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조회를 하러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이 가는 자리가 있다. 현주의 자리이다. 그 자리에 현주가 앉아 있으면 일단 안도의 한숨부터 쉰다. 현주가 없으면 뒷목이 뻐근해 오며 신경이 곤두선다. 이 아이가 또 집을 나갔구나… 중 1인 현주는 아주 예쁘고 키도 크며 다른 친구보다 성숙한 편이다. 그런 현주가 입학 한 지 2달 정도 지났는데 결석을 했다. 부모님께 연락했더니 “아니, 현주가 학교를 안 갔어요???” ‘이건 또 뭔 소리?’ 어젯밤에 친구 집에서 잔다고 해서 허락해 주셨단다. 무남독녀인 현주는 부모님이 늦게까지 일하셔서 심심하니까 친구 집에서 자주 잔다고 말씀하시며 학교를 안 갔는 지는 몰랐다며 한 술 더 뜨신다. “아니, 그럼 얘가 어디를 갔단 말인가? ” “아침에 학교 오려고 친구랑 나왔는데요오… ‘봄 햇살이 눈부시다…. 꽃이 예쁘다아…’ 서로 감탄하다가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이 나와서…… 그냥 돌아다녔어요. 쇼핑 센터도 가고, 떡볶이랑 튀김도 사먹고, 공원 가서 꽃구경도 하고…. ” ‘이그… 지들이 무슨 이방인의 뫼르쏘라고… 어른들은 걱정으로 가슴이 타는데 봄날이 예쁘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싸돌아다녀?.... 그래, 눈부신 햇살이 죄다. 죄야…. 한 번쯤 충동적인 일탈을 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 ’ 현주에게 화가 나면서도 그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도 없잖아 있기에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으로 현주의 찬란한(?) 무단 결석은 면죄부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달, 그 다음 달… 이제는 날짜를 늘려가면서 가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낙엽 떨어지는 가을엔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린 여학생들이 3일 이상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선생 X 은 개도 안먹는다’는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정말 속이 탈대로 탔다.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할텐데...피가 마르는 긴장과 불안감이 교차하며 현주가 어서 빨리, 무사히 돌아와주기 만을 바랬다. 이번엔 이유를 뭐라고 달려나?… 떨어지는 낙엽이 허무해서라고 하려나??? 현주는 5일 만에 돌아왔다. 친구랑 학교에서 해방되어 하고 싶은데로 놀고 먹고 했단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돌아온 거고… 별 일없이 돌아와주어 고맙기도 했지만 그 동안 속썩인 거며 매번 학교의 처벌에서 보호해주고 타이른 내 정성과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현주가 너무나 야속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체벌은 피하자’ 가 내 교육 철학의 하나이자 학교의 방침이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나의 지도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이젠 극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 현주가 가출 할 때마다 말로 타이르고 선처를 해주니까 그 때뿐이고 계속 가출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매 좀 들겠습니다.” 어머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현주 엉덩이를 수없이 때렸다. 현주가 아파서 저절로 주저앉을 때까지…. 내 마음도 주저 앉는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잘 타이르며 교육시키고 싶었는데… 결국 매가 교육이 되어버린 현실과, 나의 무능함으로 인해 한동안 힘이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매 사건 이후로 2달 이상을 가출을 하지 않고 잘 견뎠다. 그리고 2학년으로 무사히 진급을 할 수 있었다. 진작 매를 들었어야 했나??? 그러나 현주는 2학년이 되고 몇 달 안 있다 다시 가출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내가 너무 현주를 유하게 다루어서 그랬다고 한 소리들을 한다. 처음에 가출 했을 때 따끔하게 매로 다스리고, 학교에서 징계를 주고 했어야 했는데 담임이 학생을 너무 감쌌다는 것이다. 결국 1학년 때의 전과도 있기에 정학 처분을 받았다.정말 내가 진작 매를 들고 학교에선 정학 처분을 하고, 그랬어야 현주의 가출 병이 나았을까??? 미국에 와서 가끔 현주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무식했고, 한국교육이 얼마나 후진적이었던 가를 깨닫게 된다. 아마 현주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현주는 심리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양호 선생처럼 학교에 상주하는 상담 심리 전문교사가 있어 문제 학생은 일단 상담 치료를 받고, 심각한 학생은 특수 교육을 받게 하여 의학적, 정신적 치료를 병행하며 교육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현주의 가출은 일종의 ‘병’이었고, 그 원인을 찾아 ‘치료’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지 매로 다스리거나 정학을 시킨다거나 하는 식의 물리적 방법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이미 10여 년 전의 일이니 이제 한국도 좀 더 선진적 방법으로 학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미국 교육’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밖에 나와 보니 ‘한국’과 ‘한국의 교육’을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책에서 본 지식이 아니라, 생활에서 보고 느낀 ‘미국 교육’과 ‘미국’이라는 나라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축복은 남편과의 1년 간 별거(?)라는 혹독한 값을 치른 후에 얻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