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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여행기 3

남섬에서의 이튿날은 짐을 다 싸 들고 퀸스타운이라는 휴양 도시로 가는 긴 일정이었다. 뉴질랜드 남섬 여행은 꽤 긴 버스 여행으로, 체력을 요하는 여행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야와 양 떼’ 라더니 정말 그랬다. 12시쯤 되자 버스가 우리를 내려 놓는데, 나가보니 데카포 호수라는 곳이다. 멀리 마운틴 쿡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고 호숫가에는 보라색 라벤다꽃이 피어 있어서 탄성을 자아냈다. 옥빛 수면은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퀸스타운으로 가는 길에 마운틴 쿡에 들려 점심을 먹었다. 일정에는 마운틴 쿡에 간다고 되어 있어서 높고 웅장한 산에 올라가나 보다 했는데 (한계령 정도를 상상) 그냥 등산로 입구에 호텔, 식당과 비지터 센타가 있는 작은 타운에 들르는 것이었다. 마운틴 쿡은 남섬을 남북으로 흐르는 산맥이어서 버스 여행 내내 같이 내려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쬐금 실망... 게다가 그 타운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비까지 내려서 마운틴쿡은 비구름에 쌓여 있는 몽롱한 모습 밖에 볼 수 없었다. 이제는 좀 지루하다 싶은 생각을 하고 나서도 2시간을 더 달려서 6시 30분 정도에 드디어 퀸스타운에 도착했다. 호반의 도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남섬 여행의 진수라는 밀포드 사운드로 향했다. 나는 지금도 그 밀포드 사운드까지 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다. 테아나우 호수가 강물처럼 길게 흐르고 있는데 어제 데카포 호수에서 본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넓은 보라색 라벤다꽃밭이 호숫가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목의 계곡에서 탕탕히 흐르는 계곡물은 백담계곡에 꿈뻑 넘어가던 내게는 정말 놀라운 충격이었다. 너무나 크고 웅장한 백담계곡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경복궁만 보다가 중국에 가서 자금성을 보고는 할 말을 잊는다 하더니... 드디어 밀포드사운드에 도착. 중고등학교때 배운 피요르드 해안을 기억하시는지...빙하가 깎아놓은 골짜기에 바닷물이 채워져 만들어진 해안인데 깎아 지른 듯한 절벽으로 폭포들이 장관을 이루면서 호수 같은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곳은 남섬에서도 강수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라는데 그러다보니 비가 얼마나 오는가에 따라 그 폭포들이 한 줄기 시냇물도 되었다, 홍수 맞은 강물도 되었다 한다고 한다. 1시간 30분 가량 유람선을 타고 피요르드 해안을 돌아보고는 온 길을 되돌아 다시 퀸스타운으로 향했다. 퀸스타운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햇살이 화창한 오후였다.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방향의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노라니 어? 분명 어제도 이 길을 왔는데 어제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은아, 저기 봐, 저기. 너무 예쁘지?” “와, 정말 예쁘다.” 이 순간에 한 마디. “성은아, 어제도 우리가 이 길을 갔었거든. 근데 어제는 엄마도 별로 좋은 거 몰랐어. 그냥 음~ 좋다 그 정도였어. 근데 오늘 보니까 너무 아름다운 거 있지. 왤까? 어제는 엄마가 너무 힘들었었거든. 그리고 날씨도 이렇게 좋지 않았고... 봐, 똑같은 사물인데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으로 보는 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단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환경에 따라, 기분에 따라 똑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느 한 부분만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해선 안 돼.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세상에 이해하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단다. 그리고 엄마는 이런 생각했어. 햇님 같은 존재가 되어야 겠다고. 세상을 저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햇님 말야. “ 내 말을 이해하는지 우리 성은이, 햇님보다 더 예쁘게 웃는다. 한국에 있을 때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 여행을 가곤 했다. 버스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시골로 나가면 창밖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게임에 열중한 애들을 흔든다. “얘들아, 게임만 하지 말고 창 밖 좀 봐, 너무 아름답다.” 애들, 창밖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뭐가 아름다워요?” 내 말을 이해를 못 하는 거다. 뭐가 아름다운지를 알지를 못 하는 거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아름다운 거 보면 같이 감탄하고 서로 보여주고 한 우리 애들은 조금만 예쁜 게 있어도 엄마, 저거 보라고 난리다. 자식은 부모하기 나름인 것 같다.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느낄 줄 알고 감사한 걸 감사하다고 느낄 줄 알게 키워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솔직히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아이가 그저 착하고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 된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하면서 스트레스 받던 게 너무 싫어서 나는 자식 낳으면 ‘위로도 넉넉하게, 아래로도 넉넉하게, 그저 중간만 해도 만족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애들이 학년이 올라가니, 공부가 1등은 못 하더라도 상위권에는 들었으면 하는 욕심에 자꾸 애들을 닥달하게 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한 편으론 자기 변명이다. ‘사람이 어디, 뭐가 옳은지 몰라서 못 하나? 알면서도 못 하는 게 사람이지...’ 어쨌든 내 말 뜻을 알아듣고 웃어주는 내 아이가 참 예쁘다. 성은아, 너도 꼭 햇님이 되어라. 12월 28일. 그날은 우리 결혼 15주년 기념일이었다. 근사한 걸 먹자 하고는 호숫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맛 있는 씨푸드 세트와 와인을 먹고는 별빛 받으며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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