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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3-2 (소리없는 큰 힘)

매년 봄이면 교내 합창 대회를 한다. 곡목, 반주자, 지휘자를 정해야 한다. 반주자야 피아노를 제일 잘 치는 학생이 하면 되지만 지휘자를 정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게다가 입학한 지 몇 달 안 된 중 1 이었기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휘자를 정하지 않고, 일단 내가 지도를 하면서 적임자를 찾고자 했다. 방과 후에 모두 남아서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다. 성준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아이는 피아노 소리가 안 들릴 텐데… 제대로 발음을 못하고, 음의 높낮이 구분이 어려우니 소리도 못 내고…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벙긋 하고 있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저 아이가 합장 대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노래를 안 불러도 되는 자리가 하나 있다! “지휘!!!” “어머니, 이번 합창대회에 성준이를 지휘시키려고 합니다. 마침 곡도 4분의 3박자라 일정하게 삼각형만 반복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아요….” 어머니는 너무 감격해 하셨다. 반장에 이제 지휘까지… “힘들겠지만 열심히, 정말 열심히 연습시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준이 어머니는 일년에 몇 번씩 링겔을 꽂으셔야 한다. 성준이 때문이다. 비록 장애가 있지만 어짜피 성준이가 교육을 받고 나갈 장은 사회이기 때문에 힘들더라도 일반 학생들 틈에서 교육받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모두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신 것이다. 대신 성준이가 학교에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머니가 지도해야 했기에 더 많은 신경을 쓰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복습을 시키고, 다시 예습까지 시키는 어머니의 열성으로 성준이의 성적은 상위권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집중력을 키워주기 위해 서예를 가르쳤으며, 성준이는 피아노도 잘 친다. 성준이가 반주를 하면 성준이 여동생은 플륫을 불고, 엄마아빠는 같이 노래를 부른다고 말씀해 주셨다. 즉 성준이의 주도로 가족 음악회를 한다는 소리다. 나는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정말 지휘자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여지는 합창대회가 될 것이다. 우리 반인 1학년 2반의 순서다. 아이들이 강당의 무대 위로 모두 올랐다. 성준이가 지휘 단에 오르고 모든 아이들의 눈은 성준이를 향하고 있다. 성준이가 반주자에게 신호를 보낸다. 전주가 나온다. 성준이는 엄마와 끊임없이 연습한 지휘를 하며 첫 시작을 합창단에게 알린다. 성준이가 그리는 정확한 삼각형을 따라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났다. 지휘자가 뒤로 돌아 인사를 한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해냈다! 듣지 못하는 성준이를 중심으로 우리 반 아이들은 해내었다. “선생님, 셜리반 선생님 같아요. 헬렌켈러의 선생님 말이에요…” “선생님, 어떻게 성준이를 지휘 시킬 생각을 했어요?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제가 해낸 것이 아니라 착한 우리 반 아이들이 해낸 것이에요. 선생님의 결정에 불평없이 잘 따라 준, 너무너무 대견한 우리 ‘천사’들 말이에요.” 그 착한 아이들, 정말 천사같았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듣지 못하는 친구가 반장이 되었던 기억을 지금은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합창대회 때의 사실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인생을 개척하고 있기를 바란다. 20대 후반의 젊은 날을 성실과 인내로 끊임없이 도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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