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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티코나 폭스바겐이나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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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코나 폭스바겐이나 - 무늬만여우공주 ┼
│ 페루에 와서 젤 첨에 놀란 것은 너무나 후진 자동차들의 행렬이었다. 대학 다닐 때 어느 음대생의 자동차라고 소문났던 그 이뻤던 노란 폭스바겐...나도 하나 갖고 싶었던 귀엽고 앙징맞고 이국적인 폭스바겐이 지저분하고 우중충한 색으로 변신해서 털털거리며 방게모양을 해가지고 온 시내를 점령해 있었다.

│ 학교 앞에서 내가 봤던 그 폭스 바겐은 너무나 이뻤드랬다. 빨간 색도 있었고, 노란 색도 있었다. 그 이쁜 폭스바겐...그러나 마귀할멈의 마술로 변신한 듯이 너무나 초라하게 변신한 폭스바겐이 택시로 운용되는게 많았다. 아이를 안고 탄 폭스바겐 택시는 바닥이 녹슬어 구멍이 뚫려 있었고, 털털거려대는 길에서 아스팔트가 내비쳤다. 세상에 이런 차들도 돌아댕길 수가 있구나.

│ 아르헨티나도 그리 잘 사는 나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의 중형차들이 진을 치고 있는 나라라 그렇게 차들이 낡았다거나, 후지다거나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거긴 우스갯소리로 국민 모두가 벤츠를 타는 나라라고 자랑한다. 그건 맞다. 모든 시내버스 메이커가 벤츠니깐두루.

│ 그 폭스바겐이 얼마나 후진지 한국의 티코가 와서 돌아다니니 너무 이뻤다. 깨끗하고, 그래서 주로 택시는 티코를 애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티코 시대도 갔고, 여러가지 일제차들과 한국 중형차들이 택시로 활용이 되어 요즘은 그래도 좋은 차들이 택시로 꽤나 돌아다닌다.

│ 오늘 난 늦잠을 잤다.

│ 9시까지 도착해야하는 학교. 차를 타고 가려면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인데, 난 8시 25분에 눈을떴다.

│ 아이들을 부리나케 깨우고 거울을 보니 산발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생머리로 살다가 한국서 멋부린다고 한 디지털 파마가 무쟈게 원망스런 순간이었다. 생머린 걍 머리도 안빗고 나서도 되니깐.

│ 아이들과 서둘러 택시를 타러 나가니 으~ 늦어 죽겠는데 택시도 안온다.
│ 난 누구에게 잔소리나 싫은 소리를 듣는걸 딱 질색한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난 특히 더하다. 오랜 시집 살이로 인해서 생긴 버릇인지 누군지 내게 싫은 소릴 하면 가슴이 남아 그 싫은 소릴 안들으려고 그 담엔 노이로제 걸렸듯이 완벽하게 일 마무리를 하는 성격이다.

│ 난 늦는게 너무 싫었다.

│ 택시가 왔는데 너무 낡고도 낡은 티코다.

│ 내가 너무 싫어하는, 그러나 이 나라 애들은 너무나 좋아하는 카펫트천으로 의자가 뒤집어 씌워진...뭐 깨끗하게 뒤집어 씌워지면 누가 뭐라나. 그야말로 벼룩이 몇 마리 살꺼같은 의자가 내 소름을 돋우니 문제지.

│ 암튼 지금 상황이 차를 따질 때가 아니다. 늦었다고 구사리 맞는거보담 낫지.
│ 탔다. 아이들은 뒤에 태우고 운전석옆에 탔는데 의자가 너무 제껴져있다. 그리고 너무나 뒤로 가 있었다. 앞으로 의자를 땡기고 세우려했지만 말을 안듣는다. 의자는 앞으로 주욱 밀렸다 뒤로 주욱 밀렸다 정신이 하나없다. 작은 차안에서 뒷쪽에 앉은 아들 다칠까봐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 우잉.
│ 운전사는 나이어리게 생겨서 굉장히 미안한 얼굴로 원래 의자가 그렇게 고장이 나 있다고 했다.

│ 숏다리인 난 앞으로 밀리는 의자를 힘주고 뒤에 앉은 아이들이 안다치게 힘을 주고 갔다. 아 다리에 쥐가 난다.
│ 작은 티코는 털털소리도 내고 석유 냄새도 나고, 의자는 삐걱 앞으로 뒤로 밀리며 학교에 도착했다. 아유. 택시비.

│ 택시비를 교장 선생님께 꾸었다.

│ 아이들을 가르치고 다시 오는 길에 널린 페루 리마의 풍경이 웃음을 자아낸다. 새로짓는 건물들 이미 지어진 건물들에 비가 안와서 생기는 저 회색빛 바랜색들...

│ 바다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색은 내 맘을 닮아 그야말로 회색빛이다.

│ 사랑도,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거지.
│ 퇴색되어지고 바래지고, 굽어지며 휘몰아
│ 괜스레 짜증나는 하루로 난 또 나를 들볶고.

│ 그래.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 차를 탄 것이. 페루도 발전은 하나보네. 후훗

│ 난 정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발전한 그 무엇 하나 없는데... 오히려 더 멍청해지고 수척해지고 괭한 눈의 여인이 거울 속에서 날 바라보게 되었을 뿐...

│ 이미 시작되어진 우울은 며칠동안 날 몰아세우고 닦아세우고 그래서 엉뚱한 곳에다 화산폭발하듯 내비쳐지고 정말 맘에 안드는 나다.

│ 누군가 그랬지 도화지에 그림 그리듯 내 인생도 그려간다고...
│ 근데 맘에 안드는 그림이 여기저기 얼룩이 져 있다면 그 그림을 어떻게 고쳐나갈 방도를 마련해야는데 그게 안된다. 왜? 내 자신 지금도 붓을 들고 어디부터 명암을 들어가야는지 바팅을 둬야는지 모르겠으니...

│ 오늘 우연히 만난 티코의 모습이 어찌나 날 닮아 있던지...

│ 예전엔 회색빛 낡은 폭스바겐을 닮아있던 날도 있드만...

│ 뭔 생각으로 비번 바꿀 생각을 했을까? 내가 가는 사이트들 비번을 바꾸고 영 그 비번이 생각 안난다. 이건 건망증을 넘어선 치매다.

│ 랑이 나를 부른다.

│ '어이~ 마귀할멈'

│ 요새 내가 짜증많고 신경질쟁이로 변해서 마귀할멈같다나.

│ 에효. 마귀할멈 자러가야지. 졸리다.

│ 옆에서 랑은 마귀할멈인 내게 만화가 너무 재밌다고 신나게 읽어준다. 아 재미없지만 씨익 웃어줬다.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내었다.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하지 썩소를 지었다고 딴지건다. 메아리 없는데다 얘기하는거도 재미없대나.

│ 누가 졸린 사람에게 읽어주래나...삐지건 말건 난 드가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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