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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방뇨하면 안돼요






난 당수초등학교 다녔다. 그때의 당수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반만 있는 시골학교였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다 전학 온 난 동네에서 일약 스타가 됐었다. 그야말로 황순원 소설의 '소나기' 소녀였다. 게다가 실은 심히 병약해서 3학년은 건너뛰고 곧장 4학년으로 들어갔던 얼굴 하얀 서울애였다.



그런 서울애가 시골애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동네애들과 패싸움도 했고, 칡뿌리도 캐러 다니고, 아카시아꽃, 진달래 먹기. 개구리와 메뚜기는 병약했던 내게 영양간식이 되었다. 파리했던 서울애는 금방 새카만 시골애가 되었고, 그야말로 개구장이라도 좋다 씩씩하게만 자라다오의 주인공이었다.



당수초등학교 앞엔 은행나무 밭이 있었는데 가을이면 은행잎이 침대 높이로 쌓여서 그 속에 들어가서 숨바꼭질 하다가 수업 빼먹기 일쑤이기도 했다. 한 번은 그 속에서 잠들어서 선생님과 애들이 찾으러 나오기도 했었다. 고향. 그래 그곳은 그렇게 내겐 따스한 고향이었다.



남미에서 20년 만에 돌아 온 고향은 발전도 없이 퇴색해져 있었지만 나름대로 고향 냄새를 묻히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퇴비 냄새도 가끔 났고 산은 그대로 있었고 동네 한가운 데 떡하니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긴 했지만 변두리는 그런대로 그때나 지금이나 같았다. 당수초등학교는 수인 산업도로때문에 동네 한가운데로 이사를 갔다. 예전 초등학교 자리엔 고등학교가 있다. 그래도 내겐 모교가 그 초등학교 있던 건물이고, 그 옆엔 우리 아부지 묘도 있어 늘상 애정어린 눈길을 줄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거의 30년만에 보는 초등학교 동창들은 그대로 개구장이들이었고, 그 때 그 모습 느낌대로 친하게 지냈다. 고구마 철이면 고구마 갖고 가라고 전화가 왔고, 모내기 철이면 모여서 같이 모판도 나르고 했다. 친구 중 식당을 개업하면 직원들 쉬는 날 설겆이 도우미 필요하다고 부르기도 했다. 에고고...이것들이 날 뭘로 보고. ㅎㅎ 그 날 디게 고생했다. 설겆이가 산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랬다. 난 겁장이이기 때문에 모든 장소에선 불이 조금이라도 으슥한 덴 갈 생각도 안했고, 다니지도 않았다. 오로지 당수동 내 고향 땅에선 천둥벌거숭이로 자랐던 곳이라 무서움 없이 산길도 논길도 혼자 다녔다. 어릴 적 늘상 다녔던 곳이니까.



작년 가을 친구 녀석이 내가 좋아하는 호박고구마 캤다고 가지고 가라고 전화가 왔었다. 서울에서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거기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집 앞에 가서 전화를 해도 안받고, 깜박깜박 라이트 갖고 장난을 쳐도 이 녀석이 나오지 않았다. 그 옆 친구가 하는 식당은 늦어 이미 문을 닫아놔서 가지도 못했다.

친구 녀석이 아무래도 전화를 놓고 마실을 간 모양이다 싶어서 친구 녀석 집 옆 축사에 차를 대놓고 잠깐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30여분 잤을까. 아...생리적 현상. 쉬를 해야하는데....이 놈 전화를 안받는다. 아.씨. 오줌마려. 일어나서 축사 옆을 봤다. 컴컴하니 노상방뇨하기 딱이다. 눌까말까. 한순간 고민했다. 그런데 축사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누다가 나오면 뭔 쪽팔림. 흐. 참자.

바로 출발해서 집으로 고고씽.



그게 바로 두 세달 전 이야기.



이론. 이번 군포 연쇄살인사건 주인공이 그 축사 쥔놈이랜다. 허걱.

뭐야 내 친구 옆집이고. 친구식당에서 불과 50미터. 내가 저 축사 옆에서 잠을 잤고, 축사 담벼락에 오줌누려고 폼 잡다가 온거 아냐.



한국 와서 차 사기 전. 친구 만나러 당수동 갔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아주 상냥하게 수원까지 태워다 준다던 무쏘차량이 있었는데..........내가 워낙 겁이 많아서 안탔더랬는데........바로 그 용의자와 같은인상착의.........


어느쪽으로 가세요?
수원인데요.
그럼 타세요. 제가 그쪽으로 가거든요.
아니에요.
부답갖지말고 타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타세요~
아니에요. 친구가 오기로 했어요.

무지 아쉬워했던.............그 사람.

그래서 아주 상냥한 이미지로 기억되는데........환항 낮 12시에 벌어진 일이라 더 그럴 거 같다.




아무거나 안타고 노상방뇨 안한 내가 엄청나게 대견스럽다.



화성연쇄살인 사건 때도 대학생으로 화성군에 살았더랬는데........20년만에 아줌마가 되어 돌아 오니 또 동네에서 아줌마들이 줄줄이 죽는 멸치 젖~같은 일이. 쩝.









고정미 (2009-02-15 20:12:18)
공주님, 이 글 읽고 웃어야 하나요 무서워해야 하나요. 조금 햇갈린다는. 크으...^^
그런데 정확한건 공주님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것에 기꺼이 저도 한 표를 던집니다.
정말 울메나 대견스러운지 모릅니다. 노상방뇨도 않고 무쏘도 안타고...^^
만약 무쏘를 탔더라면? 으으으 상상하기 싫어요.
공주님을 피해다니는 화성의 이야기. 정말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요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모두들 자주뵈요~~~







김태진 (2009-02-17 13:30:34)
한 편의 분홍빛 서사시를 읽듯,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공주님의 초등시절로 돌아가서 글을 잘 즐기고 있었는데.... 으악~ 뒤로 가니까 오싹한 두려움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 글의 반전이 아주 스릴있군요. 역시 공주님은 뛰어난 작가!^*^
조만간 봅시다~







천사 (2009-03-09 19:49:30)
그죠? 담에 한국가면 반드시 공주님의 싸인을 받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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