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삼일절 공휴일이자 일요일이다.
공교롭게 일요일과 공휴일이 겹쳐 직장인들은 쉬면서도 아쉬움이 많은 날일 것이다. 얼마 전, 올해는 ‘직장인들이 가장 울상인 해’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가 생각난다. 삼일절 외에도, 석가탄신일,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까지…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공휴일이 주말과 겹쳐버렸다. 직장인에겐 꿀맛 같은 공휴일이 다 없어져 버렸으니 선물 한 보따리가 순식간에 달아난 기분 일거다. 이렇듯 새해가 다가오면 다들 달력을 들쳐보며 휴일의 ‘요일’에 따라 사람들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웃상(?)이 되었다 하는 것도 연말연시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문화인 것 같다. 그러나 미국엔 이런 휴일에 따른 울상, 웃상 문화가 없다. (아마 다른 나라도 미국과 비슷한 나라가 많을 것이다)
한국은 기념일을 몇 월 며칠, 이렇게 ‘날짜’로 정하지만 미국은 대부분 몇 월 몇째 주 무슨 요일, 즉 날짜보다는 ‘요일’에 초점을 두고 기념일을 정한다. 그 이유는 징검다리 식 휴일을 만들지 않음으로 인해 놀 때는 확실하게 놀자! 라는 실용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 같다. 그래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날은 ‘10월 12일’이건만 그 ‘날짜’를 지키지 않고, 12일을 기준으로 가까운 ‘월요일’이 ‘Columbus Day’ 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콜럼버스데이엔 항상 토일월로 이어지는 연휴를 즐기게 된다. 그 외 많은 날들이 이런 식이다.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Memorial Day’는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근로자의 날(Labor Day)’은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그리고 ‘어머니 날’은 5월 둘째 주 ‘일요일’, ‘아버지 날’은 6월 둘째 주 ‘일요일’로, ‘날짜’로 정하기보다는 가족 모두가 시간을 내기 편한 ‘요일 중심’으로 만들었다. 작년에도 5월 8일이 목요일이어서 날짜를 바꾸어 가족이 주말에 다같이 모였던 생각을 하면 이렇게 날짜보다 요일로 정해놓은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은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하였다. 월요일이나 금요일이 아니고 목요일? 최대 명절이긴 하지만 회사나 개인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영하라고 ‘자유’를 준 것 같다. 목요일부터 주욱~ 쉴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사람은 쉬고,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은 목요일 하루만 쉬고… 그래서 최대 명절답게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기인 연휴를 즐기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융통성을 발휘하는 가운데도 ‘날짜’로 지켜지는 기념일이 하나 있다. 바로 7월 14일인 ‘Independent Day!”, 미국 독립기념일이다. 아무리 실용도 중요하지만 건국기념일까지 7월 둘째 주 월요일, 이렇게 하기에는 그 날의 상징성과 중요성이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이 날 만큼은 요일이 아니라 ‘날짜’를 지킨다. 내용만 중시하는 줄 알았던 미국이 ‘형식’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날이다. 다만 그것이 정말 지켜져야 할 형식인 지 아니면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를 나름의 기준대로 잘 판단해서 말이다. 나는 그것이 실용이자 합리라고 생각한다.
‘형식’과 ‘내용’…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실용적인 입장에선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생수를 ‘요강’에다 담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형식도 참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형식이라는 틀에 갇혀 내용이 손상되지 않는 합리적인 생각을 했으면 바람이다.
잘 생각해보면 위의 날짜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 형식을 중요시 하는 문화를 금방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학벌, 외모를 중시하는 풍토 등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유교주의적인 전통이 강한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와 그에 따른 역할’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한 가정의 자녀, 학교에선 선배 혹은 후배, 사회에선 윗사람과 아랫사람… 등 자신의 ‘위치’라는 ‘형식’에 맞게 행동하고 말하고 처신해야 하는 것 말이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선생님 말씀에 복종해야 하며, 선배에게 깍듯해야 하고, 윗 분의 말씀에 잘 따라야 한다. 그 ‘법’에 가까운 관습적 제약에 갇혀 때로는 진정한 자신의 생각이나 모습조차 잃어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춰지지는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신의 주장이 있어도 어른 앞에서 곧이 곧대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가는 주관이 뚜렷한 소신있는 젊은이라기보다는 어른 말씀을 무시하는 건방지고 예의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한국에 돌아와 신고식 겸 친척분들을 모시고 집들이를 했다. 저녁을 마치고 담소를 나누다 보니 논쟁이 될만한 주제도 등장한다. 남편과 나 외엔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아버님이 막내인데다가 남편까지 막내라 집안에서 나의 위치는 그야말로 ‘막내’이다. 그런데 나의 주제(?)도 모르고 어른의 말씀에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반대의 입장을 말했다. 그러자 한 어른이 기분 나쁜 듯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어린 것이 어른의 말에 대든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러나 이미 엎지러진 물. 거듭 사과를 했지만 그 분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 까지도 이 집 막내며느리는 아래위를 모른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 후부터 나는 어른들 계신 곳에 가면 벙어리가 된다. 내 성격상 나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으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데다가, 미국에서 남편과 자유롭게 토론하던 것이 몸에 밴 나로선 괜히 나의 생각을 말하다 또 건방진 실수(?)를 하느니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지난 대선 즈음 집안 어른들을 만날 일이 있었다. 식사 중에 한 분이 'A' 후보를 찍으라고 하며 그 이유를 장황하게 말씀하셨다. 모두들 끄덕이고 있는데 난 또 반기를 들었다. “제 생각은 다른데요… 전 “A” 후보가 한국사회를 후퇴시킬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후보를 찍겠습니다.” 했다. 그랬더니 그 분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시면서(나의 반대 의견에 상당히 기분이 상하신 눈치다) “어른이 그렇게 하라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혹 뒤에 가서 다른 후보를 찍더라도 일단 ‘네’ 하는 거야…” 하신다. 또 아차! 싶으며 난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려야 했다. 그게 진짜 사과를 드려야 하는 지 솔직히 100% 납득되진 않지만 한국문화, 그리고 더욱 예의를 지켜야 할 어른 말씀에 반기를 들었으니 난 또 버릇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후 다시 한 번 결심하며 무조건 순종, ‘내 생각을 말하지 말자…’ 로 나를 다듬지만 나는 언제 또 버릇없는 이씨 집안 막내 며느리가 될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아무리 위아래가 엄하다해도 내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아닌가???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나가며 적응이 많이 되었다. 처음의 천방지축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리구분도 못하고 막(?)하는 내가 아니다. 그러나 그 때의 내가 잘했다, 잘못했다는 등의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 문화엔 옳고 그름이 없고 다만 다름이 있을 뿐이니까. 그러면서도 우리의 문화는 나보다 높은 윗사람의 권위가 너무나도 강한 문화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유교적인 형식과 예의에 갇혀 내 안의 생각과 진정성이 묻혀버린다면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뜻을 가지고 창의적이고 주관적인 삶을 꾸려가기를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김태진 (2009-03-01 21:35:31)
한마당 식구들 오랜 만이지요? 드디어... 저도 글을 올려봅니다.
새롭고 예쁘게 단장된 새 집에서 우리가 처음 연수를 받던 그 때의 마음, 그 때 나누었던 우정을 생각하며 많이많이 만났으면 합니다. 제가 앞으로 좀 바빠서 글은 많이 못 올리겠지만 댓글은 열심히 달겠습니다.^*^ 모두모두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아~
이은희 (2009-03-02 09:33:43)
쌤, 반가워요. 불혹인 사십이 넘으니까 저도 제 생각을 말할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말하고 나서는 좀 후회를 하는 편이에요.
젊은오빠 (2009-03-02 14:54:26)
아! 나의 공휴일! 다 돌리 도~~~~
별찬 선생님, 꼼꼼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우리도 미국처럼 그렇게 했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국회에서 공휴일이 휴일이면 그 앞뒤로 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공휴일에 관한 법률을 고친다고 해서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었는데 그 결과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 참에 '한글날'을 쉬는 국경일로 해 달라고 청원할까 했더니 한글 관련 단체 어르신들이 국경일로 만들어 달라고 운동할 때는 쉬지 않아도 좋으니 국경일로만 해 달라고 했던 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공휴 국경일로 해 달라고 하면 한글 단체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있으니 신중히 해야 한다는 말씀에 숨 죽이고 있을 따름입니다.
국경일인 한글날을 꼭 쉬는 날로 만드는 데 방법이 없지 않습니다.
이 일을 추진하는 중심에 한글 단체나 그 소속이 아닌, 일반 사회 단체나 국민들이 힘을 모아 여론을 이끌어가고 국회나 관련 기관에 지속적으로 청원하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태진 (2009-03-02 20:52:36)
이은희 샘... 저도 반가워요.^*^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다 말하면 손해인게 아직은 한국사회의 현실인 것 같아요. 뒤에선 불만과 개선점을 성토해도 앞에선 그냥 넘어가게 되는 현실 같은 것 말이에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는데 한 마디했다가는...ㅠ.ㅠ 그 분위기가 조금씩 개선되는 곳도 있으니같으니 앞으로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김태진 (2009-03-02 21:02:01)
젊은 오빠님... 안그래도 공휴일 기사를 접하고 그 법률을 제안한 사람은 외국생활을 한 사람이 아닐까... 추측하면서 자세히 찾아보았었지요. 미국생활을 경험한 한나라당 대변인인 윤상현의원이 제안했고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그래도 우리나라 공휴일 많은데 그렇게까지 챙겨서 놀 필요없다는 다른 의원들의 면박(?)을 받고 곧 그 법률안은 사장되었다고 합니다. 대신 한글날은 정말 공휴일이 되어야 할텐데... 일반사회단체나 국민들의 의식과 힘이 모아지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천사 (2009-03-03 03:00:16)
아고...드디어 나타나셔서 속시원한 말씀으로 한마디 해주셨는네요. 감사감사^^
공휴일 이야기, 여기도 할 이야기가 많죠?ㅎㅎ주로 이곳은 '웃고'에 해당됩니다.
크리스마스와 박싱데이, 뉴이어데이가 연이어 있는데, 만약 이 날이 토일에 해당되면 월화로 연기해서 쉬니 연휴만 되면 저같은 근로자는 대박이죠? 4일 꼬박 쉬니까요.ㅎㅎ그래서 오히려 주말에 안끼나 은근슬쩍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공휴일로 정해졌으면 그것은 나의 권리랍니다. 쉬어야 할 권리요. 그래서 다음날에 꼭 쉰다는 이들의 주장...별찬샘의 이론에 맞추어 어떤게 좋고 나쁜지는 각자의 삶에 맞추어야 할 듯..^*^이 외에 다른 것은 여기도 요일로 쉬고 현충일과비슷한 안작데이와 독립기념일(?)에 해당하는 와이탕이데이는 날짜로 공휴일을 지킵니다.
별찬샘, 못 말하며 살아 화병드는것 보단 지혜롭게 말하고 살아야 한다에 한표입니다.
샘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살려서 어른들께도, 이 사회에서도 사랑받는 대한의 딸과 며느리 되시기 바랍니다.^^
저 이제 나가봐야해요. 오늘 뉴질랜드에 어쩌니저쩌니해도 나랏님이 오신다는데...반갑게 맞이해야겠죠. 출근했다 2시에 퇴근해 오클랜드 올라가 임원 교장샘들과 말하기 대회 먼저 회의하고, 동포간담회에 참석한답니다. 뉴욕에서 해보셨죠?^^ 다녀와 다시 뵐게요. 모두 평안한 하루되십시오^*^
착한아이 (2009-03-07 04:09:24)
나랏님 가시는 바람에 고생 많이 하셨겟어요.
별찬 (2009-03-07 13:21:47)
천사언니... 바쁜 중에 나랏님까지 오셔서 더 바쁘시군요... 행사는 잘 치러졌겠지요? 호주는 호텔 앞에서 MB OUT 이라는 시위를 한 분들이 있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제가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정리되는데로 메일 한 번 할게요.
착한 아이님 반갑습니다. 짧은 댓글이지만 유머와 재치가 번뜩임을 봅니다. 그 솜씨로 글도 자주 올려주시고요... 한국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술을 좋아하시면 저는 잘 못해도 울 남편이 좋아하니까 술상무(?) 대동하고 나가겠습니다. ^*^
천사 (2009-03-09 20:40:28)
착한아이샘 그리고 별찬샘. 나랏님이 해주신 말씀 중에 한국학교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해 주셔서 그 부분은 좋았네요.교민회관 운운하니 그건 교민들이 알아서 지으라고, 또 이민정책을 위해 영어점수 완화에 대해 건의좀 해달라고 이야기 하니 우리나라도 영주권 얻으려면 한국어 잘해야 한다며 그 나라 살려면 그 나라 언어는 잘 해야되니 이 또한 기각 당하고, 암튼 한국학교의 2세 교육은 중요하니 이 부분은 계속 지원하겠다는 말씀이 있어서 모인 교장샘들은 나름 이 부분은 감사했네요.
그 외는 그럭저럭..여긴 시위까지는 안했지만 마음들이 궁시렁 궁시렁...(이날 NZ수상과 정상회담 하는 시간에 오클랜드에서 우리나라 고등학교 유학생이 일본어 샘을 등 뒤에서 칼로 찔러 입원시킨 일이 벌어졌네요ㅜㅜ)
어서 우리 나라 사정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착한아이 (2009-03-17 02:18:08)
별찬 선생님... 저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합니다. 아니 좋아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무슬림 국가에서 무슬림들과 너무 오래 살았나 봅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거시기 한다더니 이슬람도 아니면서 3년을 넘겼더니 거시기 하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인사드리면 술보다는 바지락 칼국수 만남 어떠실런지요. 짭짭.. 입 맛이 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