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과 함께라면 어느 때든 좋습니다.
어느 날이 다시 온다 하여도
사람이 다르다면
내겐 아무 뜻도 즐거움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운 때가 있습니다.
때가 그리운 것 또한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때만 다시 온다면
사람은 누구와 함께라도 좋습니다.
정작 그리운 건 그 때, 그 날들일 뿐입니다.
나는 누구의 그리움일까요.
오는 그리움이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면
가는 그리움이 때를 가리지 않는다면
참 슬픈 일일 것입니다.
이 그리움의 가름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언젠가를 그리워합니다.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때가 하나가 될 때
나는 정말 그리움에 겨워
몸을 가누지 못할 것입니다.
* * * * *
그리움의 대상이 꼭 사람만은 아닐 것입니다.
흔하게는 고향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드물게는 스키 부대에서 보냈던 군복무 시절을 그리워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인간의 내장을 찢어 놓는 그리움은 역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나 장소는 언제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 어느 한편에 새겨져 있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만이
그리움의 원천이요, 여린 마음의 애탐이며, 순간마다 삭아드는 시간의 고갱이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리움은 참 귀합니다. 바쁜 현대인은 무엇이나 쉽게 잊으니까요.
컴퓨터의 전원을 끄는 순간 사라지는 메모리처럼 말입니다.
차라리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에 더 어울리는지도 모릅니다.
지나간 시간, 내가 그런 말과 행동을 했던 그 시간, 내가 그런 마음을 보였던 그 시간...
이런 것들을 추억하는 마음도 곧 그리움이지요.
내가 그 때 거기에 있었고, 거기에서 보았고, 거기에서 겪었던 모든 것을 시간으로 묶어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마음 없는 허공에 뜬 낮 반달의 나머지 반쪽이야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이런 그리움의 가름 속에서
그리움에 겨워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시간이 하나인 원시인일 것입니다.
진행이 빨라질수록 더뎠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원시인 말입니다.
슬픔과 괴로움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부터 정작 자신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가는 그리움이 시간을 가리지 않는데, 오는 그리움이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서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