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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공사가 뭐 하는 곳이에요???

한국에 오고 가장 낯선 것은 간판이다. 어떤 곳을 가면 진짜 한국에 돌아온 것인 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온통 영어 천지다. 그래도 영어 단어로 쓰여 있으니 무슨 뜻인 지는 알겠다. 그런데 KT, KT&G, SH공사처럼 약자를 쓴 것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야 나는 그제사 그것이 한국통신, 한국담배인삼공사, 서울 주택공사의 영어 약자표현이고, 한국에서 -미국이 아닌- 공공연하게 그렇게 불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이름도 영어식으로 짓는 추세를 이해할 만도 하나 대민업무를 맡고 있는 ‘공사(公社)’까지도 그런 이름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다. 서울 주택공사는 한국사람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에게 주택을 공급하는 곳인 지 묻고 싶다. 정말 이런 식의 영어의 남발에 대해선 화가 날 정도로 회의적이다. ‘Hi, Seoul”도 마찬가지다. 세계화 시대라고 무턱대고 영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한국말로 알려야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아닐까? 시간이 나면 서울의 거리, 여러 곳을 두루 들러보고, 행사에도 참여하며 내가 진짜 한국에 돌아왔음을 실감하곤 했다. 그런데 그 행사이름이나 홍보를 위한 정책 등을 보면 그것 또한 온통 영어 천지이다. ‘하이서울 페스티벌, 하이서울 뉴스, 하이서울 북스토어…’ 도대체 우리말이라곤 서울 밖에 찾을 수 없음에 마음이 아파오는 것은 오랜 간 외국에서 살다 온 나만이 느끼는 감정일까? 작년 연말, 청계천에서 열렸던 하이서울 루체비스타(Hi Seoul lucevista)도 그렇다. 뭔 뜻인 지 몰라 찾아보니 빛을 뜻하는 Luce 와, 풍경/전망을 뜻하는 Vista 라는 이탈이어 말이 합성된 단어였다. ‘빛의 잔치’라는 쉬운 우리말을 두고 굳이 외국어로 행사이름을 정한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 지 궁금해진다. 물론 명칭을 그렇게 만든 나름대로의 뜻이 있겠지만 대한민국 수도의 행정기관에서 하는 행사인 만큼 외국어 남발에 대해선 조심해야 하며 그것이 국민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진정 교육적인 지도 고민해보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유치원이 붐을 이루며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말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영어에 더 휩쓸려가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동시에 세계인이 모여드는 한국을 위해서도 오히려 ‘우리의 언어’로 ‘우리’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우리다운 것’이자 ‘세계에 우리를 알리는 것’이 아닐까? Hi Seuol 대신에 ‘안녕? 서울’이라고 하면 적어도 외국인들이 한국말의 ‘안녕’은 배우고 가는 그런 이치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다. 그런데 한국에 있으니 한국어는 홀대 당하고 영어가 숭상되고 있는 분위기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치 내 자식 놔두고 남의 자식을 내 자식으로 하려고 하듯이 말이다. 내 자식은 현재 공부도 못하고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는데 남의 자식인 영어는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그래서 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영어가 내 자식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소망하며 남의 자식만 안아주고 있는 것 같다. 만약 국민 모두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면 당장 한국어를 헌신짝 버리듯 버릴 추세다. 내가 외국에서 살아서일까?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소중함과 필요성이 더 가슴 뜨겁게 다가오며 범국가적인 영어의 남발과 숭상이 국민의 정체성까지 해칠까 심히 염려스럽다.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드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한글(훈민정음)은 유네스코가 세계 기록문자유산으로 지정한 문자이며, 옥스퍼드대학(언어학 연구의 세계 최고 대학)이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실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 결과 1등을 차지한 문자이다. 게다가 컴퓨터 자판에서 모음은 오른손으로, 자음은 왼손으로 칠 수 있는 유일한 문자이며 이동전화의 한정된 자판을 가장 능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총아로 떠오르는 문자이다. 유네스코에서 문맹퇴치에 공헌한 단체나 사람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세종’이고, 시카고 대학의 매콜리 교수는 10월 9일(한글날)이면 한국음식을 먹을 정도로 한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다는데 정작 한글을 쓰고 있는 한국인들의 한글에 대한 마음은 어떤 지 궁금하다. 어쩌면 공기나 물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항상 우리 곁에 있으니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외국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나는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의 글이 없고 말만 존재했다면 한국학교에서 말은 우리 말을 가르치고 글은 중국 글자인 한자를 가르쳐야 하는 모순이 생기고 한자를 그리느라(?)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창피한 일이겠는가? 그것은 우리 학생들의 정체성 확립에도 금이 가는 서글픈 일이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현재 우리에게 한글이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려 쓰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한국의 위상이 현재처럼 높아지지도 못했을 것이며 영원히 중국의 주변국이란 딱지를 떼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문득 뉴욕에서 같이 일했던 중국 젊은이가 “너희 나라는 글자가 없어 우리나라(중국) 글자를 쓰지 않았느냐?” 하며 무척 으스대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서 중국사람들을 겪으면서 자국이 가진 우수한 문화나 역사가 교포들의 자긍심과 정체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가를 수시로 느끼게 된다. 비록 본인의 현재가 초라해도 조국이 '중국'임으로 인해 그들은 항상 당당하고 자부심이 강하다. 특히 타민족을 대할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나라이름을 세계의 중심이자, 영화로움(華)의 중심이라고 지을 만큼 그 오만에 가까울 정도의 자긍심 말이다. 하긴 4대문명의 발생부터 시작해서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이어오며 세계를 재패하기도 하고, 수많은 주변국을 다스렸기에 그럴 만도 하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중국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아직까지도 그 잔재가 생활 곳곳에 뿌리 박혀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한글은 정말 돋보이는 ‘한국’의 유산이다. 물론 한글도 한자 문화권의 한계를 벗어날 수 는 없으나 우리의 글과 말의 존재 자체는 경제적 성장과는 비교되지 않는, 우리를 우뚝 서게 하는 자존심과 자긍심의 대표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우리나라의 가장 뛰어난 재산은 첨성대도 석굴암도 뜨거운 교육열도 아닌 한글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공기나 물처럼 우리가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음에도 560여년을 함께 한 한글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존재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세계 강국으로 만드는데 중요한 몫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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