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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나 폭스바겐이나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22
페루에 와서 젤 첨에 놀란 것은 너무나 후진 자동차들의 행렬이었다. 대학 다닐 때 어느 음대생의 자동차라고 소문났던 그 이뻤던 노란 폭스바겐...나도 하나 갖고 싶었던 귀엽고 앙징맞고 이국적인 폭스바겐이 지저분하고 우중충한 색으로 변신해서 털털거리며 방게모양을 해가지고 온 시내를 점령해 있었다.

학교 앞에서 내가 봤던 그 폭스 바겐은 너무나 이뻤드랬다. 빨간 색도 있었고, 노란 색도 있었다. 그 이쁜 폭스바겐...그러나 마귀할멈의 마술로 변신한 듯이 너무나 초라하게 변신한 폭스바겐이 택시로 운용되는게 많았다. 아이를 안고 탄 폭스바겐 택시는 바닥이 녹슬어 구멍이 뚫려 있었고, 털털거려대는 길에서 아스팔트가 내비쳤다. 세상에 이런 차들도 돌아댕길 수가 있구나.

아르헨티나도 그리 잘 사는 나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의 중형차들이 진을 치고 있는 나라라 그렇게 차들이 낡았다거나, 후지다거나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긴 우스갯소리로 국민 모두가 벤츠를 타는 나라라고 자랑한다. 그건 맞다. 모든 시내버스 메이커가 벤츠니깐두루.

그 폭스바겐이 얼마나 후진지 한국의 티코가 와서 돌아다니니 너무 이뻤다. 깨끗하고, 그래서 주로 택시는 티코를 애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티코 시대도 갔고, 여러가지 일제차들과 한국 중형차들이 택시로 활용이 되어 요즘은 그래도 좋은 차들이 택시로 꽤나 돌아다닌다.

오늘 난 늦잠을 잤다.

9시까지 도착해야하는 학교. 차를 타고 가려면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난 8시 25분에 눈을떴다.

아이들을 부리나케 깨우고 거울을 보니 산발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생머리로 살다가 한국서 멋부린다고 한 디지털 파마가 무쟈게 원망스런 순간이었다. 생머린 걍 머리도 안빗고 나서도 되니깐.

아이들과 서둘러 택시를 타러 나가니 으~ 늦어 죽겠는데 택시도 안온다.
난 누구에게 잔소리나 싫은 소리를 듣는걸 딱 질색한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난 특히 더하다. 오랜 시집 살이로 인해서 생긴 버릇인지 누군지 내게 싫은 소릴 하면 가슴이 남아 그 싫은 소릴 안들으려고 그 담엔 노이로제 걸렸듯이 완벽하게 일 마무리를 하는 성격이다.

난 늦는게 너무 싫었다.

택시가 왔는데 너무 낡고도 낡은 티코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그러나 이 나라 애들은 너무나 좋아하는 카펫트천으로 의자가 뒤집어 씌워진...뭐 깨끗하게 뒤집어 씌워지면 누가 뭐라나. 그야말로 벼룩이 몇 마리 살꺼같은 의자가 내 소름을 돋우니 문제지.

암튼 지금 상황이 차를 따질 때가 아니다. 늦었다고 구사리 맞는거보담 낫지.
탔다. 아이들은 뒤에 태우고 운전석옆에 탔는데 의자가 너무 제껴져있다. 그리고 너무나 뒤로 가 있었다. 앞으로 의자를 땡기고 세우려했지만 말을 안듣는다. 의자는 앞으로 주욱 밀렸다 뒤로 주욱 밀렸다 정신이 하나없다. 작은 차안에서 뒷쪽에 앉은 아들 다칠까봐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우잉.
운전사는 나이어리게 생겨서 굉장히 미안한 얼굴로 원래 의자가 그렇게 고장이 나 있다고 했다.

숏다리인 난 앞으로 밀리는 의자를 힘주고 뒤에 앉은 아이들이 안다치게 힘을 주고 갔다. 아 다리에 쥐가 난다.
작은 티코는 털털소리도 내고 석유 냄새도 나고, 의자는 삐걱 앞으로 뒤로 밀리며 학교에 도착했다. 아유. 택시비.

택시비를 교장 선생님께 꾸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다시 오는 길에 널린 페루 리마의 풍경이 웃음을 자아낸다. 새로짓는 건물들 이미 지어진 건물들에 비가 안와서 생기는 저 회색빛 바랜색들...

바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색은 내 맘을 닮아 그야말로 회색빛이다.

사랑도,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거지.
퇴색되어지고 바래지고, 굽어지며 휘몰아
괜스레 짜증나는 하루로 난 또 나를 들볶고.

그래.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 차를 탄 것이. 페루도 발전은 하나보네. 후훗

난 정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발전한 그 무엇 하나 없는데... 오히려 더 멍청해지고 수척해지고 괭한 눈의 여인이 거울 속에서 날 바라보게 되었을 뿐...

이미 시작되어진 우울은 며칠동안 날 몰아세우고 닦아세우고 그래서 엉뚱한 곳에다 화산폭발하듯 내비쳐지고 정말 맘에 안드는 나다.

누군가 그랬지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내 인생도 그려간다고...
근데 맘에 안드는 그림이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다면 그 그림을 어떻게 고쳐나갈 방도를 마련해야는데 그게 안된다. 왜? 내 자신 지금도 붓을 들고 어디부터 명암을 들어가야는지 바팅을 둬야는지 모르겠으니...

오늘 우연히 만난 티코의 모습이 어찌나 날 닮아 있던지...

예전엔 회색빛 낡은 폭스바겐을 닮아있던 날도 있드만...

뭔 생각으로 비번 바꿀 생각을 했을까? 내가 가는 사이트들 비번을 바꾸고 영 그 비번이 생각 안난다. 이건 건망증을 넘어선 치매다.

랑이 나를 부른다.

'어이~ 마귀할멈'

요새 내가 짜증많고 신경질쟁이로 변해서 마귀할멈같다나.

에효. 마귀할멈 자러가야지. 졸리다.

옆에서 랑은 마귀할멈인 내게 만화가 너무 재밌다고 신나게 읽어준다. 아 재미없지만 씨익 웃어줬다.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내었다.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하지 썩소를 지었다고 딴지건다. 메아리 없는데다 얘기하는거도 재미없대나.

누가 졸린 사람에게 읽어주래나...삐지건 말건 난 드가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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