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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줄에 매달은 사랑

10년 넘게 미국에 살았어도 아직도 불편한 점들이 꽤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날씨를 나타내는 섭씨와 화씨입니다.
한국처럼 영하 7도(섭씨) 그러면 아 춥구나 감이 오지만 15도(화씨) 그러면 추운지 덜 추운지 감이 잘 오질 않습니다.
38도 그러면 무지 덥겠구나 생각이 드는데 100도 그러면 왠지 달걀이 삶아질 것 같은 느낌이 먼저 듭니다.

오늘 아침 뉴스시간에 오늘 날씨가 15도 쯤 하는 추운 날이라기에 감기도 아직 덜 떨어졌고 (6기 선생님들! 감기 빨리 나으세요)꼭 나갈 일도 없어서 집 안에서 빙빙돌아 다녔습니다.
창 밖으로 우편 배달원 아저씨가 편지함에 편지를 넣으시는 모습이 보이길레
후딱 외투를 걸치고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채 문 밖을 나섰습니다.
편지래봐야 돈 내라는 각종 청구서와 선전물일테지만 가끔 씩 전해오는 예기치 못한 반가운 소식 때문인지 항상 '개봉박두'의 설레임을 가져다 줍니다.
바람이 무척 찬데 옆 집 꼬마아이가 한 2-3 미터 될까한 줄에다 자기 키만한 연을 매달고는 이리저리 왔다갔다합니다.
가끔 씩 연이 날아오르는지 확인하려고 돌아다보는 아이의 상기된 얼굴.
하지만 연은 아이의 어깨너머로 자꾸만 떨어져 내립니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잘 잡아서 손을 쭉 뻗어 가끔은 연줄을 툭툭 쳐주어야한다고 어설픈 가르침을 줄까하다가 아이의 눈이 마주치길레 그냥 씩 웃고 돌아섰습니다.
아이는 연이 날아오르건 안 날아오르건 상관없이 연날리기를 정말로 즐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발이 시려왔습니다.
맨발로 서서 아이를 지켜보는 동안 아주 어렸을 적 생각을 했었거든요.
어렸을 적에 전 하늘 한가운데서 너울거리며 춤추는 연이 무척 신기했어요.
특히 하늘 높이 띄운 연은 연줄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연 혼자서 한 자리를 이리저리 맴돌며 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연처럼 하늘 높이 올라가봤으면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가끔 씩은 오빠 따라서 연싸움 하는 곳에도 갔었는데 행여 오빠의 연이 친구의 연줄에 끊어먹히기라도 한 날에는 오빠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집엘 갔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오빠에게 아주 중요한 비법(?)을 하나 전해주셨는데(연줄에 양초를 칠하는 거였던가?) 그 덕분에 한동안 오빠의 연이 동네에서 막강한 연이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 자란 지금도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연을 보면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이 마음 속에 자랍니다.
비록 멀리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인연이란 질긴 줄에 이어진 나와 한글학회도 하나의 연이 되어 하늘에서 펄럭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또 하나의 그리움이 연이 되어 하늘을 누비고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을 같은 '한글학회 연수생'이란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만난다는 이 사실이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옛 어른들이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셨는데 정말인가 봅니다.
해바라기 선생님을 만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치의 의심도 들지 않으니까요.^^
의심은 커녕 빨리 만나뵙고 싶으니...
윈윈 파트너쉽인가요?
너무 열심히 글을 올리시는 해바라기 선생님 땜에 게으른 저도 자꾸만 글을 올리게 되네요.

옆 집 아이의 상기된 얼굴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심히 열중하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행복감 같은 것을 아이의 작은 얼굴에서 얼핏 봤거든요.
선생님들 행복하세요.!!!
필라에서
정선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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