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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거이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11
자기 자식을 키울 땐 이쁜지 모르고 키우다 손주가 나오면 그 쉬야하는 거까정 고소한 냄새가 나고 이뻐죽는댄다. 이건 주위의 논네들이 주로 하는 공통된 의견이다.

그케 무선 할아버지래도 손녀 손주의 애교섞인 몸짓 표정엔 그냥 녹아내리나부다.

우리 동네에 손주녀석 졸졸 쫓아댕기는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각인된 분이 한 분 계신다.
그 집 손녀딸이 '하나'여서 하나 할아버지라 불리운다.
하나 동생은 사내녀석인데 도무지 말귀가 안통하는 넘이다.

우리 유치부에 들어오면 제맘대로 하고픈대로 선생님 말은 안듣다가 용케도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면 쪼고만게 까르르 웃기다고 뒤집어진다.
그 모양을 보는 하나 할어버지 또한 입에 함박 웃음이 걸려있다.

유치부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유아부랑 섞여서 엄마들 모임인지 아이들 모임인지 분간이 안갈 때가 많다. 줄줄이 아이를 낳은 집이 많은 여기 리마는 그래서 유치부 시간땐 내가 아이를 대상으로 가르침을 주는건지 엄마들 대상으로 주는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뭐 만들기나 그리기 등등 엄마들이 더 재밌어하며 따라하니깐 말이다.

거기서 유일하게 하나 할아버진 용감하게도 매일같이 따라오신다. 하루도 안빠진다. 오히려 하나엄만 빠져도 이 하나 할아버진 아이들을 데리고 오셔서 풀도 붙이고 같이 색칠도 하고 그러면서 엄마들 눈총을 어지간히 받기도 하셨다.

솔직히 엄마들끼리 있으면서 아가들 젖도 좀 줘야하고 엄마들끼리 하고픈 말도 할아버지 때문에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나 할아버진 내가 하는 음식들을 너무도 좋아하셨다. 소풍 때나 모임 있을 때 내가 싸가는 무우생채며, 호두볶음, 고추절임, 다시마튀각, 찹쌀고추튀김 등등.....내 반찬을 모두 차지하시고 드셨더랬는데, 아무래도 시골스런 내 입맛이랑 비슷했나부다.

나 한국 다녀올 동안, 그 분이 아프시댄다.

다리가 저려서 병원에 갔는데 폐에 물이차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댄다. 검사를 했더니 이미 폐암말기.....

그 분은 모르고 다리가 너무 저려서 맛사지 받으러 갔다가.....뼈로 전이된 암으로 인해서 다리뼈가 부러지셨댄다. 그렇게 그분은 입원해 계셨다.

그 분이 병원에서 내가 해줬던 무우생채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댄다.

정말 여태까지 내가 해봤던 어느 무우생채보다 더 정성들여서 무쳐서 갖다 드렸다. 속으로 다음엔 호두볶음도 해다드려야지.....그런 결심도 하면서. 근데 호두볶음은 너무 딱딱해서 못드신다고 하신다.

어제, 사우나 다녀왔더니 그 분이 돌아가셨단 전화가 왔더랜다. 놀래서 옷도 잘 못챙겨입고 영안실에 갔다. 육군병원 영안실...난 무선 맘에 관을 못들여다 봤다.

이 나라의 관습은 사람이 죽으면 이쁘게 화장을 시키고 투명 유리로 덮어서 그 얼굴을 볼 수가 있다. 오늘은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을 한단다. 화장하는 곳도 바로 옆건물이랜다. 많은 찬송가가 끝나고 그 분께 국화꽃을 드리며 얼굴을 봤다.

솜으로 코를 틀어막아서 숨을 못쉰다는 것 뿐이지. 평안한 얼굴이었다. 좋은 곳에 가셨나부다.

탄내가 물씬나는 화장하는 곳으로 관은 운구되었고, 찬송이 불려지는 가운데 그 분의 관은 안으로 들어갔다. 고향 땅........한국 바닷가에 뿌려달라고 하셨단다.
자식들이 이나라 저나라 흩어져 사는데 여기 외진 페루에 있으면 자식들 힘들다고 그렇게 유언하셨단다. 그렇게 이민살이를 전전하시다 가셨다.

난....꼭....한국가서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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