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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미 선생님께 드리는 쓴소리

먼저 사례를 들겠습니다.

사례 1
한글학회 연수를 받던 어느 날 정선미 선생님이 앞에 나가 칠판에 뭔가를 쓰면서
마인드 맵에 대해서 긴 시간 동안 설명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정선미 선생님은 “알다”의 명사형을 “암”이라고 적었었고,
김 한빛나리 선생님이 그것은 “암”이 아니라 “앎”이라고 지적을 했었습니다.
물론 왜 그것이 “암”이 아니고 “앎”인지를 설명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정선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 배우셨죠?”

사례 2
“애매하다”와 “모호하다”를 설명하는 김 한빛나리 선생님의 글에 대해
정선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따옴표를 사용하여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혹시 이런 사실을 모르셨던 선생님들께서(그러실 리가 없겠지만)
한국어를 정확히 아는데 도움이 되었을 듯 싶습니다.”

사례 1의 경우
정선미 선생님이 칠판에 “암”이라고 적었을 때
저와 강재형 선생님, 그리고 홍혜성 선생님은 그것이 틀린 표기임을 곧바로 알았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잠깐 동안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으니까요.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정선미 선생님의 “여러분, 모두 하나 배우셨죠?”라는 말씀은
“나만 그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 그것을 모르지 않았었느냐”라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정선미 선생님이 “남들도 몰랐으리라”라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선미 선생님을 제외한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이미 그것을 알고 계셨을 수도 있는 것이므로
정선미 선생님의 “여러분, 모두 하나 배우셨죠?”라는 말씀 한마디에 모두 애매한 꼴이 된 것이지
요.

사례 2
괄호 속에 “그러실 리가 없겠지만”이라는 수사적 표현을 쓰셨지만 경우는 사례 1과 같습니다.
그리고 “애매하다”와 “모호하다”의 차이는 이미 연수 기간 동안에도 수업 시간에 언급이 있었던
것이며,
그 이전에도 그 차이에 대해서 숙고를 하셨던 선생님이 없으란 법은 없는 것입니다.

설마 정선미 선생님이 “내가 모르는 것을 남들이 알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사례 1과 2의 경우로 보아 그런 의식이 잠재해 있거나,
적어도 그런 식으로 자기의 실수를 일반화시키려는 경향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위에 인용한 정선미 선생님의 문장

“저를 포함하여 혹시 이런 사실을 모르셨던 선생님들께서(그러실 리가 없겠지만)
한국어를 정확히 아는데 도움이 되었을 듯 싶습니다.”에서

“아는데”는 “아는 데”로 고치고, “듯 싶습니다”를 “듯싶습니다”로 고쳐야
바른 띄어쓰기가 된다고 지적을 하면
또 정선미 선생님께서는
“다른 선생님들도 이번 기회에 모두 띄어쓰기 하나 배우셨지요?”라고 말씀하시렵니까?
“듯싶다”를 하나의 보조형용사로 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혹시라도 정선미 선생님의 마음이 상하지 않으실까 저어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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