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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늦어 미안합니다.

모두 안녕하시지요? 다들 날씨 얘기들 하시니까, 이곳은 인디언 섬머인지 아주 따뜻하고 청명한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급할때 긴급 도움을 요청하고, 이후 소식이 너무 늦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경험을 나누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경희대학교 공모전에 보내려고 그간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어린 학생들과의 수업에 이제 조금 적응하고 있습니다.ㅎㅎㅎ 한국 역사 문화 속으로 퐁당!! 타미, 이삭, 마이야, 마리아, 시몬, 데니스, 캐더린, 수빈, 유미, 타로, , 의젓한 시몬은 4학년, 어리광쟁이 캐더린은 1학년. 6세부터 10세까지의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이곳 코리안 센터에 도착하면 2시 30분이다. 아이들은 간단한 간식을 먹고 한국어와 한국역사문화를 체험하러 g1교실로 달음질쳐 온다. ‘안녕하세요. 진 선생님!!’ ‘안녕!! 얘들아. 어서 와. 우와,,, 캐더린 들고 있는 것이 뭐야? 마이야는 오늘 예쁜 옷 입었구나. 시몬 잘 있었니? 모두, 가방은 이쪽에 놓고 이름표 들고 자리에 앉으세요.’ 아이들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내 눈을 맞추고, 무슨 말이건 한마디씩 던지며 가방을 놓고 이름표를 찾아 자리를 잡는다. 미국의 릴리안텔 초등학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어 이멀전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유일한 공립학교이다. 10세 이하 초등학생들과의 방과후 활동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몇몇 학부모들의 제안으로 이번 가을 처음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아이들은 서툴지만 이미 한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알았고, 간단한 한국말을 할 줄도, 들을 줄도 알았다. 추석이었던 그날은 학교에서 추석에 관한 것을 배운 듯, 한복을 입고 온 학생도 있었고, 선생님과 함께 처음 만든 김밥을 먹어보라고 가져온 학생도 있었다. 학교에서 최근에 배운 듯한 ‘곰 세마리’와 ‘싹이 났어요’를 소리 높여 함께 부를 때는 자랑스러운 눈빛이 가득했다.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걱정으로 잠을 설친 나는 첫시간을 마치며, 아이들이 이미 한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아이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에 놀라면서 이번 학기 전과정을 다시 생각해야 함을 느꼈다. 코리안 센터로부터 이 수업에 관한 제안을 받고 망설였던 것은 초등학생과의 수업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면서 어떤 한국문화를 체험하게 할까? 학생들은 얼만큼 한국, 한국어, 한국문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일까? 무엇으로(어떤 내용으로) 이들의 한국에 관한 관심을 지속시켜줘야 하나? 어린 학생들의 한국어 교육에도 한국역사의 부분을 연결할 수 있을까? 5세 학생부터 등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업의 방향을 두가지로 생각했었다. 첫째, 한글공부는 과정을 마치면 읽고 쓸 줄 아는 수준으로 하자. 둘째,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소재로 수업활동을 해보자. 한글을 10회에 배울 수 있게 계획했으며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소재에 관한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태극기 그리기, 무궁화 꽃 찾기, 종이접기로 한복 만들기, 윷놀이, 동요부르기, 사물놀이 악기 연주해보기, 탈만들기를 수업활동으로 계획했다. 첫시간에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 그리기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20년 한국에서 거주하다 미국으로 돌아오신 지도교수님과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관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외국인 학생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첫시간에 왜 태극기 그리는 활동을 선택했냐는 질문이었다. 어떤 것이 한국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과 함께 그것은 혹시 민족적 관점을 반영한 생각은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모든 국가의 첫번째 상징이 국기이므로 당연히 한국의 첫 상징물로 선택했다고 대답하면서도 한켠으로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을 가르친다는 것이 어떤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민족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소재와 범위로 순서를 가지고, 그러니까 문화라는 보편성 속에서 한국문화라는 특수성을 생각할 수 있는 수업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태극기 그리기’는 세계지도를 칠판에 제시하고 한국과 미국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고, 학생들이 알고 있는 다른 나라도 이야기 해보면서 미국국기와 태극기,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나라 국기를 지도에 표시해보는 수업으로 수정하였다. 첫시간을 마친 후, 학생 활동의 방향을 한국의 역사 문화라는 소재로 바꾸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한국의 옛날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작품들을(문화재) 그림으로 보여주고 본 것을 비슷하게 만들어보는 활동을 계획했다. 한국의 옛날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르게 살았었고, 다른 모양의 것들을 남겼으며 그리하여 한국은 지금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소망하면서. 우리 역사가 남긴 흔적들에는 어린 학생들을 매혹시키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신도의 현무와 주작, 청룡, 백호, 반구대 암각화의 비밀스런 그림들, 신라 금관의 독특한 아름다움, 백제 향로의 경이로운 조각, 팔만대장경의 놀라운 솜씨, 거북선, 장승과 고인돌, 여러가지 탈, 어느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 다양함과 풍부함은 또 어떠한가? 어떻게, 어린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그것을 재현하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처음 시도한 활동은 신라 금관 만들기 였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한국의 한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만들어본 신라 금관의 도안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참고하여 금색 캔트지로 마름질을 한 후 꾸러미에 넣었다.(사진 참조, 금관띠, 나뭇가지 모양 3개, 사슴뿔 모양 2개, 금색 색종이) 캔트지가 얇아 세워지지 않아 뒷면에 두꺼운 종이로 버팀대를 만들어 붙였다. 한글공부와 연결한 단어는 사슴, 나무, 왕, 왕관, 신라, 1,500년 전, 세 개, 두 개, 붙이세요 등이다. 코리언 센터 도서관에서 신라금관의 화려한 사진을 구하고, 누군가 이곳에 기증한 모조 금관을 실물로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모조 금관을 보던 아이들의 놀라움의 탄성과 눈망울, 자신의 손으로 신라 금관을 만들어 머리에 썼을 때의 자부심과 자신감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궁금하신 분은 http://korealist.org/kci-iic/lilienthal/20061020_kci_lilienthal/ 를 방문하셔서 직접 확인하시라. 왕관을 완성한 여자 어린이들은 모두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뒤따라간 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한덩어리가 되어 커다란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캐더린은 ‘우리는 KCI’ 라는 구호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서 손사인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따라 손짓하며 합창했다. 그날, 아이들은 한마디로 한국역사문화 속으로 퐁당 빠져버렸다. 할로윈 데이를 앞둔 주에는 사신도를 활용한 탈 만들기를 해보았다. 수업 전 진돗개와 삽살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라 모두 환호성을 지른다.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라는 동화책을 함께 읽으며 삽살개가 한국에 살게 된 내력과 그곳에 나온 현무, 주작, 청룡, 백호의 그림을 함께 보았다. 도서관 책과 인터넷에서 찾은 실제 사신도와 만화 캐릭터를 컬러프린트 한 후 일회용 종이 접시의 뒷면에 좋아하는 그림을 찾아 붙이도록 했다. 눈과 코를 만들고, 펀치로 귀에 거는 구멍을 낸 후 얼굴에 쓰도록 했다. 함께 공부한 한글 단어는 동, 서, 남, 북, 거북, 주작, 현무, 청룡, 백호, 가면, 고구려, 무덤 등이다. 이삭은 주작을 본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서 종이 접시의 뒷면에 직접 주작을 그렸다. 한국 역사의 흔적들을 재현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역사 교사였던 나에게 역사 공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학생들은 역사 수업을 늘 어려워했다. 수없이 외워야 했던 많은 사실들과 사건들이 학생들을 지치게 했다. 학생들 모두 역사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 대한 감수성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국어 공부를 하는 외국인 학생들 모두도 한국어 학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한국어 공부를 더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특히 한국에 관한 감수성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재료는 우리 역사 속에 무수히 널려 있다. 보고 만져보고 만들어보면서 아이들이 한국을 상상하고 느끼고 즐거워하기를, 그리고 그렇게 한국을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의 관심은 내가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매혹되었던 것들을 쏠려있다. 그것들,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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