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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 친구는 우리 카페 우리들 앨범에서 아이를 안고 있네요. 아마도 저 시기쯤 뱃속엔 암이 자라고 있을 시기였을테지요.

나이 먹어 아이를 낳아서 그런지 너무 힘들다고 했드랬어요. 친구 하나가 너무도 예뻤던 친구의 안색이 안좋아 주름이 많다고 놀리는 바람에 6개월 홧김에 잠수를 탔던 시기이기도 해요.

그렇게 자기 미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했던 친구에요. 그래도 난 무시하고 그냥 병실을 확확 열고 들어갔죠. 내가 뭐 한국 사는 지지배들도 아니고, 한 번 와서 볼래면 을매나 먼데. 그럼서 갔어요.

첨엔 피 토하는 모습, 흉해져가는 모습 보여주기 싫다고 설레설레 손을 흔들고 머리 흔들다가도 내 손을 잡고 가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금방 사과하는 친구였죠. 막판에 너무 흉해졌다고 끝내 자기 죽거든 오라는 유언까지 해서.. 그 뒤론 그냥 병실 문만 보고 온 적도 있어요.

병원이 우리 엄마네서 가까웠거든요.

마지막으로 나와 대화를 나눈 날은 병간하던 친정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주무신다고 했어요. 내가 간 걸 무지 환영하며 주무시더라구요. 잘왔다. 나좀 자자. 그러면서 이내 코를 곯았죠. 사실 그 날은 나도 바로 눈인사만 하고 나오려다가 두 세시간 잡혀 있게 됐어요.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딱 하나만, 딱 하나만 놓으면 죽는다는 걸 알겠어. 근데 그걸 놓는다는 게 참 힘들더라. 이렇게까지 살고 있는 날 보며 넌 무슨 생각을 하니?

참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넌 내가 어떻게 살길 바라는건데? 네가 그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어떻게 사는 게 좋을 것 같은건데?

두 가지 방법이 있대요. 물었죠. 뭐냐고.

첫째, 용서하며 살아라. 너를 희생하며. 사는 거 별거 아니잖아.

그래? 그게 쉽니? 넌 쉬웠니?

내 질문에 그 친구 웃었죠.

아니. 어렵지. 그게 안되면 너만 위해서 살아. 너만을 위해.

어려운 말이었죠. 이거나 저거나 참말로.

그리곤 이주 째 아무 것도 못먹고 피만 게워내던 그 친구 소원이 하나 있대요. 레몬에이드 그게 먹고 싶대요. 얼음을 꽉 재운 시원한 레몬에이드.

너 레몬에이드 좋아했었어?

아니.

그럼 왜 그게 갑자기 먹고 싶어졌어?

그냥. 그거 마시면 속이 다 시원해질 것 같아.

그 친구 배를 봤죠. 복수로 임신 8개월은 되어 보이고 바짝 마른 몸. 산소 호흡줄을 콧구멍에 끼우고 있었어요. 물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하는 게 그게 먹고싶다니까 너무 맘이 아팠어요.

야 지지배야. 레몬에이드가 뭐가 맛있냐? 시고 떨떠름하고 맛 드릅게 없어. 세상에서 젤루 맛없는 게 그걸거다.

퉁명스레 말했죠. 그 친구 날 째려보드니 한 마디 뱉었어요.

쌍년.

콧구멍엔 줄 두개를 끼고 평소의 욕쟁이다운 모습으로 욕을 하는 거에요. ㅎㅎㅎ
아구. 난 너무 웃겨서 배꼽이 빠져라 웃었죠.

그리곤 그 친구가 피를 두세컵 토하더라요. 지도 놀래고 나도 놀래고. 그리곤 부끄러워하며

아이. 토했다. 야 지지배야 내가 이래서 너 오지 말라고 하는거야.

야. 너 환자인거 다 아는데 어때서 그냐. 너도 그거 공주병이야.

속으론 무척이나 놀랬지만 그렇게 대범한 척 했죠. 그렇게 며칠 버티다 그 친구는 이내 진통제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갔어요. 췌장암은 산고의 250배 통증이래요. 삼일을 죽여달라고 엄마한테 떼를 썼대요. 그러면서도 그 친구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어요. 엄마가 물었대요. 왜 안마시냐고. 그 친구 그러더래요.

이거 마시면 죽잖아. 죽음 안돼.

하지만 너무 고통 속에 있었죠. 안락사. 수면제를 놓으면 99프로의 환자들이 못 깨어난대요. 그렇게 그 친구는 잠을 잤어요.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심장이 멈추던 시기에도 수면상태였는데 얼굴엔 눈물 범벅이었대요.

장례식장 이름은 연화장이었죠. 망자000. 망자라는 단어가 망측스럽게 다가왔어요. 무서웠죠. 사진엔 평소의 예뻤던 사진이 환하게 웃어서 가슴을 미어지게 했어요. 그리고 사실 너무 이뻐서 더 처량맞기도 했죠.

우린 그 친구 덕분에 20년 만에 동창회를 연 것 같았어요. 얼굴만 가물가물했던 애들이 현실로 다가와 아줌마들로 만나서 수다도 떨고 추억도 얘기하고...

이틀을 장례식장에서 새우고 오늘 충청도 장지까지 다녀왔어요. 겨울 바람은 매서워서 현기증이 일어났죠. 온 공동묘지엔 햇빛이 가득했어요.

양지바르고 좋네.

같이 간 친구들이 끄덕끄덕. 하지만 우린 그 친구의 대답을 알죠.

얏년아, 너같음 좋겠냐 지지배야.

아마 그랬을거에요. 지지배.

그 차가운 땅에 그렇게 묻혔어요. 잘 갔음........여기 미련 버리고 이젠 잘 갔음....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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