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한마당         국외교원 한마당         국외교원 한마당

학교 찾아 삼만리

저희 학교는 맨해튼에 있는 학교로 미국 공립학교를 토요일만 빌려 쓰고 있습니다. 원래 개학 한달 전에 재계약을 해야하는데 미국학교교장이 바뀌는 관계로 새 교장이 부임하는 날 계약을 하게 되었죠. 학교를 빌리기 위해선 일단 custodian(건물 관리인)을 만나고 그 다음 교장의 최종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학교를 빌려주는 권한은 교장에게 있습니다. 대신 돈은 교육청 예산에 들어가 교육청에서 관리합니다. 학교를 빌려주어도 교장이나 교사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 없으니 당연히 학교를 빌려주는 일이 좋지는 않겠지요. 이 글을 읽기 위해 참고로 썼습니다. ----------------------

날벼락! 눈앞에 뭐가 번쩍하더니 콰광! 가슴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개학을 3일 남겨둔 상태에서 새로 온 미국학교 교장이 학교를 빌려줄 수 없단다. 당장 8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어디로 간다???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였다. 고개를 끄덕끄덕…그러나 “I understand but I will do my job.” 학교가 너무 낡았기 때문에 공사를 하겠다나 뭐라나. 나도 안다. 공사는 핑계고 학교를 빌려주기 싫은 것을.... 나쁜 할머니… 감정이 화가 나는 것도 잠시, 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일단 개학을 한 주 연기한다는 비상연락을 돌리고 교육청에 갔다. 교육청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자기가 교장을 설득해주겠다고 하였다. 학교 건물 관리인도 교장의 처사가 어처구니 없는 지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여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 미국학교 교장으로부터 최종 통보를 받았다. “No!” 정말 나쁜 할머니같으니라구. 이젠 정말 이성이 화가 났다. 교육자라는 사람이 80명의 학생을 사전 통보도 없이 교육의 장에서 쫓아내다니….
예정된 개학일 아침, 혹 연락을 못받은 학생, 학교 광고를 보고 새로 오는 학생이 있을까 학교에 나갔다. 아니나 다를 까, 4명의 학생이 헛걸음을 했다. 4살짜리 혼혈아 Ejun 이의 파아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처음 오는 한국학교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크리라…. Ejun이를 안아주며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음 주엔 학교를 열겠다고….

이사장님은 맨해튼 서쪽을 맡고, 나는 동쪽을 맡아 찾아다니기로 했다. 그나마 교육청에서 준 학교 리스트가 도움이 많이 된다. “No, No, No, No…” 토요일날 프로그램이 있는 학교, 교사들이 싫어해서 안된다는 학교, 교장이 없어 못만나기도 하고.... 어쨌든 모두 No다.이 많은 학교 중에서 우리 아이들이 토요일 반나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니… 하루 종일 다녔지만 허사였다. 정신이 번쩍났다. 이 일을 어쩐다…. 안되겠다. 할머니 교장에게 다시 사정해보아야겠다. 그 심술맞게 생긴 할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나보다 미국인을 더 깊게 경험한 남편은 미국애들은 한 번 No면 영원히 No라고 괜히 상처받지 말고 다른 곳을 더 열심히 알아보라고 했지만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학교를 찾을 동안 2주만 쓰게 해달라는 편지를 썼다. 더 이상 개학을 연기할 수는 없다고... 말리던 남편도 애처러운 지 도와주었다. 내가 보아도 눈물이 난다. 교육자라면 이 편지를 읽고 마음이 움직이겠지… 마음이 안 움직이면 교육자이기 이전에 사람도 아니다…
편지에 예쁜 꽃도 붙여서 아침 일찍 미국학교 교장을 찾아갔다. 너무 바쁘다고 만나주지도 않는다. 잠깐 편지만 전해주고 다시 학교 찾아 삼만리! 오늘은 20가 아래쪽으로 잡았다. 역시 No, No. No… 오후가 되었다. 초조해진다. 이번 주는 목요일부터 공립학교가 쉰다. 이름도 생소한 Rosh Hasanah! Jewish Holiday 라나 뭐라나… 참 유태인 애들은 지네 나라도 아닌 곳에서 돈도 많이 벌며 미국을 움직이고 있으니… 미국의 공립학교까지 쉬게 하는 유태인들의 힘에 새삼 놀라며 우리 추석이나 설날에 미국 공립학교 놀 날은 언제일까? 생각하고 있노라니 에고… 조금 있으면 추석이구나. 살짜쿵 우울해졌지만 향수(鄕愁)는 지금 내겐 사치다. 그 놈의 Jewish
Holiday 때문에 돌아다닐 날짜도 별로 없다. 목, 금엔 학교가 문을 닫으니 교장도 건물 관리인도 못 만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걸어 다음 학교에 갔다. 와! 건물도 새 것이고 체육관도 강당도 너무 좋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같이 있어 4살부터 16살까지 있는 우리학교 학생들 구미에 맞게 다 갖춰져 있다. 이번에 처음 교장이 된 36살의 젊은 교장은 또 얼마나 친절한 지… 자기가 부임한 지 5일 밖에 안되니 잘 알아보고 내일까지 전화를 준다고 하며 자기 전화번호도 손수 적어준다. 동시에 이사장에게서 학교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기부금으로 $2,000을 내라고 한 덴다. 내가 찾은 PS40 이야기를 했다. 내일까지 기다려보고 안되면 $2,000 내고라도 그 학교를 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휴우…. 찾긴 찾았구나… 한숨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님! $2,000 절약하게 해주세요… 기도하고 곤한 잠이 들었다.
전 학교 교장은 역시 인간이 아니었다. 그 눈물나는 편지를 보고도 No! 그래, 학교 공사 잘하고 운영 잘해서 우수 교장 상 받고 잘 먹고 잘 살아라. 너희 그 낡은 학교 말고도 좋은 학교 많다. 그런데 PS 40 교장 전화는 12시가 지나도 안온다. 그래도 배수진이 있으니 그리 초조해지진 않는다. 2시쯤 전화가 왔다. No다. 할 수 없다. $2,000 기부금 내고라도 들어가야지…. 그런데 두 번째 날벼락이 떨어졌다. $2,000 받고 빌려준다던 교장한테서 교사들이 너무 반대해서 빌려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학교 찾을 시간도 없는데…. 유태인애들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도리가 없었다. 다시 개학 연기! Ejun이가 생각났다. 맑고 어여뿐 그 파아란 눈이 다시 울고 있었다. 이준이한테 이번 주엔 꼭 학교를 연다고 약속 했는데…
Ejun이에겐 엄마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여질까? 약속을 안지키는 사람들, 두 번 씩 실망을 준 사람들……. 이준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나의 검은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학교도 못 찾으러 다니고 집에 있으려니 정말 불안하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래! 사립학교를 찾아보자. 인터넷에 들어가 맨해튼에 있는 사립학교 리스트를 뽑았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가 맨해튼의 부자들이 몰려있는 East Side 60 에서 90가 사이에 분포하고 있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가는 원칙이 한 눈에 보였다. 그런데 여기는 땅값이 장난이 아닐텐데… 이런 부자 학교에겐 우리가 내는 한 학기 렌트비 $5,000은 아무 것도 아닐텐데…. 그래도 부딪쳐보자.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워낙 건물 값이 비싼 곳이라 건물을 사기는 힘들고 대부분 그들도 렌트를 하고 있었다. 너희도 우리랑 같은 신세구나. 그러나 너희는 개학 3일 남겨놓고 쫓겨나는 일은 안 겪겠지…. 에고, 공립학교나 잘 알아보자….
토요일 아침, 혹시나 해서 다시 학교 앞에 나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학교를 열었어도 비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오질 못했겠구나… 오히려 잘 됐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쳐다본다. 미국 비는 쫙쫙 아주 매정하게 한꺼번에 쏟아 붇고 만다. 한국의 가을 비는 부슬부슬 정겹게 오는데 반해… 그래서 미국 애들은 냉정하고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은 가 보다. 어떨 땐 관계에 너무 끈적하게 묶여있는 한국의 문화가 싫었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그립다. 정으로 보듬어 주는 그 훈훈한 문화가….
다른 일요일과 달리 싸우러 가는 전사같이 굳은 마음을 가지고 교회로 갔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 공부할 학교 꼭 찾아주세요… 눈물이 주루룩… 도대체가 그치질 않는다. 셋방살이하는 신세가 처량해서 인 지, 냉정한 미국 애들한테 맨날 No 소리만 들은 설움이었는 지, 이번 주엔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열어야 한다는 간절함이 눈물로 쏟아지고 있었다. 엄마가 암으로 6개월 선고 받았을 때 이후, 하나님께 이렇게 때 쓰며 울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외국에 산답시고 엄마 아프실 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불효녀를 불쌍히 여기셨는 지 하나님은 엄마를 살려 주셨다. 의사도 손놓은 우리 엄마도 살리셨는데 그 깟 학교 쯤이야…
다시 월요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찾으리라… 힘차게 맨해튼을 향했다.
에고, 이 학교는 강당이 없네… 그럼 우리 아이들이 배운 태권도, 무용, 단소, 노래는 어디서 발표 하지? 다른 데를 찾아보자. 그러나 역시 No, No, No ….. 아까 그 강당 없는 학교라도 빌릴까??? “때릉때릉…” Midtown에서 학교를 찾고 있던 이사장님 전화다. 찾았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60가에서 30가로 달려갔다. 학교가 정말 좋다. 새 건물인 지 모든 것이 반짝반짝! 강당도, 카페테리아도 체육관도 정말 좋다. 그런데… High School 이다. 4살짜리 개나리반 학생들이 앉기에는 책상도 의자도 너무 크다. 이사장님은 보조 의자를 사서 하자고 하지만 … 영 내키지가 않는다. 시간은 어느새 1시를 넘어서고 있다. 더 찾아보자. 다시 60가 West Side로 올라갔다. 아까
No!한 교장이 소개시켜 준 3곳의 학교를 보러... 이젠 이사장님하고 같이 움직였다. 학교의
Security Guard한테 ID 내 놓는 것도 지쳤다. 이사장님이 내놓길래 나는 그냥 들어 가려고 했더니 내 것도 내놓으랜다. 내 이름, 주소가 적혀진다. 맨해튼에 있는 공립학교 방문 리스트에 내 이름이 20군데도 더 올라있다. 혹 학교에서 테러라도 발생하면 FBI한테 불려가 조사받는 것 아냐 ?
워낙 불안한 땅에 살다보니 별 희한한 상상도 다해본다. FBI한테 불려갈 걱정까지 하고 들어갔는데 또 No다… 이젠 동쪽 아래끝으로 가자. 택시가 하염없이 동쪽으로 간다. 시간은 이미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리스트에서 이제 가능한 곳은 2군데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하나님… 건물관리인이 자기는 교장만 좋다고 하면 OK라며 교장에게 안내해 주었다. 하교 하는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주는 다정한 교장의 모습을 보며 뭔가 좋은 예감이…… “OK !!!”
야호!!! 드디어 학교를 빌렸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와 한참 동안 학교를 바라보았다.
PS61 ! 마치 성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이젠 쫓겨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를 단순히 학교를 빌려쓰는 사람이 아닌, 같이 사용하는 가족 같은 마음을 느껴야하는데… 한국음식을 차려놓고, 한복을 입고, 우리 문화를 소개하며 잔치를 한 번 할까? 아님 바자회를 열까? 아님… 이그...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학부모에게 학교 이전을 알리는 편지와 약도를 보내고, 이삿짐센터에 전화부터 하자.... 신문에 광고도 다시 내야지... 내 머리는 다시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어 주말 한국학교가 아닌 당당히 주중한국학교가 세워지는 그 날을 꿈꾸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