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주말’ 교통 상황은 아무도 짐작을 못한다. 아무 생각없이 차를 끌고 나왔다가는 여기 저기 막아놓은 바리케이트 때문에 곤역을 치르기도 한다. 주말엔 여러 민족의 축제와 퍼레이드, 벼룩시장 등이 열리기 때문이다. 나는 행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하므로 교통체증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건만 한 번은 ‘뉴욕 마라톤 대회’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길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미로 탐색하듯 돌고 돌아 간신히 수업 직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땐 정말 차를 팽개치고 전철을 타고 가고 싶을 정도로 애가 탔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런 것도 추억이 되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일로 갑작스런 교통 체증이 장난이 아니건만 이를 묵묵히 인정해주는 시민의식 또한 맨해튼의 보물이 아닐까 싶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을 전후로 한 토요일은 “한국의 날, Korean Day”로 맨해튼 42가에서 23가까지 행진을 하는 ‘코리안 퍼레이드’ 행사를 치른다. 12시가 가까워 오면 뮤지컬 극장이 즐비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형형색색의 한복과 자랑스런 태극기로 출렁이기 시작한다. 준비된 꽃차에 올라타거나 도보로 맨해튼 거리를 누비며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지만 힘있는 전통과 아름다운 문화가 숨쉬는 한국을 소개한다. 거리에 구경 나온 시민들은 자원봉사자가 나누어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의 행진을 환영하고 한복을 입은 사람들, 농악대, 부채춤 등 한국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느라 분주하다. 우리 학교 학생들도 2교시까지만 수업을 하고 매년 ‘코리안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아이들, 학부모, 교사 모두 한복을 입고 그 어느 때보다 신나고 흥분된 마음으로 학교버스에 오른다. 모두 함께 스쿨 버스를 타면 아이들은 놀이터에 온 것 보다 더 신나 한다. 재잘재잘…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새소리처럼 싱그럽게 느껴지고 한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이번에 새로 입학한 아비가일 가족의 한복이 유난히 돋보인다. 장신구, 고무신까지 갖춰 입은 옷 매무새가 예사롭지 않다. 아빠가 미국인인 아비가일네 가족 모두가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갖춘 것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한복이 너무 예쁘네요… 언제 이렇게 준비하셨어요?” “작년이 아비가일 동생 돌이었거든요…… 그 때 준비했어요.” “돌 잔치를 한국에서 하셨나 봐요…” “아니에요. 미국에서 했어요… 아비가일 아빠도 한복 입고 했어요…” 아빠나라인 미국에서 행해지는 첫 생일 날, 엄마나라의 한국 전통 의상을 입고 행한 잔치... 재동이 아빠가 장인어른 제사에 참여한 것이 생각나며 타민족의 문화를 조화롭게 수용해주는 아비가일 아버지의 마음에 감사하게 되고, 한복을 주(主)의상으로 추진시킨 아비가일 엄마 또한 자랑스럽다. 학교에서 배운 ‘한국 노래’를 부르다 보면 목적지인 42가 ‘Broadway’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됨을 느낀다. 4,5살짜리 꼬마들 30여명을 시작으로 각양각색의 한복을 입은 행렬은 마치 꽃의 행렬 같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진풍경인 것이다. 손에 손을 잡고 행사장소에 이르면 아이들이 탈 꽃차가 기다리고 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꽃차에 오른 아이들…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치 승전보를 알리는 군사처럼 힘차게 태극기를 흔든다. 아이들로 가득 채워진 꽃차는 우리 뿐이기에 더욱 주목된다. 취재 경쟁도 치열하다. 방송국의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갈 듯 싶으면 아이들은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환하게 웃으며 태극기를 더욱 세게 흔든다. “선생님… 저 테레비에 나오는 거죠???” 약간은 흥분된 어조로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안 나올 수도 있다라는 말은 정말 못하겠다. ‘기자님… 우리 아이들 제발 편집하지 말아 주세요…’ 40 분 정도 지나면 꽃차는 종착지인 23가에 도착한다. 모두 아쉬워하며 꽃차에서 내리고 엄마아빠 손을 잡고 각자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 가는 지 나는 보지 않아도 다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Broadway와 5번가 사이, 32가의 ‘Korean Way’로 향한다. 오후 2시부터 한국 공연이 펼쳐지고, 한국 장터가 열리기 때문이다.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고, 김밥, 떡복이, 순대, 빈대떡 등 한국음식이 즐비한 곳에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간다. 엉덩이 걸치고 앉아 야외시장의 음식을 먹노라면 맨해튼 하늘아래 고국의 향수가 피어 오른다. ‘조국의 옛 맛, 옛 멋…’ 아이들을 핑계로 나선 걸음이지만 부모님의 흥분에 가까운 '한국의 날' 참여를 덕분에 아이들 또한 고국의 향취를 느끼게 되는 날이지 싶다. 어쨌든 이날은 어른이건 아이건 한국의 멋과 맛을 듬뿍 즐기는 날이다. 한국의 날 행사를 즐기고 가려는데 저기서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나를 보자마자 신이 난 듯 달려온다. 뒤늦게 와서 의아스러운 듯 물어보았더니 볼 일이 있어 다른 곳에 들렀다 오느라 늦었단다. 그래서 한식을 맛보지 못하고 미국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어 아이들에게 미안했는데 미국인들이 한복을 보고 “Beautiful”을 연발하며 칭찬을 해주는 바람에 다들 신이 났다고 전해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어느 때보다 힘찬 어조로 자랑하듯 말을 건넨다. “교장 선생님… 사람들이 저희들이 예쁘다고 하면서 말을 걸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어요. 이것은 ‘한국의 옷’이고 “한복”이라고 한다고요. 그리고 제가 이 태극기도 설명해 주었어요. 이건 ‘한국의 국기’라고 말이에요…” 태극기까지 흔들며 말을 하는 아이들의 자신감과 긍지, 그리고 감격 같은 기쁨이 온전히 전해지며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한국의 날!” 한국의 문화를 맘껏 즐기는 우리의 축제임과 동시에 세계의 중심에 서서 한국의 문화를 널리 전파하려는 행사이기도 하다. 이 뜻 깊은 행사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한국의 문화를 즐김은 물론 그들의 마음에 ‘모국으로서의 한국’이 자랑스럽게 자리잡기를 바래본다. 당당히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인으로서의 몫을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