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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께 3: 흐린날 난 또 편지를 쓴다

조회수 : 517
사연 하나,
'가슴이 무겁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맥이 없다'...
요즘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들입니다.
생존자의 생생한 탈출 상황 묘사를 듣고 있으면 절박했던 상황이
그림처럼 눈앞에 그려지고,
흐생자들이 그 위급한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마지막
인사말인 '사랑해'를 남긴 이야기를 듣노라면 하루가 또 아픔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다가도 정규 프로그램이 나오는 저녁 시간에는 평소 즐겨보던 시트콤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이 나도록 웃기도 합니다.
아침에 울고 저녁에 웃는...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쉬이 변할 수 있음이 허탈스럽다가도 모두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생각을 해봅니다.

사연 둘,
전 강물을 참 좋아합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델라웨어 강이 흐르는데
그 강물 앞에 서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유히 흐르는 그 강물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4년 전, 제가 가장 사랑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떠나시기 이틀 전에 전화를 하셨는데 '공주야! 많이 보고 싶구나.'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아버지께선 '아이들 데리고 여름에 나오련?', '잘 지내겠지?'등으로
보고싶다는 표현을 대신 하시던 분인데 그 날은 직접적인 표현을 쓰셨습니다.
전 아직도 그 말씀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께서는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당신의 마지막 말씀이시란 걸...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 온 뒤에 전 하루가 멀다하고 델라웨어 강가를
서성이고 또 서성거렸습니다.
울어도 울어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지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가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강가에 주저앉아 강물을 아버지 삼아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하노라면 마음이 안정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흐르고 또 흐르는 강물이 부러웠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많은 분들이 흐르는 강물처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슴에 묻어둔 슬픔을 강물에 나눠주면서 갈 곳이 있어 흘러가는 강물 따라서
그렇게 사시길 기도 드리고 싶습니다.

사연 셋,
이번 여름에 친구 어머니께서 시집을 내셨습니다.
대학 시절, 친구 집이 학교 후문에 있던 관계로 배고플 때, 졸릴 때,
심심할 때마다 찾아가서 놀던 우리 집 같은 곳의 안주인이시던 어머님이
고희의 나이에 내신 시집은 참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교수님(친구 아버님)께서 '내 속옷을 팔아서라도 당신의 시집을 내 주리다.'라고
하셨다는데 늘 느껴지던 두 분의 사랑이 그 말 한마디에 다 들어있는 듯 싶습니다.
어머님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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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날 난 또 편지를 쓴다-김영임 시인-

흐린날 나는 또 편지를 쓴다
구 시월 여윈 바람 가슴께 다가와
견딜 수 없어 또 편지를 쓴다
누가 받아도 좋다
강여울에 물 흐르듯 이렇게 세월은 자꾸만 가는데
어쩔 수 없이 자꾸만 편지를 쓴다
부칠 수 없는 편지를 그렇게 자꾸만 쓰다보면
내 삶은 다 허비해버린 빈칸, 이젠 쓸곳이 없어
맨발로 나서보는 거리에 낙엽이 자꾸만 자꾸만
한 장의 편지가 되어 뒤쫓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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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이글을 누가 받으셔도 좋습니다.
쓰다가 삼천포로 빠져서 이 생각 저 생각하느라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또 다시 읽어보니 너무 유치해 보내지 말까 생각도 들지만
그냥 이렇게 너절너절 쓰다보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또 감사해야 할 분, 좋은 분들이 이렇게 많이 계셨나하고 놀랍기도 하고요...
여러분 선생님들 생각하며 이 글을 보냅니다.
어제보다 밝은 오늘이, 오늘보다 더 밝은 내일이
선생님들 곁에 함께 하시길 빌며...
존 레논의 Imagine 노래가 문득 생각나는 밤에,
필라델피아에서 정선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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