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 와서 입맛이 없어졌다. 그래서 한국에서 토실토실 올라서 왔던 살이 저절로 쑤욱 빠져서 요즘의 정상적인 나로 돌아와 있다. 대신 와서 얼마나 앓은 날이 많은지 누구한테 아프다 소리도 못할 정도였다.
'쟤는 원래 아픈 애.' 내지는.....안 아픈 적이 언제 있었던가? 뭐 이런 식의 대우는 무지 서글프다. 그래서 아예 아프다 소리도 안하고 걍 혼자서 끙끙거리고 아프다 말다....이건 한 식구라도 마찬가지다. 하긴 같은 집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야 더 짜증나겠지.
간만에 되찾은 내 원기회복이 즐거워 어제는 외식가서 맘껏 먹었다.
스페인에서 온 친구가 낼모레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까 맘이 쨘하기도 했고 이 친구 다시 스페인 가면 언제 보려나 하는 맘에 다시 한 번 보게되고....우린 그렇게 몽고식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일명 소파몽골.
그건 내가 좋아하는 건데....그런데서 생전 맵게 안먹는데...매운거 안매운거 반으로 갈라져서 나온 냄비에서 난 동양인인 관계로 매운쪽 꺼를 건져다 먹어야 했다. 아띠. 난 매운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갖은 야채도 담갔다 소스 찍어먹고 갖은 해물, 소고기 얇게 썬 샤브샤브...이건 내가 좋아해서 한 접시 차지하고 먹었다. 디저트로 찐빵 두개. 과식했다 싶음 난 영락없이 체한다. 게다가 어제 하루종일 우울했는데....흑. 우울증까지 있는 상태의 과식은 백프로 속병난다. 아침 일곱시까지 기진맥진 아픈 위장은 아침 나절의 걸레조각처럼 늘어진 날 거울 한 귀퉁이에서 발견하게 한다. 휴.
겨우 몇 시간 자면서도 시나리오 쓰던거 수정을 어케할까. 악당 한 명을 더 등장시켜야 맛깔나겠지? 애들은 학교 뭔 축제날이라고 학교를 안간다고 아침 일찍부터 텔레비젼 왕왕 틀어놨다. 이런 저런 생각들로 비몽사몽 있다가 문득 발톱이 이불에 자꾸 거슬리는 게 신경쓰여서 잠에서 깼다. 앗. 새끼 발톱이 다 일어나 있다. 어....이럼 되게 아파야 하는거 아닌가?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에서 발톱을 내려다 봤다. 통째로 일어나 있었다. 일단 손톱깍기를 찾아서 일어난 발톱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어휴 나 진짜 무식한 여편네다. 어찌 이 발톱이 다 빠져 도망갈 때까지 몰랐을까?
발톱이 없어진 발가락을 막내가 보더니 엄마 발톱 없어서 이상한 발가락 됐다고 놀린다. 정말 바보다. 이 정도 됐으면 되게 아팠을텐데.....언제 아팠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아... 올리비아송네 갈때다. 아침에 엄마 드실 간식 챙겨 병원에 들렸다가 은행에서 돈 찾아서 수원역으로 달리기. 전철타고 한글학회까지 가서 한참 걷고 또 올리비아 송네 가려니 발이 퉁퉁 부어 있었다. 평소엔 운동화 신고 다니다 한글학회 가느라 멋부리고 간 뾰족구두 때문에 올리비아네 갈까말까 망설이다 그 날 아님 올리비아 볼 시간도 없지싶어 억지로 시간내서 간 것이다.
새로 이사간 올리비아네는 전철서 내리면 금방이래서 안심하고 갔드랬다. 한 20분 헤매다 아파트 입구를 찾았다. 이미 발이 아파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지만 오랜만에 보는 친구네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아파트 입구에서 딸기랑 참외도 한 봉지씩 샀다. 어케 찾아가지? 아파트 동수를 보니 헉 1동이다. 올리비아 송네는 18동이었나 28동이었나. 걸어도 걸어도 안나왔다. 도중에 포기하고 집으로 갈까 하다가.....내가 한국 사는 사람도 아니니 언제 오려나 싶어 이를 악물고 갔다. 속으로 막 욕을 해가면서. 나쁜 지지배 이 정도면 지가 차를 끌고 데릴러 나와야지. 아님 택시를 타고 오라케야지. 부글부글 궁시렁 궁시렁
겨우 찾아간 올리비아네서 발이 쥐가 나 있어 한참 주물렀다. 지원이가 잠에서 막 깨어 나오지도 못했다나. 늦둥이 지원이 재롱 보느라 발 아픈 것도 잊다 왔는데...그날 혹사당한 새끼 발가락 너무 아파서 눈물났드랬는데 그때 발톱이 죽은 것 같다.
[올리비아 송 너만 봐라 이 부분은 (너 올리비아~!! 내 발톱 물어내~!! 야 지지배야 가깝담서 우라지게 멀드만~!!)]
암튼, 난 평소에 무지 잘 걷는데 그 날따라 뾰족구두 신고 걷느라 하늘이 노랬었다.
어, 살 속 깊이 딱딱한 게 만져지네...이 게 발톱으로 다시 나오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