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그 동안 미국의 일(9-11이라 하죠?) 때문에 글쓰기조차 망설여지더군요.
이 곳에선 좀더 밝고 신나는 소식들을 전하고픈 마음에서인지 모릅니다.
두 가지의 마음으로 편안하게 글을 쓸 수가 없어서 한동안 뜸 했었죠?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그런 것 같더군요. 그런데 지금 다시 활기찬(?) 모습을 되찾은 기분입니다.
머나먼 한가위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죠? 그런데 참 많이 변한 것 같아요.
한가위만 되면 가장 먼저 떠올라야 할 송편보다는 먼 길을 가야할 걱정부터 앞서니 말예요.
교통과의 전쟁, 그와 맞물려 날짜와의 전쟁! 아니다 전쟁이란 낱말은 별로 좋지 않네요.
내려 갈 때, 올라 올 때 어떤 날짜에 어느 시간에 움직이는 것이 가장 빠를까?
하는 생각으로 잔머리 굴려야 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 버린 한가위, 아니 우리
명절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많이 속상합니다.
술익는 마을, 누렇게 펼쳐진 넓은 논과 녹색 띠를 두른 논두렁의 모습이 점점 잊혀져 가고
친구를 만나고 흩어져 있던 가족들을 만나는 반가움보다는 의무감으로 가득찬 명절 분위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꼬박꼬박 명절엔 시골에 갑니다.
이번에도 3박 4일의 고통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승용차 대신 여럿이 탈 수 있는
버스에 몸을 싣고 다녀 와서 조금은 덜 힘들었습니다.
함께 갔던 가족들도 만족해 하는 분위기였고... 특히 아이들이 참 신이 나 보였어요.
농촌엔 누렇게 벼가 익고 밭에는 이런 저런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들 사이로 시커먼 퇴비 조각들
이 널려 있고 산소 가는 길엔 우거진 수풀들이 정글을 헤치고 다니는 타잔으로 만들기에 딱 좋았
습니다. 낮밤을 술과 함께 하고 친구들과 함께 하고 또 미처 손대지 못한 가을 농사 마무리 작업
에 뛰어 들기도 했던 이번 한가위 여행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지만 또 다른 힘을 얻고 또 다른 희망을 안고 더 큰 미래를 짊어지고 다
시 돌아 왔습니다.
내일이면 또 갖가지 한글날 행사 준비로 시간 간줄 모르고 뛰어야 하겠지만 전 원래 일에 대한 두
려움이나 걱정은 애초에 갖지 않습니다.
모두들 바쁘겠지요. 그러나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곳에 오는 우리 모두에게는 한 가지 닮은 꼴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쁨을 주고 즐거움으로 일을 하게 하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한글'이란 낱말로 만났고, 그것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땀을 흘리고 있으니까요.
정말 좋습니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당신을 잊지 않는 시초이며, 우리 모두를 기억하게 하
는 힘이란 걸 잊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555돌 한글날을 뜻깊게 보냅시다! 물론 1년 365일을 모두 한글날처럼 지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요.......
오늘은 여기까지.......
2001. 10. 3. (그러 보니 10월이 되었군요.)
젊은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