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한마당         국외교원 한마당         국외교원 한마당

무수리 교장?

12 월 둘째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와이카토 한국학교 한마당 잔치... 올해로 8 회를 맞는 신나는 한마당 잔치와 12 회 졸업 시상을 동시에 하며 일 년을 마무리 지었다. 전 날인 금요일……. 늘 그러했듯이 근무도 안 나갔고, 하루 종일 학교 일 마무리에 맘도 몸도 분주하다. 학교 시상에 이번엔 특별한 공로상이 하나 늘었다. 우리 학교에 윈텍(Waikato Institute of Technology)이라는 해밀턴에 있는 와이카토 대학 다음으로 큰 대학에서 외국인반의 한국어 교실에 적극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수고를 감당한 릴리안에게 깜짝 공로상을 주고는 키위와 한인이 하나 되어 더욱 활성화되는 학교를 바라보니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 우리학교가 학생 80 여명에 교직원이 20명인 작은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민 역사 15 년도 채 안된 이곳에 정식 학교로 인정받고 대학으로부터 이런 후원을 받아 무료 한국어 교실을 열 수 있다는 의미나 얼마가 새로운지……그저 감사할 뿐이다. 시상으로 모범상, 각 특별상, 으뜸상(NZ DUX에 해당하는 최우수상),공로상, 감사장, 졸업장등의 상장을 만들어 놓고 바라보는데……. 눈에 띄는 상장이 있다. 바로 졸업장이다. 우리학교 정식 첫 1회 졸업생이다.1998년도에 입학에 중3을 마치고 졸업하는 김민회. 2세에 이민 와 거의 학교와 함께한, 시작은 교장보다 선배인 학생의 졸업장을 만들며 여러 가지가 떠올라 맘이 짠했다. 졸업식장에서 엄마의 말씀, '언니보다 한국어를 더 잘해요, 다 한국학교를 꾸준히 보낸 덕분이에요' 이 말씀 한 마디에 비록 두 시간도 못자고 준비한 행사의 모든 아련함이 힘든 어깨를 감싸 안는다. 그러시며 기부금을 내놓는데...10여년 매주 토요일에 학교에 보내주신 것만도 넘 감사해 졸업장을 엄마에게 드렸는데 기부금까지……행사를 마치고 교사회의 시간에 이 첫 졸업생의 덕행이 전통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며 웃으며 말했지만, 오고가는 따듯한 정에 사제지간이라는 학교 그 이상의 것을 만나며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 이번엔 학교 성적표 겉표지도 모두 칼라로 뽑아 인쇄했다. 선생님들의 성적표 내용을 모두 내 컴으로 전송받아, 칼라인 동일한 겉표지와 함께 양면을 만들어 놓고, 하나하나 내용을 읽으며 교장 싸인을 하다 보니...울 샘들의 노고가 한눈에 보이며 발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읽혀져 지난 일 년간 아무 사고 없이 지낸 것에 주르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아마 누가 보았으면 주책이라 했을 거다. 그 밤에...혼자 잘 못하는 컴과 씨름하며 무엇이 저리 서러워 울기까지……하지만 내가 흘린 눈물은 서러움이 아닌 보람과 감사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한국학교를 꾸려나가는 학생, 교사, 학부모를 향한 자연스런 고마움의 흔적이다. 아쉬움도 있다. 2년 전 10 주년 행사 때 처음 문집을 발행했다. 그리고 격년으로 발간하자고 했기에 이번에 졸업식장에서 주기로 했는데...그만 교사 원고가 완벽하게(?) 들어오지 않아 제본을 못했다. 그냥 빼고 제본할까도 생각했지만 맘 약한 이 무수리(?) 교장, 책을 한 주 뒤로 미뤄 발송키로 하고 전체에 대한 약속을 저버렸다. 어느 것이 옳을까 많이 망설였는데...나중에 책을 받아보았을 때 우리 반 것이 나로 인해 미흡해 아쉬움을 남긴다면 그 교사가 두고두고 얼마나 상처가 남을까 생각되어 한 주 미루는데 혼자 동의하고 모든 분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교장이 문집 산타가 되어 올 여름엔 가가호호 방문할 테니 기대하시라고 애교 섞인 인사로 학부모님에게 죄송함을 대신했다. 특별히 올해 문집은 작년에 재외동포재단에서 기증받은 복사기로 우리가 돈 안들이고 자체 인쇄를 해서 바인더로 제본하기로 했기에 더 뜻 깊은지도 모르겠다. 이왕 늦은 것, 어제한 2007년 한마당 잔치 이야기와 사진도 실어야겠다.^*^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분주한 때, 전년도 교사와 통화를 하였다. '작년에 샘이 맡았던 반 아이들의 발전도 보실 겸 내일 오세요' 하였더니…….대화중 절보고 무수리 교장이라고 한다. 웬 '무수리 교장?' 그 교사는 잡일까지 다 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하고 또 고생함에 고마움도 있고 외국의 한국학교지만 그동안 본 여느 교장의 이미지와 달라서 한 말이라고 한다. 늘 맘은 울 샘들을 고생 안 시키고 학교에 교사로서만(?) 충실하게 임하게 하고픈데...고국이 아닌 뉴질랜드에서 우리말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게 여간 쉽지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말 열악한 환경이란 것은 이때 하는 말인가 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수업을 안 하는 나로선 바쁜 샘들 위해 문집도 만들고 샘들의 커피 잔도 씻고 복사도 심부름도 청소 및 뒷마무리도 하는 건데…….아마도 교장이 이런저런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난 이 말이 싫지를 않다. 오히려 고맙다. 늘 울 샘들을 섬기며 학교를 운영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가! 2008 년 새해엔 이런 계획도 세웠다. 올 해 공부했던 유아교육을 잠시 중단하고 다시 한국학교와 유치원 일만 전념하기로 했다. 오전에 공부하며 오후에 유치원 파트타임 근무가 버겁기도 했지만, 대학 공부를 이 나이에 영어로 다시 하는 게 힘든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학교 일이나 유치원 현장 근무가 훨씬 더 즐겁고 기쁘며 보람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이 계획을 세우며 쫌 아쉽기도 했다. 나이 먹으면 공부가 더 어려워질 텐데...그렇지만 건강까지 싸인을 주며 신호를 보내는걸 보고 가족이 모두 '공부 임시 보류'에 합의를 했다. 결과, 내년에 원래대로 풀타임으로 유치원에서 다시 일하기로 했다는 소리를 하자, 원장님부터 교사 아이들 모두 두 손 들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이방인의 나라에서 깍두기 발음의 부족한 자를 들어 쓰는 하나님께 감사함을 고백한다. 결국 난 대학 공부와 봉사의 기회, 이 둘 중에 기꺼이 봉사할 기회에 두 손을 들고 마냥 행복해 한다. 와이카토 한국학교 교장, 뉴질랜드 한인학교 협의회 총무, 뉴질랜드 한뉴 우정협회 일까지 크고 작은 봉사에 나 자신을 위한 공부는 좀 훗날 하기로 미루고 오늘도 나를 바라본다. 영원한 감사와 섬김의 무수리 교장을…….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