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독일 뒤셀도르프입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 예정에 없던 쾰른으로 가시게 된 사건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아래 네덜란드에서 강재형 선생님이 쓰신 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3일 밤 이 소식을 접한 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작년부터 온갖 어려움 속에서 추진하며 조정된 일정인데
결국은 이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가 생각하니
분노 비슷한 그 무엇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입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뒤셀도르프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분은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당연하지요.
이번 행사는 교회와 무관한 일이었으니까요.
다만 뒤셀도르프의 경우 강연 날짜가 일요일이고,
장소 임대료를 절약하고,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을 고려하여
강연 장소로 교회를 택했을 뿐입니다.
뒤셀도르프 목사님이 아무것도 모르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두 분 강사 선생님은 잠시 동안 연락이 불가능한 일종의 실종 상태였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도착 시간에 역으로 마중을 나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사실을 우선 저희 교장 선생님에게 알렸습니다.
뒤셀도르프 한인회장을 비롯하여 마중을 계획했던 분들에게 마중 취소를 통지해야 했던
교장 선생님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당장 쾰른 교회로 같이 가자면서
쾰른 교회 예배 시간이 언제인지, 주소가 어디인지를 알아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진짜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분노에 가득 찬 명령이었습니다.
저는 곧 쾰른 교회의 예배 시간과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이런 상황을 전해 들은 강재형 선생님이 수고를 하셔서
두 분 선생님의 소재가 파악되고 이만열 선생님과 제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통화의 내용은 여기에 공개하지 않겠습니다만, 통화의 분위기는
외교적으로 표현하면 약간의 긴장이 있었고,
한국식 예법으로 표현하면 제가 좀 무례했습니다.
공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경우에 벗어난 일이었습니다.
저희 교장 선생님은 이번에 강연 장소로 사용한 교회의 안수 집사이십니다.
그런데 학교 임원 및 교사 회의에서 강연 장소를 교회로 결정할 때
가장 망설이신 분이 바로 그 분입니다.
학교 일과 교회 일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학교 행사를 교회에서 하게 되면 마치 교회에서 일을 주관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것은 학교를 위해서 좋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쾰른 교회에서 두 분 강사 선생님을 중간에 모셔가서
이만열 선생님이 특강까지 하셨다니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사건에서 가장 황당한 꼴을 당한 것은 뒤셀도르프 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이만열 선생님의 명성을 잘 알고 있는 목사님은 저한테
예배 시간에 이만열 선생님의 특강을 듣고 싶다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저는 강연 장소를 빌려 쓰는 처지에 참 미안했지만 거절했습니다.
브뤼셀 등지의 목사들이 비슷한 요청을 했을 때 제가 얼마나 냉정하게 그러면 안 된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었는지 김 한빛나리 선생님이나 강재형 선생님, 홍혜성 선생님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제가 있는 뒤셀도르프에서 그런 부탁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요.
아, 그랬는데 쾰른 교회에서 두 분 선생님을 모셔가면서
뒤셀도르프 목사님하고 이야기가 다 되었다고 누군가 거짓말을 했으니
뒤셀도르프 목사님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사건은 뜻밖에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강연 시간에 맞추어 두 분 선생님을 모시고 나타난 쾰른 교회의 목사가
모든 것은 자기 잘못이라며 거듭해서 정중하게 사과를 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뒤셀도르프 한글학교 임원, 뒤셀도르프 교회 목사님,
그리고 한인회 임원들이 몹시 화가 난 상태에 있었으니
그의 사과가 아주 화기애애하게 부드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몹시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이 한동안 있었지요.
그렇지만 그 정도는 치러야 할 대가였다고 생각합니다.
뒤셀도르프 목사님과 이야기가 다 되었다는 거짓말을 누가 했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제가 끝까지 따지려다가 그냥 참았습니다.
그것을 끝까지 밝히려고 제가 덤벼들었으면 어제 강연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도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겠지요.
자, 이제는 드디어 강연장의 분위기를 전할 차례이군요.
참가 인원은 60여 명이었습니다.
뒤셀도르프 부근의 도시인 보쿰, 에센, 본, 쾰른 등지의 한글학교에서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대부분 참석하였습니다.
그래도 인구가 적다 보니 총 인원은 60여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고 질이겠지요.
강연을 들으면서 지난해 여름, 바로 그 여름의 우이동이 생각났습니다.
강연을 하셨던 여러 선생님들이 한 분 한 분 떠오르고
유국장님, 우리의 영원한 젊은 오빠 김한빛나리 선생님,
그리고 아! 미안하게도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 처녀 같았던 이쁜 아줌마,
또 연수에 참가했던 여러 선생님들의 모습이 아롱아롱 떠올랐습니다.
정자마을에 모여 앉아 함께 보냈던 그 아름다웠던 시간들...
다시 뒤셀도르프 강연장으로 돌아옵니다.
훈민정음을 강의하시는 김석득 선생님의 열정은
듣는 이들의 마음에 국어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가득 채워 주셨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2세들의 국어 교육에 대해서 차분하고 빈틈 없는 논리로
말씀하시는 이만열 선생님의 강연은 듣는 이들 모두의 공감 속에서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두 분 각각 1시간 30분 가량의 강연이 끝난 후 이어진 질문 답변 시간에는
질문의 기회를 얻고자 손을 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회를 맡았던 저희 교감 선생님이 시간 관계상 질문자를 제한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진지하고 엄숙하기까지 한 강연장이었습니다.
저는 그 강연회가 끝나는 순간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뜻 있는 일을 해냈다는 뿌듯한 느낌,
그것은 바로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가슴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강연이 모두 끝나고 늦은 저녁을 드신 두 분 선생님을
숙소로 모셔다 드린 것은 밤 11시가 넘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제가 교장 선생님과 같이 숙소로 가서 두 분을 역으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독일의 일정이 너무 여유가 없어서 두 분 선생님께 몹시 죄송했습니다만
교육원장도 아니고 교장도 아니고, 일개 교사에 불과한 저로서는
재정 문제와 맞물려 있는 그 일정을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제 능력과 권한의 한계를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이 시간 현재 함부르크 강연도 끝났을 시간입니다.
소식이 궁금하여 함부르크 교장 선생님 핸드폰으로 몇 번이나 전화를 했으나
전화를 꺼 놓은 상태인지 연결되지 않습니다.
교육원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함부르크 소식이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아직 연락이 없다고 하시면서 함부르크 교장 선생님은 믿을 만한 분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저는 함부르크 교장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모릅니다만,
교육원장님이 믿을 만하다고 말씀하시면 믿을 만한 것입니다.
교육원장님이 어떤 분인지는 제가 잘 아니까요.
스위스 홍혜성 선생님,
프랑크푸르트 출발, 스위스 도착 역은 홍혜성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조치를 취했으니
그 결과를 아는 대로 메일 보내거나 급하면 전화하겠습니다.
그리운 여러 선생님들,
제가 전해 드릴 수 있는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부르크나 프랑크푸르트의 소식을 알게 되면 다시 글 올리겠습니다.
뒤셀도르프 한인학교 교사 이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