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일 때의 금요일 밤은 매일 조금 씩 준비한 수업자료들을 종합하며 총정리를 하는 시간이다. 좀 더 재미있고 실용적인 수업을 위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나 마지막까지 고심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교장이 되고 나서의 금요일 밤은 다르다. 학교 행정에 필요한 여러 서류나 일들을 준비하면서 마음 한 구석은 항상 간절한 기도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사고 나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마치게 해주세요...’ 아이들의 안전은 교장이 되고 나서 내 마음의 저변에 항상 불안감으로 깔려있는 문제다. 3살 반부터 많게는 15살까지 함께 공부하는 학교이니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 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사를 할 때도 교사의 철저한 지도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터지는 경우도 여럿 있었기에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교장으로서의 긴장감은 떨쳐버릴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무사히 하루가 마쳐지면 그 때의 안도감과 행복감은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학교 찾아 삼만리’를 통해 간신히 구한 ‘Children’s Workshop School ’ 은 소중하다 못해 간절함이 넘치는 학교다. 그러나 건물구조가 너무 복잡하다보니 적응하기 힘들고 불편하기 그지 없다. 건축학을 전공하는 보조 학생이 보기 편하게 그린 ‘학교구조도’를 선생님과 학부모 임원께 나누어 주고, 벽 마다 잘 부쳐놓았건만 그래도 불안하다. 지난 번 건물은 윗층으로 가려면 복도와 연결되어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되었건만 이사한 학교는 그 구조가 우리나라의 비상구같다. 즉 복도에서 문을 열고 나가 계단만 주욱 연결되어 있는 그런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 올라가면서도 층의 표시를 잘 봐야 한다. 안 그러면 3층 갈 사람이 4층까지 가기도 하고 2층 갈 사람이 1층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그것은 그나마 좀 낫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바깥 방향으로 문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베란다로 나가는 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안쪽 문이 아니라 이 바깥쪽 문으로 나가버릴 까 걱정된다. 게다가 이번엔 수업 간 동선의 이동도 많다. 한국어 수업은 2층에서 하고, 음악, 무용은 1층, 단소는 3층, 태권도는 4층… 이러니 아이들이 넘쳐나는 호기심을 발휘했을 때 미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하다. 그러니 항상 노심초사일 수 밖에 없다. 어디서 학생이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차’ 하는 마음이 들며 소리를 따라간다. 상규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고 있고, 아이는 겁을 잔뜩 먹은 얼굴로 울고 있다. 태권도를 하고 교실로 내려 가는 도중 안쪽이 아닌 바깥 베란다로 가는 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사단은 여기서 났다. 그 문은 열고 나가면 밖에선 문을 열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영영 못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요 문을 열면 무슨 세상이 펼쳐질까?’ 잠깐 호기심을 발휘하고 현실로 돌아오려던 상규에게 눈 앞이 깜깜한 상황이 발생한 거다. 당황한 상규가 문을 두드리며 크게 울음을 터트렸고, 다행이 상규가 공부 잘하나 잠깐 보러 올라가시던 어머님이 그 소리를 들은 것이다. 엄마를 보자 엉엉 더 서럽게 운 상규를 안으며 어머님은 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드디어 터졌구나… 미로 같은 학교 구조, 밖에선 열리지 않는 문 구조가 야속하고, 좀 더 철저하지 못했던 내가 밉고 속상하다. 너무나 죄송하여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오히려 상규어머님은 나를 위로해 준다. “우리 아이가 딴 데로 가서 그런 건데요… 그마나 빨리 찾아서 다행이에요. 걱정마세요. 상규는 제가 잘 달랬으니까요…” 너무나 감사했다. 아이들 이동 시 좀 더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했던 나의 잘못이 크건만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시는 학부모님 마음이 미안할 정도로 감사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 이동 시 2명의 책임자를 배정해 보다 철저히 아이들의 이동에 신경을 썼다. 그런데 또 한 번 일이 벌어졌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로비까지 아이들 모두 내려왔건만 부모님들끼리 얘기하는 사이 아이들 몇 명이 없어졌다. 교문은 선생님이 지키고 있었으니 아이들이 다시 교실로 올라간 것이 분명한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아차… 또 그 마술의 문으로 나가버렸나 보다… 각자 Exit 1~6 까지 맡고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본다.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 잘못하다간 우리도 못 들어올 수 있으니… 영호 아버지가 아이들을 찾았다. 부모님을 기다리기 지루했던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다 결국 마술의 문을 연 것이다. 수업 간 이동 시에만 집중했던 나의 불철저함에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고, 나의 가슴을 철렁이게 한 사건이었다. 정말 아이들의 안전 문제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의 심정으로 철저, 또 철저함이 요구된다. 어쨌든 학교의 미로 구조에 대한 경종이 두 번 울리자 그 후 ‘마술의 문’으로 인한 사고는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 년 후…나의 가슴이 철렁이다 못해 타들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한 학기를 무사히 보냈음에 안도의 숨을 쉬는 마지막 날! 이 날은 1,2교시엔 수업을 하고, 3 ~ 5교시엔 학습발표회와 종업식을 한 후, 학교 식당에서 한 학기를 마감하는 ‘뒷풀이’를 한다. 평소엔 모두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가지만 이 날은 김밥, 만두, 잡채, 떡볶이 등 푸짐한 한국음식이 매개가 되어 우리의 만남을 더욱 돈독하게 해주는 자리로 모인다. “교장 선생님…. 현수가 자전거에 치였어요…” 종업식 행사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믿기지도 않은 소리가 귀를 때리며 ‘철렁’ 가슴을 내려앉게 한다. 부랴부랴 밖으로 나간다. 밖이라고 해 봤자 강당 문을 열고, 3걸음 정도에 있는 교문을 열면 바로 거리의 인도다. ‘학교’이긴 하지만 맨해튼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거리에 우뚝우뚝 서있는 여타 건물들과 똑 같은 형태의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강당 입구에서 친구랑 놀던 현수가 교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학교 앞 인도를 통과하는 자전거와 부딪치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어린 현수가 얼마나 놀랐을까? 어깨부분의 긁힌 상처가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엄마 울지마… 나 괜찮아~…” 자신의 다친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 엄마를 위로하는 현수. 그 놀란 와중에도 엄마를 생각하는 현수의 대견스런 행동에 모두들 마음이 뭉클해진다. 우리의 마음을 두 번 울게 하는 장면이다. 현수를 친 젊은이는 연신 죄송을 연발하며 풀이 죽어 있고,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망설이고 있는데 변호사인 준기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나오셨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탄 것은 잘못이기에 경찰을 불러야 한다며 경찰에 신고를 한다. 글쎄? 이것이 경찰에 신고까지 할 문제인가??? 초보 교장으로서 정말 큰 산을 만난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 모르겠는 나로선 미국에서 태어나고, 법을 잘 아는 학부모가 하는 일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신고를 한 지 한 3분 정도 지났을까? 경찰차, 응급차, 이어 빨간 소방차까지 한 부대가 출동했다. ‘응급차는 그렇다 치고 그 큰 소방차까지?’ 그게 한 ‘셋트’ 란다. 신고가 들어오면 만약을 대비해 소방차까지 출동하는…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떤 분야건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이 오늘의 미국을 만든 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약간의 조사를 마치고 현수는 아버지와 함께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고, 경찰은 젊은이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빨간 소방차는 ‘허무하게’ 물러갔다… 현수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단순한 타박상 외엔 별 이상이 없단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며 감사함이 넘쳐난다. 그런데 그 마음 뒤로 무겁고 씁쓸한, 아주 복잡미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경찰이 데려간 그 젊은이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물론 인도에서 자건거를 탄 것은 잘못이지만 타박상만 입은 사건에 경찰이 출동하고, 경찰에 끌려가던 흑인 젊은이의 모습이 자꾸 무겁게 아른거린다. 응급차를 불렀으니 돈도 많이 나올 텐데… 보아하니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 같던데…. 또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으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혹 ‘불법체류자’라서 추방당하는 것은 아닐까??? 경찰을 부르기 이전에 청년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한 합의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젊은이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정에 약한 한국사람 특유의 정서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법대로 처리하는 냉정함… 봐주고, 봐주기를 바라는 경계가 부정확한 인정…. 그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옳고 좋은 방법인 지는 1 + 1 = 2 처럼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경우에 따라 법의 냉정함보다 정상참작이라는 인정이 필요할 수 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진정 법의 잣대로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이라면 지위의 고하나 빈부의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공명정대한 잣대로 날카롭고 분명하게 잘잘못을 조사하고 판결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 또한 사람으로서의 인정을 베풀 줄 아는 따뜻한 아이들로 키움과 동시에 인정 때문에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인정’ 많은 한국사회에서 특별히 신경 써야 될 부분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