(장)'로 바꾸는 등, 회칙을 고치고, 장 지영, 이 극로, 최 현배, 이 희승, 김 병제, 정 인승, 김 윤경을 이사로 뽑음(이사장: 장 지영). |
02. 12. | 조선어학회 부설 기구로 '한글사'를 설립함. |
04. 01. | 4년 동안 중단되었던 『한글』을 되살려 제94호를 펴냄. |
04. 06. | 이 윤재 선생 묘비(경기도 광주군 방이리)를 세움. |
10. 09. | 『훈민정음』 원본(해례본) 영인하여 펴냄. 덕수궁에서 500돌 한글날 기념식을 성대히 벌임. 500돌 한글날 기념 강연회를 엶. |
10. 16. ~ 31. |
500돌 한글날 기념으로 제2회 조선어학 도서 전람회를 엶. |
12. 26. | 학회 창립 ‘옛25돌’ 기념식을 가짐. |
1947. 03. 20. | 『한글』 제99호를 펴냄. |
10. 09. | 『조선말 큰사전』 제1권을 펴냄. 천도교당에서 501돌 한글날 기념식을 가짐. |
11. 09. ~ 12. 28. |
'사범부 3과 지도자 양성 강습회'를 통하여 국어과 지도자 배출. |
12. 14. | 연구 발표회를 엶. |
1948. 01. 11. 02. 08. 03. 14. 05. 16. 06. 14. 07. 14. 10. 16. 12. 12. |
월례 연구 발표회를 엶. |
02. 29. | 『한글』 제103호를 펴냄. |
04. 10. (음력) |
'세종날'을 제정하고, 숙명여자중학교 강당에서 551돌 세종날 기념식을 함. |
07. 18. | 국회에 ‘한글로 된 헌법을 정본으로 삼기’로 한 것에 대한 감사문 보냄. |
07. 24. | '한글전용법 제정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회 문교·후생 위원회에 건의문 제출. |
08. 08. | '세종 중등국어교사 양성소' 설립 인가를 문교부로부터 받음. |
08. 28. | 서무부 이사 이 극로의 사표를 수리함. |
10. 01. | 세종 중등국어교사 양성소 제1회 입학식을 가짐. |
10. 09. | 숙명여중 강당에서 502돌 한글날 기념식을 가짐. 『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 한글판을 펴냄(제235판). |
1949. 01. 09. 11. 27. |
연구 발표회를 엶. |
01. 08. | 『한글』 제105호를 펴냄. |
03. 24. | '재단법인 한글집'의 설립을 허가받음. |
05. 05. | 『조선말 큰사전』 제2권을 펴냄. |
05. 15. | 552돌 세종날 기념식을 가짐. |
06. 04. |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이 됨(대통령령 제124호). |
06. 12. | '한글전용촉진회'를 만듦. |
09. 01. | 세종 중등국어교사 양성소 제2회 입학식을 가짐. |
09. 25. | 정기총회에서 임원을 개선함(이사장: 최 현배). |
10. 02. | 정기총회를 속개하여 학회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꿈. |
10. 09. | 부민관(오늘날의 세종문화회관)에서 503돌 한글날 기념식을 기짐. 이 승만 대통령이 ‘한글맞춤법 간소화’를 언급함. 그로써 ‘한글맞춤법 간소화 파동’이 촉발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