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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7 (환상의 커플)

세상엔 부자가 많다. 재산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할 때 나도 부자라고 말하고 싶다. 내게 있어 재산은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사람 중 가족은 누구에게나 해당될 것이다. 가족 외에 평생을 같이 하며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 확신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부자라 생각한다. 물질적 풍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 ‘든든한 충만함’은 그런 사람을 가진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렇게 나를 부자라고 확신하게 하는 사람 중에 ‘제자’ 종찬이가 제일 먼저 꼽힌다. 가족 외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제자’로 꼽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기에 이 글을 쓰면서도 어깨가 으쓱거려지고 참 행복하다. 모범생의 모든 조건은 다 갖춘 종찬이었다. 성실함, 단정함, 따뜻한 마음, 깊은 신앙으로 무장된 올곧은 인간성, 겸손, 그러면서도 잃지 않는 자기애. 뚜렷한 주관, 높은 사고력, 논리력에다 뛰어난 글재주까지 있어 나를 감탄시킨 학생이다. 그런 종찬이를 개인적으로 지도한 일이 계기가 되어 그가 중 3 때 1년 가르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7년의 세월동안 종찬이가 부족한 나를 스승으로 섬기며 한결 같은 마음과 도움을 주었기에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내가 살면서 신세를 진 사람 중 1순위를 꼽으라면 종찬이를 들만큼 나는 종찬이에게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전교생 앞에서 특순을 하는 학급 발표회는 매년 도와주었고, 합창대회 때는 일요일도 마다 않고 학교에 나와 남학생 파트를 지도해 주었으며, 고등학교, 대학에 가서도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기쁘게 도와주었다. 심지어 군대에 가 있으면서도 컴퓨터 관련일로 나를 깜깜함에서 구해주었고, 내 결혼식 때는 007 특급작전으로 차 안에서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Sliding Safe 로 식장에 도착해 사진을 ‘짠’하고 찍을 만큼 가족 같은 존재이다. 내가 미국에 온 이후에도 내 생일, 명절, 스승의 날 잊지 않고 연락주며, 한국을 가면 그 날 밤으로 달려 나오고, 뉴욕에 들어올 때는 가족을 물리치고 나를 배웅해 줄 정도이니 황송할 따름이다. “선생님, 지금 출판사랑 다 얘기 끝났는데요. “OO 문화사” 라고요. 언어교육, 인문사회계열 쪽으로 아주 유명한 곳이에요. 원고만 가져 오면 선생님 책 내드린다고 했어요… 제 책을 낸 곳이라 제가 잘 알거든요.... 선생님은 아무 걱정 마시고 원고만 빨리 주세요…” 작년 겨울 한국에 나갔을 때 나의 미래 계획에 대해 얘기 나누다, 나보러 책을 하나 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곧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새 알아보고 전화를 준 것이다. 물론 준비도 안된데다 실력도 안돼서 출판할 마음은 없지만 나의 미래에 대해 나보다 더 애써주는 제자가 있다는 사실이 참 든든하고 행복했다. 가정에선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 사회에선 손꼽히는 주니어영어교육 전문가로 강의에 저술에, 연구에 분을 쪼개서 살아야 할 만큼 바쁘면서도 나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쏟아주는 제자가 있으니 이쯤 되면 내가 부자라고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때문에 한국사회가 들썩이고 있다는데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나만큼은 든든하지 않을 것이다. ^*^ 이런 종찬이를 통해 다른 아이들의 소식도 자주 듣는다. 그 중에 가장 반가운 소식은 영신이 이야기다. 영신이와 종찬이는 학급 발표회 준비로 종찬이가 저녁 늦게까지 우리반 일을 도와주었을 때 서로 얼굴을 익혔다.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척척 일을 잘 할 뿐더러, 슬쩍 나가서 아이들 빵이랑 우유를 사올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으니 모두 종찬이 오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을 거다. 그 후 영신이가 종찬이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 들어가고, 종찬이가 제대 후 복학하면서 둘은 대학선후배 사이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영신이는 여제자 중, 아내감 1위로 꼽을 만큼 착하고 현명하면서 애교가 많은 아이다. 호주에서 씩씩하게 삶을 개척하고 있는 미희도 떠오르지만 미희는 착한 것이 흠이랄 정도로 너무 착해서… “선생님, 아이들 잘 모르시죠? 제가 아이들을 소개해 줄게요. 얘하고 얘는 장난꾸러기라 같이 앉히면 안되고요, 얘는 너무 조용해서 친구가 없어요. 얘는 오락부장 감이고요, 얘는 그림을 잘 그려요. 그리고 얘는 ….” 전 담임의 사직으로 2학기부터 맡게 된 학급의 부반장이었던 영신이는, 교무실에 직접 찾아와 내게 익숙치 않은 아이들을 하나하나 소개시켜 줄 만큼 싹싹하고 사려가 깊었다. “선생님, 이번 달에는 이런이런 행사가 있어요. OOO 가 필요한데요. 123번은 제가 준비할 테니 456번은 선생님이 준비해 주세요…” 중 1 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정도로 일을 추진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선생님,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예쁘게 신으세요…” 책상에 살짝 놓여있는 분홍 털신만큼 포근하고 깜찍한 애교. 공부는 물론 피아노와 바이올린, 노래 수준급, 탁구도 잘 치고… 살짝 들어가는 보조개만큼 타인에게 상큼함과 웃음을 주는 영신이는 정말 매력만점의 아이였다.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호호호…” 영신이 특유의 깔깔대는 웃음이 전화선을 통해 들려온다. 이어 종찬이도… 아니! 새해 첫날, 지금 한국은 한밤중인데 둘이 같이 있다니… 영신이 집이란다. 저녁 때 어른들께 인사 왔다가 전화한다고. 대학 선후배로 지내다가 서로 사귄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설날 인사를 갈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 지는 몰랐다. “OO 씨, 종찬이는 잘 알테고…. 내가 똑똑하고 야무지고 싹싹하다고 말한 영신이 있지? 아무래도 그 둘이 결혼을 할 것 같아. 내가 남편감 1위로 꼽는 제자와, 아내감 1위로 꼽는 제자가 결혼을 하게 되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아? 둘이 너무 잘 어울려. ‘환상의 커플’이 될거야… 옛날에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너무 신나서 남편한데 자랑하듯이 얘기를 했다. 마치 큰 보석 두 덩이를 얻은 양 뿌듯하고 흥분된 마음에 한참을 떠들었고, 그 만큼 두 애제자가 같이 꾸려갈 가정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지금부터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올리겠습니다… 신랑, 입장!” 종찬이가 당당히 입장을 한다. “ 따안 딴 따단 ♪?♪ 따안 딴 따단…♪?♪” 웨딩 마치가 울리며 신부가 수줍게 입장을 한다. 어여쁜 신부 얼굴 위로 야무진 영신이 얼굴이 오버랩 된다….. 아마 영신이와 종찬이가 결혼을 했으면 소설 같은 재미가 더해졌으련만 안타깝게도 종찬이와 영신이는 그 후 헤어졌다. 그러나 그 소설같지 않음이 오히려 내 글에 현실성을 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제자 커플’이 나왔으면 참 좋았으련만… 요즘도 가끔씩 너무너무 아쉽다. 그러나 그것은 내 욕심이고, 종찬이는 종찬이 데로, 영신이는 영신이 데로 ‘각자’ 환상의 짝을 만나 잘 살고 있으면 그것이 그들에게도, 또 나에게도 큰 행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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