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제자들은 늙지 않는다. 지금쯤 대부분 30대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되었겠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들을 처음 만났던 10대 청소년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여 동해의 첫 제자 ’16 악동들’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중3이며, ‘물새’ 중창단은 중2, 듣지 못하는 반장을 열심히 도왔던 착한 그 아이들은 14살, 중 1인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자주 만나고 있는 ‘환상의 커플’의 종찬이 또한 눈앞의 모습은 30대 아저씨지만 내 마음의 눈은 여전히 중3 때의 꿈 많은 소년으로 고정되어있다. 그러나 한국학교 제자들은 그렇지가 않다. 4살 때 엄마 손을 잡고 처음 한국학교에 온 윤희. 아들만 있는 엄마들 모두 윤희 같은 딸 갖기를 소망했을 정도로 야무진 매력이 돋보였던 아이. 동화대회에 나가 단위에 오른 5살 때 모습은 토끼 같았고, 동요대회에 나가 두 손 잡고 가락을 맞추는 6살 때의 모습은 나비 같았다. 그렇게 모두의 깜찍한 인형이었던 윤희가 2학년이 되자 키가 부쩍 크더니 애띤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가슴까지 봉긋 솟아올랐다. 갑자기 조숙해진 윤희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소녀로 성장해가는 과정과정이 엄마의 마음처럼 애틋하게 다가온다. 말괄량이 민아 또한 어떤가. 힙합 바지차림에 항상 이어폰을 끼고 음악에 맞추어 건들건들 걷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더니 머리도 기르고, 귀걸이에,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숙녀’로 변신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남학생들의 변화는 더 크게 다가온다. 6살 때부터 보기 시작한 동글동글 귀여웠던 진수, 개성이 유난히 강해 혼자만의 놀이에 빠져들며 어울리기 싫어하고, 무언가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교실을 돌아다녔던 아이… 학년을 거듭하며 좀 나아지더니 중간에1년을 쉬고 7학년 때 다시 왔을 때는 완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영화 ‘Big’(Tom Hanks 주연)에서 기계에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자 12세 소년에서 30세 어른이 되어버린 죠쉬처럼 확 달라져 돌아온 진수. 어른 같은 외모에 놀라고, 굵은 목소리에 놀라고, 듬직해진 태도에 놀라고… 온통 놀랄 일 투성이다. 이렇듯 한국학교 아이들을 생각하노라면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펼쳐진다. 마치 엄마가 아이의 성장과정을 소중히 다 기억하듯 한국학교 또한 그들의 성장사(成長史)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학교는 단순히 ‘학교’라고 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 곳이다. 그 무엇이… 어느 분이 잡지에 글을 실으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인용한 것을 보았다. “하버드대에 입학하는 한인 학생들은 많지만 졸업생 숫자가 줄어들고 사회 리더의 배출이 적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에 하버드에서 자체 조사를 해보았더니 한인 학생들에게는 강한 ‘정신적 자산’이 없음이 그 이유로 밝혀졌다…” ‘정신적 자산…' 예를 들면 유태인의 선민사상이나 중국인의 중화사상 같은 것이 그것이리라. 뉴욕에서 만난 유태인이나 중국인들 모두 자신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하다. 그들을 미국인 이전에 유태인, 중국인으로 만드는 힘! 우리도 '나를 나이게 하는 힘'을 찾고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에 ‘정신적 자산’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본다. ‘정신적 자산’을 가능하게 하는 자긍심은 자신이 누구인 지를 아는 것, ‘정체성(正體性)’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내가 누구인 가를 알아야 나를 사랑 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 나는 그 정체성 교육의 최적(最適)으로 ‘한국학교’를 꼽고 싶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최고로 꼽는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우리 글! 그 위대한 ‘한글’을 가르치는 곳! 그러나 한국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어는 단순한 제 2외국어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집에서 한국어를 배우면 언어는 익힐 수 있다. 그러나 정체성은 쉽게 습득되지 않는다. 그것은 영어의 알파벳이나 수학 공식처럼 즉각적으로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의 바쁜 생활 속에서도 매주 한국학교에 오는 경험 그 자체, 그 속에서 만난 친구, 선생님, 부모님들… 그 곳에서 배운 한국어, 한국 역사와 문화… 이 모든 것들이 거듭되고 종합되어 ‘내가 누구인가’를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생활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져진 정체성은 자신의 모습을 확실히 인식하게 하기에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안델센의 동화 ‘미운 오리새끼’처럼 주변의 친구들과 생긴 모습이 다르다고 놀림을 받고 주눅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모습을 알게 됨으로 인해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세계화의 시대는 다양함과 독특함을 동시에 갖춘 인재를 더욱 필요로 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이미 그 조직적, 인적 인프라를 조성해 놓았다고 생각한다. 세계 100여 개국에 흩어져 있는 2000여 개의 한국학교가 그것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가 지원을 해주어서도 아니다. 그들 스스로 2세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의 아이들을 ‘뿌리깊은 나무’로 키우고 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의 후예가 각자의 자리에서 정체성 강한 실력인으로 성공할 때, 대한민국은 앉아서 영토를 넓히고 힘을 키워가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고, 세계에 지사를 둔 대기업의 위엄을 펼칠 수 있으리라…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미국에서 종사했던 한국학교 일이 너무 소중하고, 지금도 주말마다 한국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모든 한국학교 선생님들과 우리 아이들, 학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우러나온다. 한국에 돌아와 토요일의 달콤한 휴식에 젖어버린 나이기에 더욱더 위대해 보이면서… 그렇기에 나 또한 고국에서 그들을 위한 일에 일조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며 우리가 하는 그 일은 분명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되어 더 푸르고, 더 큰 나무들을 키워낼 것이라 믿는다. 우리 학생들이 한국학교를 회상할 때 아래와 같은 글을 쓰게 되기를 희망하며, 그러할 때 해외에 있는 모든 한국학교는 대한민국의 더없이 ‘소중한 재산’으로 길이 남으리라. “다른 친구들이 TV 보는 주말 아침, 나는 그 한가로움을 반납하고 한국학교에 간다. 보석을 껴안듯 반겨주는 선생님, 다정한 친구들과 부모님들을 뵈면 일상에서 맛보지 못했던 동질감을 느끼며 내 마음은 고향에 온 듯 한없이 편안해 진다… “태권!” 힘찬 외침과 동작 속에서 나는 더욱 강해지고, ‘덩더쿵’, 사뿐히 옮긴 걸음과 곱게 쓸어 내린 팔동작에서 서양의 춤과는 다른 감싸 안는 부드러움을 느낀다. 아시아 동쪽 끝 작은 나라지만 5000년 간 굳건히 지켜온 역사… 석굴암, 다보탑, 첨성대를 배우노라면 우리의 조상이 살았던 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공부량이 많아지고, 다른 하고 싶은 것도 많았기에 어떨 땐 포기하고 싶었던 한국학교. 그러나 끈 떨어진 연이 되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 준 부모님, 선생님들의 사랑… 내 유소년기의 고운 감성이 묻어 있는 곳, 태극기의 힘찬 펄럭임이 있던 곳… 그곳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해 준 나의 ‘정신적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