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해 처음으로 14기 후배님들에게 환영 인사글을 못 올린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시고요, 직접 만난 걸로 대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래에 어제 있었던 공개수업 이야기를 올립니다. 저는 저희 학교 이야기라 감동인데...울 샘들은 어떨른지요.
이제 제 자리로 돌아간 선후배 선생님들, 언제 또 뵐 날이 있겠죠?
꿈이 있으면 만나진다고 젊은 오빠가 늘 말하니까요.^^
그럼 한주간도 평안하시고요 학교마다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듣기를 소망하며 겨울1004가 인사 드립니다(꾸벅).
--------------------------------------------------------------------------------------------------
연수를 마치고 토요일(22일)에 한국어문화학과 사이버대학 졸업식이 있어서 일요일에 출발해 월요일에 NZ에도착했다. 그리고 어제 처음 맞이한 교사 회의시간. 교장 없는 동안 고생했다는 안부 인사를 드리기 무섭게, 교장 출타로 미뤘던 당일 학부모 공개수업 회의를 하는데…
간식시간에 학부모회에서 간식 판매한다는 소리를 한다.
아뿔사… “저에게 보고하는 내용 중에 간식 판매 얘기는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죠? 누가 허락을 했죠?” 모두 교장 눈만 쳐다보고 암말이 없다.
우리학교는 매주 간식 판매를 않고, 특별한 날만 학부모회에서 간식을 팔아 학교 건축기금 마련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학부모 공개수업이라고 하니 학부모들이 오시니까 호떡과 오뎅을 팔면 대박날 (?)거라는 학부모회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교사들이 허락을 한 모양이다.
다른 날도 아닌 학부모 공개수업 날인데……그럼 호떡 굽고 오뎅 끓이는 부모님은 당근 본인 아이들 수업을 못 보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허락한 교사들이 못내 속상해 한 마디 하고 싶지만, 이내 엎어진 물……
담에는 학교 기금도 중요하지만 학부모에게 일 년에 한 번 공개수업을 함으로써, 한국학교에서 행해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어떻게 한국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고 또 가정과는 어떤 연계를 가져야 하는지 실제 보고 느끼는 시간을 뺏지 말라고 당부하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한쪽에선 ‘그러니까 교장선생님이 꼭 계셔야 한다니까요……’ 하고 볼멘 소리도 하지만, 원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얼른 다음상황으로 잘 이어가는 성격상 빨리 마무리하고 다음 수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시작된 공개수업, 반마다 철저하게 준비된 시청각 재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솔직히 운영자 입장에선 매주 공개수업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역시 올해도 제일 막내 반인 선녀와 나무꾼 반이 인기가 짱! 이다. 18명의 아이들 부모님께서 모두 오셨다. 할머니도 오시고 아빠도 오시고 보기에 좋았다. 사진도 부족해 이젠 개개인 동영상을 찍는걸 보며 발전한 주말 한글학교를 바라본다.
이렇게 평상시 시간표대로 보여주는 사이 한 쪽에서 희생당한(?) 몇 분의 학부모들이 호떡을 굽고 오뎅을 끓이느라 정신이 없다. 미안했다… 아주 많이 미안했다. ‘제가 구울게요. 들어가 아이들 보세요.’ 라고 말했지만 본인들 일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난 나대로 처음 온 학부모와 외국인 반에 오신 손님 접대하느라 경황이 없다.
드디어 간식시간, 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하나 둘씩 장터로(?) 모여든다. 미리 만든다고 하였지만 순식간에 100여명이 덤비니 완전 호떡집에 불 났다. 정말 불자동차가 와야 할 정도로 우르르 몰려 있는데……결국 서있던 나도 포기를 했다. 오뎅 줄에 가서 서기도 했지만 역시 거기도 줄서기는 마찬가지…… 호떡과 오뎅은 포기하고 애꿎은 커피만 두 잔 축냈다.ㅎㅎㅎ
‘호떡 집에 불 났으나 이젠 모두 교실로 돌아가세요’ 란 소리와 함께 재료가 모자라 더 못 팔고 설거지만 수복 남겨졌다. ‘어머님들 수고하셨고요, 설거지는 제가 할 테니 이젠 들어가세요’ 란 말이 떨어지자, ‘교장선생님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하면서도 모두 쏜살같이 내 아이가 있는 교실로 달려간다. 그 뒷모습이 예뻤다. 준비하느라 수고한 학부모님에게 감사하고 혼자 미소 지으며 덩치 큰 설거지를 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하며 묻는데....... 걱정 말라며 이 또한 나의 기쁨이라고 전문가답게(?) 후다닥 해치웠다. ^^
그리고 다시 교장과 학부모와의 간담회 시간.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다 ‘지금 학교는 임시학교고 이제 또 옮겨야 합니다.’ 라는 말을 하는데 그만 눈가가 핑 돌더니 순간 와르르 눈물이 쏟아졌다. 왜 난 이렇게 학교 보따리 싸는 이야기만 나오면 한이 맺히는지 모르겠다. 내 집도 있고 내 나라도 있는데…왜 내 학교는 없단 말인가… 언제까지 개학 첫 날, 절대로 그 어느 물건에도 손을 대지 말 것이며, 왔다 간 흔적 없도록 있는 그대로 해놓고 나오도록 당부해야 하는가. 15년 역사에 6번 옮겼으니 적지는 않았으리라… 보따리를 싸기만 하나 다시 찾는 건 또 어떻고… 이러니 영부인 앞에서도 눈시울을 붉히지......
이렇게 안타까운 셋방살이 교장의 마음을 아는지……
대접받는 학부모 공개수업 날에도 호떡과 오뎅을 팔아 학교를 짓는데 작은 벽돌 하나를 쌓는 울 학부모들의 마음이 많이 많이 안쓰럽고 고마웠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애국임을!
감사의 눈물을 한 움큼 내려 놓으며…8월의 겨울 밤에 뉴질랜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