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 동생 또한 블론디 단발머리에 수줍음이 많은 역시 인형같은 예쁜 여자아이다.
로렌(Lauren)과 그 여동생 켈시(Kelsey)을 동시에 만난건 유치원에 정식으로 근무한지 3 년째 쯤으로 기억된다.
로렌은 이미 내 손아귀에(?) 있었고, 본인이 아쉬운 일이 있거나 누가 건드리면 반드시 울먹울먹한 얼굴로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는 정말 사랑의 천사같은 그런 얼굴을 하곤 하는데...
어느날 동생 켈시를 데려와서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정미, 내동생 켈시인데... 예쁘지?'
'으응? 으응... 참 예쁘네... 켈시 안녕?'
으아앙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오메... 이럴수가...어쩐다.......얘네들이 짰나?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불과 2 년전 로렌을 다시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켈시는 내 눈과 마주치는 동시에 그 큰 파란 눈에 닭똥같은 눈물 방울을 뚝뚝 담아낸다.
그 동안 많은 아이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했는데...
보통의 경우 낯가림이 심한 아이도 약 일 주일이면 어느 정도 순화가 된다.
아무리 멀티컬추얼 나라라고 하더라도, 피부색이 다른 나같은 경우에 더 난감한 경우를 만나곤 하는데... 아니 이 자매는 어찌하여 이렇게 시작이 똑같단 말인가... 정말 어른같았으면 짰냐고 할 정도로 그렇게 똑같이 시작을 하니... 정말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었다.
그러나 순순히 물러날 내가 아니지.
'그래? 또 울어... 걱정마라. 이미 네 언니가 날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시켜 놓았으니까........... 넌 한 달이 아닌 딱 반 달감이다.'
켈시는 이렇게 내 야무진 속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난 또 그 악몽(?)의 눈 싸움을 동생과 시작하게 된다.
이벤엔 부모님과 다른 교사들도 합세한다.
그리고 너무나 좋으신 그 부모님은 왜 우리아이들이 이렇게 나한테 유난한지 엄청 미안해 하며...유치원 모든 어른들이 의기투합하여 켈시를 내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데 하나가 된다.
언니보다 훨씬 쉬었다.
모두가 돕기도 하지만, 언니가 항상 나와 함께하니...
'지도 양심이 있지... 언니가 날 젤로 좋아하는데... 언제까지 울거야?'
언니랑 나랑 노는데 켈시가 따라와 언니랑 노니 결국은 셋이 같이 노는꼴이 되는게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쉬울 수 밖에...
결국 켈시는 서럽게 울던 그 경계하던 눈빛이 점점 풀어지더니...
울먹울먹거리다... 흐으윽 흐느끼다가... 살짝살짝 곁눈질로 눈물을 훔치다가... 결국 껌벅껌벅 그 큰 눈을 굴리지 않는가...
딱 반 달 걸렸다.
'제 2 의 인간 승리. 고정미 만세 만만세!!!'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렇게 그 자매는 나와 하나가 된다.
언니가 나와 제일 잘 통하니 그 동생 또한 닮는가...
켈시도 집에만 가면 정미만 찾는단다. 그렇게 울던 아이가...
얼마 전 내가 수술을 하느라 세 달간의 공백이 있었는데 켈시는 하루도 안 거르고 매일 정미를 찾았단다.동료 교사의 말이다.
키가 유난히 큰 그 백인 부부는 맘씨도 좋았는데... 이렇게 변한 본인의 딸들을 기특해한다.
언어와 피부색이 결코 사람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지난 달 말, 켈시는 2년 전에 만 5 세 생일을 끝으로 졸업한 언니와, 엄마 아빠와 함께 4세 생일을 끝으로 이 날 킨더가든(유치원)으로 떠났다.
이곳의 유치원은 무료다. 켈시 엄마가 일을 바꾸어 우리처럼 하루종일 돌봐주지 않아도 되기에 언니처럼 5세까지 있지 않고 그날 4세 해피 버스데이와 해피 라스트데이를 부르며 떠났다.
마지막 파티.
그랬다. 2년전 5세가 되며 이젠 초등학생이 되는 로렌이 떠날 때도 난 기쁘기도 하고, 뭐라 표현 안되는 마음속 갈등 속에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는 그 아쉬움을 표현하지 못한 체 보냈다.
이제 동생 켈시의 지난 달 마지막 4세 파티는 또 다른 감정들과 복잡 미묘한 갈등을 섞어 한껏 선물까지 준비하여 보냈다.
고마웠다. 자매가 고마웠고 마지막까지 깊은 포옹으로 고맙다며 나에게 예의를 다한 그 부모님께 감사했다.
지금도... 생일 케잌을 자르며... 선물을 주고 받으며... 마지막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커다란 왕관을 눌러쓰고 시종일관 그 파티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이의 시선을 한몸에 받던 모든 순간순간마다 내눈과 한 번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언제나 날 응시하던 그 사랑의 눈길을 난 잊을 수가 없다.
눈 싸움이 아닌 마지막 그 깊고 깊은 사랑의 눈 맞춤을...
80.219.53.220 유월이: 천사님. 저는 본문 쓰기가 안돼서 잠시 천사님 글의 댓글 난을 빌려 들어갑니다.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편지 2 나희덕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2005/05/07-05:25]-
80.219.53.220 유월이: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요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ㅅ브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 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2005/05/07-05:28]-
80.219.53.220 유월이: 2003년 우리 학교에서 청소년 문학의 밤 행사를 했었습니다.
시인 김광규선생님과 정혜영 교수님께서 조정권, 나희덕 시인을 모시고
이곳 유럽에 서정시 대회에 오시는 길에 저희 학교에 들러주셨었습니다.
저는 이것 저것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어 시를 제대로 맛 볼 여유도 없었었지만
이곳을 굳이 지나시지 않으셔도 되는 일정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들러 주시고 사례비 한 푼 안 받으신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2005/05/07-05:32]-
80.219.53.220 유월이: 저희 학교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이 조촐히 모인, 장식도 없고 차린 것도 없는 우리가 빌려 쓰고있는 고등학교 교실 시멘트 건물에서 시인께서 직접 낭송하시고 스위스 연극인이 독일어 번역문을 읽고...
아마도 선생님들이 경험하신 제일 초라한 시 낭송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요...
한 헝거리 국적 유태인 독일 문학 비평가가 태어나서 죽 독일에 살다가 나찌가 정권을 잡으면서 살고있던 베를린에서 쫓겨나 헝거리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도 얼마 안가 유태인들은 그들만 모아놓은 게토 같은 데서 살게 됩니다.. 청년이던 이 문학 비평가는
-[2005/05/07-05:42]-
80.219.53.220 유월이: 그 게토 같은데서 많은 친구들을 모아 학고방같은 좁은 방에서 음악 감상을 합니다.
음악을 감상하지 않고는 견딜 수없는데 자리도 레코드 판도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도 그 악조건 속에서 음악을 듣기 위해 매주 모입니다. 거기서 이 문학 비평가는 처음으로 예후디 메누힌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감동합니다.
이 문학 비평가가 후에 아주 유명해져 중국에 독문학 학술 대회에 갔다가 기차 안에서 예후디 메누힌을 우연히 만납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어쩐 일로 중국행이냐고 묻자 한 사람은 독일 문호 토마스 만 학술대회 차. 한 사람은 베토벤 연주 차 중국 여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두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고.. 잠시 후
' 우린 둘 다 유태인이면서도 독일 문화를 전하기 위해 이렇게 여행을 하고 다니는 군요..' ...
초라했지만 감동적이었던 우리의 시 낭송회이야기에서 갑자기 라이히 라니쯔키의 청년시절 초라했지만 감동적이었던 음악 감상이야기가 떠올라 어쩌다 여기까지 왔네요
-[2005/05/07-05:54]-
80.219.53.220 유월이: 아무튼 시 낭송회 이후 제가 나희덕 시인을 참 좋아하게 됐습니다..
삶에 충실하면서 조용한 여자 목소리를 내면서 그 안에는 모태처럼 강한 어떤 것이 숨어있어서요... 같이 좋아하면 좋겠습니다. -[2005/05/07-05:57]-
201.129.59.5 유예찬: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사명감만으로는 안되는 거 같아요.
천성이 따라줘야 한다는 걸, 백번 느낀답니다.
정미 샘 마음이 예쁘고, 착한 걸 아이들도 다 아는 거 보지요~~~~
매일 맞고, 보내는 아이들이지만,
유난히 맘에 와 닿는 아이들이 있게 마련인 거 같네요.
계속 좋은 일 하세요~~~~^^ -[2005/05/09-13:40]-
201.129.59.5 유예찬: 유월이 선생님은 스위스 분이신가요?
만나 뵈서 반갑습니다. 워낙 문학에는 문외한이라 나 희덕 님을 모르는데,
좋아해 보겠습니다......ㅎㅎ -[2005/05/09-13:42]-
210.55.227.204 천사: 예찬샘. 바쁘셨죠... 이쁘게 봐주신거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하나되는것. 오직 한가지. '사랑' 이겠죠.
교사로 비쳐졌을때 말도 어눌하고 피부색도 다른 제가 받는사랑 또한 감사하답니다.
-[2005/05/09-21:59]-
68.237.54.68 김별찬: 선배니임... 저 유치원 관심 많은 것 아시죠? 계속 좋은 글 부탁합니다.
그리고 기회되면 이 후배에게도 많은 것 가르쳐주세요... -[2005/05/10-01:33]-
210.55.227.204 천사: 별찬샘. 제가 가르쳐 드리다뇨... 너무 많은 일들을 훌륭히 소화해 내시는걸 보며 날마다 감동인것을... 그것도 뉴욕 한복판에서...
유치원 이야기는 좋은 글보단 사실이니까 마음 따뜻한 글이 더 어울릴 듯 싶네요.
올려놓고는 제 얘기라 부끄럽고.. 어느 땐 후회하고..이렇게 응원해줄 땐 신도나고.. 그러네요.
예찬 교장샘, 별찬 교장샘 그리고 지구촌 곳곳의 지혜로운 후배샘들이 계셔서 우리의 한글과 그 곳의 한국학교가 영원히 빛나리라 바라보며 천사가.
-[2005/05/10-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