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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안에 갇힌 자유 - 생화와 조화

“여보세요? 영희언니 후배인데요… ” “엄마요? 동생 학원에 데려다 주러 잠깐 나가셨어요.” “응… 상민이구나. 지금 너희 집에 가는 중인데… ” “네.. 엄마한테 들었어요. 5번 출구로 나오셔서요… 죽 올라오다 보면 빵집이 하나 있어요. 거기서 길을 건너서…” 언니의 아들, 상민이가 일러준 데로 집을 찾아갔더니 언니는 그 새 집에 와 있었다. 미국 가기 전에 만나고 처음 만나니 거의 10년 만, 아이도 어느새 유치원생에서 중학생이 되었다. 요즘 중학생들은 어떻게 변했나 궁금도 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마침 과외 교사가 오는 바람에 달랑 인사만 했다. 그 동안 밀렸던 얘기를 하자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그런데 언니가 딸을 학원에서 데려와야 한다며 잠깐 같이 나갔다 오자고 하며 부엌으로 간다. 학원 공부가 끝나면 미술 학원에 곧장 가야 하기에 차 안에서 먹을 아이 간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거지만 딸은 이미 영어과목을 마치고 바로 옆 학원으로 옮겨 논술을 들은 후에 다시 집근처 미술학원으로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하루에 학원을 3군데 다니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는 발랄하고 예뻤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또 학원으로 가려면 지치기도 하고 싫기도 하련만 차 안에서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더니 생글생글 인사를 하고 학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초등학생 체력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말로만 듣던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하는 강남 지역 아이들의 풍경을 귀국하자 마자 직접 경험한 셈이다. 언니는 멋적었는 지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바쁜 이유를 설명한다. 내년이면 아들이 중 2,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니 시간이 많은 방학 때 여러가지를 보충해야 할 것 같아 여러군데 다니고 있다고 한다. 언니와 3시간 넘게 대화를 하면서 반 이상은 아이들 교육이야기다. 한국의 엄마는 오로지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집에 도착하자 언니는 나에게 종이 몇 장을 내밀며 아들이 학원에서 쓴 ‘영문 Essay’인데 잘 썼는 지 봐달라고 한다. 미국에서 살다 오면 다 영어를 잘하는 지 아나 보다. 나 영어 별로 못하는데…ㅠ.ㅠ 교사가 평가해놓은 “Excellent” 평점을 보며 4살 때 이미 한글은 물론 영어를 읽을만큼 똑똑했던 상민이가 떠오르며 미소를 지어본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이건 이제 중 2가 되는 학생의 글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단어도 몇 개 있고, 관계 대명사, 접속사 등이 적절하게 쓰여진 복문이 A4 용지 두 장에 빼곡히 쓰여있다. 더욱 놀란 것은 서론, 본론, 결론이 명확하게 구분된 형식과, 그 형식을 채운 솜씨가 수준급이라는 거다. 서론에서 문제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본론에선 자신의 경험, 책의 내용을 인용, 그리고 적절한 예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다각도로 입증했으며, 결론에서 총정리를 통해 깔끔하게 마무리하였다. 내가 중 2일 때, 아니 10년 전 가르치던 중 2아이들을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잘 쓴 글이다. 한글로 썼어도 잘 쓴 글이건만 영어로 그렇게 유창하게 글을 쓰다니…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감탄을 언니에게 고스란히 다 표현하고 언니는 학원 보낸 보람이 있다며 엄청 좋아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 본 고층 건물이 그 동안의 변화를 실감나게 한다. 서울은 이제 어디를 가도 우뚝우뚝 솟아있는 고층 건물에 눈이 휘둥그러질 정도다. 건물의 외관과 조형도 얼마나 멋있게 가꾸었는 지… 건물 앞을 장식한 화분의 꽃이 참 화려하다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 다가간다. 꽃의 향기를 맡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냄새가 없다. 조화였기 때문이다. 꽃은 꽃이되 꽃이 아닌… 순간적으로 상민이의 에세이가 생각났다. 상민이의 글에서도 화려한 외관은 있었으나 독특한 향기가 없었다는 생각! 그제서야 느꼈다. 너무나도 매끄럽게 잘 쓴 글에서 받은 감탄 뒤에 매달려있던 왠지 모를 씁쓸한 감정의 정체를… 상민이의 글은 순수하고 창의적이었다기 보다는 리본까지 예쁘게 묶여진 선물포장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쓰기보다 밖(교사)에서 규정 지워준 울타리에 자신의 사고를 짜맞추느라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없어진 느낌, 생각은 생각인데 생명력이 떨어진 느낌,수제품에서 느끼는 특유의 고유함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공산품의 느낌이랄까? 대학 입시에 논술이 들어가고,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논술학원을 다닌다. 아니 유치원 아이도 논술을 배운다고 들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논술이 학원을 다녀가며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지난 번 언급했던 미국 교과서를 연구하며 우리의 교육과 가장 다른 점을 들라면 “영어”, 즉 국어 교육이다. 그들의 국어는 문법을 가르치고, 긴 지문을 읽고 주제와 소재를 찾고, 문장 순서를 올바로 하고, 예문을 잘 이해했는 지, 적합한 단어를 넣는 다든 지 하는 선다형의 ‘시험으로 평가되는 국어’가 아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는 국어 교과서라는 것이 따로 없고, 주로 문학작품을 읽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분석하거나,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내가 작가라면 결론을 어떻게 내렸을까? 하는 상상력과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숙제를 내거나 그와 관련된 에세이를 쓰고 발표하는 등 끊임없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쓰게 한다. 즉 국어 시간은 주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잘 쓰는 연습을 하는 시간인 것이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과목에선 유명정치인의 연설문이나 기업인 혹은 경제학자의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한 분석이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게 한다. 이 때 바로 국어(하긴 English 시간이 없다. 문학(Literature)시간이다)시간에 끊임없이 쓴 작문실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쓰고 또 쓰며, 처음엔 미숙하나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작문력이 길러지는 것 일진데 당장의 대학입학을 위해 논술학원을 다니며 잘 쓰는 방법을 배우는 점수따기식 위주의 공부로 진정 아이들의 논술 실력이 늘어날까? 형식의 노예가 되고, 요령은 늘어도 실력은 늘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그 예로 작년 서울대 논술 실력에서 고득점을 받은 학생은 논술학원을 주구장창 다닌 서울출신들이 아니라 지방출신들이 훨씬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이는 영어에 ‘미쳐있다’ 라고 까지 표현해도 무방한 한국의 영어광풍과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TOEIC, TOFEL 점수가 높은 학생이 실력이 우수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도구로서의 영어를 잘 하는 것일 뿐이다. 그 영어실력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자신의 가치관을 제대로 세우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교육이라는 생각이다. (가치교육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또 하기로 하자) 그 중 하나가 많은 책을 읽고(입시때문이 아닌), 많이 생각하고 분석하며 자기 의견을 논리있게 주장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점수보다 공부를 창의적이고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의 깊이와 다양성이 마련되는 쪽으로 아이들의 공부를 이끌고 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공부는 잘하는데 한 눈에 봐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가 하나 있다. 그 엄마는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성을 키워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사회성이 떨어지기에 더욱 최고의 일류대를 가야 한다며(한국의 최고 일류대는 사회성은 학생입학에 고려를 하지 않는 지...)아이 성적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성적 몇 점 떨어졌다고 한탄에 한탄, 눈물까지 흘린다. 공부는 잘하는데 몸이 너무나 약한 아이가 하나 있다. 내가 보기엔 체력을 먼저 길러 주는 게 필요할 것 같은데 태권도 학원 대신 논술학원을 보낸다. 모두 공부가 우선이다. 사회성이 떨어져도 공부만 잘하면 만사형통이고, 몸이 좀 약하면 보약 먹여가며 공부를 시키면 되지 운동까지 하며 허비할 시간이 없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지인(知人)과 그 자녀이야기다. 물론 모든 학부모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중산층의 평균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대안학교들이 새롭게 각광 받으며 늘어나고 있지만 그 특수성과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이나 존중은 아직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그보다 국제중의 설립에 많은 관심이 쏠리며 이는 사회가 더 수직적으로 구분되고 교육이 세습화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생각인데, 그 수직적 구분이 다양성과 자율을 중시하는 교육이라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의 교육이, '수직적 다양화'가 아니라 '수평적인 다양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그 수평적인 다양화 속에서 진정한 창의, 제대로 된 전문 인력이 배출되며, 그것이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첩경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수직적으로 구분된 교육의 상위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생각조차 자유롭게 할 틈도 주지 않고, 교사가 주는 틀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게 하는 극성 엄마, 한국교육의 현실이 못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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