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꿀꿀합니다.
오늘은 토요일, 한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꿀꿀한 기분은 어제부터인데, 그 이유를 좀 풀고 싶
네요. 어제 전화를 두 통 받았습니다. 9월 초에 저희 한글학교 개학 안내 공고문을 작성해서 교민신
문등에 뿌리게 되었는데, 거기에 교사명단과 각 교사가 맡은 반도 주욱 적어서 같이 냈거든요. 그
걸 보신 분들 중에 등록에 관해 직접 해당교사인 저에게도 전화를 주신 분이 몇 분 계셨던 겁니다.
스물 몇 살 된 아들을 두었다는 어떤 아저씨는 지금 현재 멕시코인반을 맡고있는 저에게 물으셨습
니다. 우리 아들이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영국인 학교에 다녔고 어쩌고, 그러므로 당연히 영어는
잘 하고 어쩌고, 이제 장가 갈 나이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한국 며느리를 보아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데 이 아이가 한국 말 하는 건 거의 밥 줘, 배고파, 싫어....등 한국 어린이 다섯 살 수준 정도 되
는가 보더라구요. 그래서 자기 또래의 한국 애들을 만나도 영어나 스페인어로만 얘기를 하는 것 같
아서 걱정이라 한글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한국인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없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다 큰 아이를 실력대로 배치해서 초등학교 1학년 반에 넣으면 좀 그렇고, 멕시코인 성인
반에 같이 넣으면 어떨까....하는 게 골자였습니다. 실력대로 하자면 뭐가 좀 그렇습니까? 당연히 수
준에 맞춰 초등학생 반으로 가야죠. 정말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여
야만 하는 걸까요? 그리고 정말 더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이 땅에서 태어났다는 그 아들이 스무 해
를 살도록 부모가 한국말을 가르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그게 부끄럽지도 않고, 오히려 한국 애들
과 어울려 놀지마라, 한국말 하지 말고 집에서도 영어나 스페인어를 써라 (약간의 저의 상상력을 동
원해서), 아니면 아예 아무 개념없이 살다가, 이제와서 결혼이라는 문제 앞에 혹은 취직이라는 현실
적인 필요에 의해서 한국말이라는 게 자기의 모국어이니까 그저 몇 달 동안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
고 착각하는, 그리고 그게 전혀 부끄럽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자식이 얼마나 영어를 잘 하는지 모른
다는 게 그저 대견한 부모 앞에서 전 정말 분개했습니다. 두번째 전화도 거의 비슷한 내용이라 옮기
지 않겠습니다. 이런 한국 사람들이 전체 한인 사회를 대표한다고는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먹고 살
기에 바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하는 바이지만, 오히려 한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현실
적인 이유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보다 더 악착같이 그리고 더 엄하게 자식들이 한국말을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의 모습과 한국 사람의 이름으
로 살면서 한국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는 저 자신 조차 몸 둘 바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아니면 이제라도 가르치려는 그 부모의 깨우침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굳이 한글
학교에 나가는 교사기 때문이라거나 한글학회의 교사 연수회에 참여했었기 때문이라거나 하는 이
유를 달지 않아도, 자기의 뿌리에 관한 최소한의 개념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괜히 광
분해서 속으로만 펄펄 뛰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언젠가 저 자신도 멀리 한국을 떠나 자식이
생기고 바쁘게 생업에 몰두하다 보면, 지금 저 자신이 이렇게까지 성토하고 감히 무식하다 부르는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기분만큼은 잊지않고 자식을
키우고 싶은 왠지 비장한 각오 뿐입니다. 아직 시집도 못 간 주제지만...... 하여간 영어나 스페인어
나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진다는 것은 필요하고도 좋은 일이지만 그것
이 자기의 뿌리를 제대로 챙긴 바탕 위에서라야만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굳게 믿는 어설픈 이의 횡
설수설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만 꿀꿀한 기분 추스리러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