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여름 학기가 끝나면 ‘학부모회’에서 사은회 겸 교사들과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보통 식당에서 먹는데 어느 해에는 학부모회 부회장이셨던 준현이 어머님이 댁에서 손수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호텔 뷔페를 능가할 정도의 다양하면서도 맛있고 특별한 음식들이 즐비하였기에 모두들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치도 오이소박이 물김치 등 4가지 종류를 직접 담갔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는 눈치였다. 항상 단아한 차림인 석인 어머님의 고상한 이미지 뒤에 숨겨져 있던 프로급 살림솜씨에 칭찬이 자자하다. 모처럼 집에서 편하고 더 정감있는 식사를 하니 서로가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다. 그러나 학부모회 임원과 교사만 참여하는 시간이기에 아쉽기도 하다. 학부모 회장이 바뀌면서 몇 몇 행사도 바뀌었다. 매년 여름 종업식 날 있었던 사은회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가족들이 모여 조촐하게 식사하는 ‘쫑파티’로 대치를 하고, 한 학기에 한 번씩 장소를 빌려 ‘뉴욕브로드웨이 한국학교 가족의 밤’ 행사를 하기로 했다. 항상 그렇듯이 모든 행사에는 돈이 들어간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경제성이야말로 ‘프로 주부’들의 특기가 아닌가? 우선 장소는 ‘공짜’로 빌렸다. 그것도 허드슨 강의 반짝임과 ‘Queens Borough Bridge’의 야경이 환상의 콤비를 이루는24층의 멋있는 라운지를 말이다. 맨해튼의 고급 아파트는 고층이나 옥상에 생일 잔치 등 주민들이 각종 행사를 할 때마다 무료로 빌려주는 ‘Party Room’을 갖춰놓은 곳이 많다. 각자 살고 있는 아파트를 수소문하여 가장 멋진 곳으로 빌리신 거다. 그곳을 어머님들 특유의 솜씨로 꾸몄다. 집에 있는 그림이나 장식도 가져다 걸고, 은은하게 초도 켜놓고, 단순한 테이블에 예쁜 보를 씌우니 분위기가 더욱 화사해 진다. 그곳에 한국 잔칫집에서 주문한 다양한 음식이 놓인다. 김밥, 불고기, 잡채, 만두는 물론 삼색 나물, 각종 전, 새우, 닭강정, 편육까지 완전 한국의 뷔페 식당이다. 한 켠에는 학부모님이 하나씩 가져 온 와인이 있고, 맥주와 음료 또한 다양하다. 각종 견과류와 치즈, 피자와 과자가 놓이니 와인 바로서 손색이 없고 아이들을 위한 테이블로도 그만이다. 바로 옆,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아늑한 공간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꾸몄다. 장난감과 책을 한 켠에 마련하고, 오늘의 공작 주제인 ‘쇼핑백’ 만들기를 위한 각종 재료가 놓여있다. 보조 학생 3명이 아이들을 돌 볼 예정이다. 어머님들의 100%. 아니 200, 300%의 파티 준비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제 온 가족이 모여 서로 마음 놓고 대화를 하며 즐길 일만 남았다. 하나 둘씩 학부모님들이 등장하고, 학생의 반과 이름까지 함께 쓴 이름표를 붙여주니 누구 엄마아빠인 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다른 장소에서 친구를 만나니 더 반가운 모양이다. 넓은 홀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더니 자신을 위해 마련해 놓은 놀이방을 발견하자 그곳으로 모이기 시작하고, 엄마아빠들은 각자 선호하는 음료를 손에 들고 인사하기 바쁘다. 저녁 노을이 빠알갛게 번지며 가족잔치의 시작을 포근하게 알려준다. 평소 조용하기만 하던 장미 엄마는 오늘따라 말씀이 많으시다. 한 켠엔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자연스레 만들어 지고, 한 켠에선 외국 아빠들의 한국음식 사랑이 한창이다. 평소 눈인사만 하던 많은 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아이들을 키우는 얘기로 꽃을 피우고, 선생님들 또한 학부모, 교사들과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니 파티 장소가 더욱 훈훈해 진다. 넓은 통유리 창을 통해 만나는 맨해튼의 야경과 반짝이는 강물이 가족의 밤 행사를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준다. 맨해튼은 다른 지역에 비해 한인들이 밀집해 있지를 않다. 그래서 더 개인주의적이고 모임을 갖는다 해도 소규모적인 만남이다. 그러나 이들의 힘과 능력은 대단하다. 우리 학교만 보아도 대부분의 부모님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고, 주류사회에서 한 몫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힘들이 1.5세 한인들의 목소리를 내는 커뮤니티로 모아지지는 않고 있다. 개인적인 친분, 혹은 같은 업에 종사하는 분끼리의 가족 모임 정도의 친목만 있을 뿐이다. 미국, 특히 뉴욕 한인 사회에서 1세들의 모임은 정말 많다. 한자리에 모여 향수를 달래기도 하고 이민자로서의 애환을 나누며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지키고 서로 힘을 합해 ‘한인 커뮤니티’의 힘을 과시한다. 그 모임에 1.5세들도 조금씩 합세하지만1세들은 성인기까지 한국에서 살다 오신 분들이고, 1.5세들은 유아기 혹은 청소년기에 미국에 온 사람들이기에 경험한 문화가 틀리고 사고 방식도 틀리기에 융합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제 1세들이 개척한 미국의 한인사회를 1.5, 2세가 물려받으며 한국적인 것을 지키면서 미국적인 것의 조화를 새로이 창출해 낼 차례인데 어쩌면 그들의 힘과 능력이 결집될 계기 또는 축이 맨해튼엔 없다는 생각이다. 그 축의 역할을 지금 한국학교가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를 위해서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아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우리의 후손들! 이 아이들에게 고국의 말과 문화를 가르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모인 것이다. 어른들의 현재가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고 키워주고자 하는 만남… 비록 작게 시작된 만남이지만 이 순수하고 고귀한 목적이 함께 하며 횟수를 거듭하고 마음이 모아질 때 맨해튼의 힘있는 커뮤니티로 자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세와 2세의 징검다리 역할을 성실히 행하는 1.5세 부모의 뒤를 이어 3,4세대까지 이어지는 한인후손들의 모임, 그 보물 같은 커뮤니티가 가지는 힘의 영향력…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더욱 단단하게 펼쳐질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단순한 미국인이 아닌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그들이 유능한 세계인으로 활약할 때 대한민국의 영향력도 더불어 향상하리라는 확신이 들며… 아름다운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고 이제 아이들을 재워야 할 시간이다. 모두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헤어짐의 인사를 한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뒷정리를 돕는다. 이번엔 아빠들이 더욱 솔선수범이다. 엄마들은 준비하느라 수고했으니 쉬란다…. 테이블을 척척 접어 치우는 세민이 아빠, 청소기를 돌리는 에밀리 아빠, 민지 아빠는 쓰레기를 모은다. 경준이 아빠가 놀이방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민수 아빠 손엔 어느 새 빗자루가 들려있다. 다정하고 가정적인 아빠들의 모습이 행사 끝물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한다. 금방 모든 청소가 끝났다. 깊은 밤만큼 포근한 포옹을 하고 각자의 아이들을 안고 떠나지만 우리는 이미 각자가 아니라 아이들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떻게 키울 것인 가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미래형 모임으로 한 마음이 되었다. “정말 행복한 밤이었어요…” 모두가 남기고 간 이 한마디에 학교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온다. ‘같이 있어 행복한 모임…’ 그것은 이미 큰 힘이라 생각한다.
천사: 별찬샘, 제가 댓글을 다는 사이 글을 올렸네요. 글을 읽으며...'저도 정말 행복한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라는 고백을 함께 합니다.^*^ 같이 있어 행복한 모임, 같은 생각으로 함께하는 한마당...이미 큰 힘이라 했기에 그 기운에 제 맘도 실어 보냅니다. 내일은 더욱 활기찬 한국학교를 만날 것 같네요. 한국계 뉴질랜더들을 만나는 날이니까요... 확신에 찬 글, 감사하며...평안한 주말을... -[2008/09/19-19:16]-
다만희망: 천사님께 말 잘 듣는다는 칭찬도 받았는데 저도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흔적을 남겼으면 좋겠어요. -[2008/09/20-01:25]-
안개꽃: 별찬님! '같이 있어 행복한 모임'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감동으로 가슴 한켠이 찡해옵니다. 샘의 생생한 글에서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 봅니다. 항상 좋은 글을 써 주셔서 고마워요. 행복한 시간 되길 바랍니다. 이자리를 빌려 천사님께도 인사 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2008/09/20-0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