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국 영화에서 보아 왔던 그런 큰 저택에 저녁 초대를 받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어디에? 궁금하시죠. 이번에 새로 부임한 영국 천영우 대사님께서 강남 강북에 있는 한국학교 전 교직원을 대사관저에 초대해 주셨답니다. 사실 제겐 관저가 얼마나 컸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이런 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2주 전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대사님의 식사 초대에 대한 공고가 있었을 때, ' 이번 대사님은 생각이 깊으신 모양이구나. 그래도 해외에서 한국의 푸른 나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중요성을 알아 주시는 분인 계시구나.' 라고 혼자 생각했답니다. 2세 교육을 위한 축배를 들기 전 대사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 끼 식사 준비를 덜어 드시고 싶었습니다. 제 취지를 이해하시지 못하고 혹시 가족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고 오신 분이 계십니까?......' 30여명의 교사 중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인 교사들은 그런 대사님의 깊으신 뜻에 감격했답니다. 유머와 재치가 넘치시는 대사님의 말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드웨어는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냐 따라 기능이 달라지는 다시 말하면, 영국인? 또는 한국인이 되느냐는 갈림길에 놓여있는 게 해외에서 자라나는 한국인 2세들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바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하는 역할이 우리 교사들이며,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가르치시는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을지......'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을 영어 식민지 만들기에 온 힘을 쏟고 있는데 이렇게 깨어 있는 분도 계시구나. 한 주간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다 토요일이면 새벽에 일어나 식구들 다 팽개치고 토요학교에 가서 우리들의 귀한 시간을 바치는 샘들의 열정과 노고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런 작은 일에 감명을 받을 정도로 내게 위로가 필요한 것이었을까?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도 정책을 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면 방향을 돌려 어디로 왜 가는지 모르게 달려 가기에 바쁜 우리들의 삶에 한 가닥의 희망을 본 탓일까? 한 잔의 향긋한 포도주보다 나를 취하게 하는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