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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이야기(1)

컨테이너

“화물 운송에 쓰는 상자. 두랄루민 또는 목재의 조립식으로, 짐을 꾸리지 않고 넣어 그대로 화차 선박에 실음. 기계, 기구 등의 용기.”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국어사전에서 찾아낸 컨테이너의 설명이다. 이 컨테이너가 지금 나를 아주 마음 아프게 하고 있다. 바로 이 컨테이너가.......

이민을 오기 전 나에게 컨테이너란 단어는 위 설명과 같이 큰 상자를 뜻하는 기준이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와보니 그 짧은 영어에도 불구하고 컨테이너 소리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렸다. 심지어 아들들이 사용하는 도시락 통 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 있는 크고 작은 플라스틱 용기들은 모두 컨테이너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 작은 네 글자 단어를 이전에 알고 있던 커다란 부피의 이미지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모습의 뉴질랜드 컨테이너 용기로 바꾸는데 소요된 시간을 뒤돌아보니 14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민 와서 평일은 한국에서 하던 유치원 풀타임 교사와 토요일은 주말 한국학교에 나가 12년째 봉사를 하고 있다. 뉴질랜드란 나라는 복지도 잘 되어있고 유럽 권에 속하는 잘사는 나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나라 곳곳에 있는 우리의 주말 한글학교들은 나라 이름에 걸맞은 그런 환경이 아니라 열악하다 못해 교사들이 모두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형편에까지 이르는 입장이다. 반면에 어렵다고 보는 동남아시아 인근 나라의 한글학교들은 아주 넉넉한 곳이 많다.

우리 와이카토 한국학교(주말 한글학교지만 한국어 외에 역사와 문화, 전통, 그리고 정체성을 가르치기에 한국학교라고 이름 지었다.)는 1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뉴질랜드 해밀턴 한인회 이민사와 함께 가장 오래된 모임을 매주 토요일 가지고 있다. 주로 현지 학교를 빌려 사용하는데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7번째 학교 건물을 옮겨가며 공부하고 있다. 어쩌면 옮겨 다녔다는 말은 듣기 좋은 상쾌한 말이고, 쫓겨 다녔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올해 옮겨간 학교에서는 학교 비품을 둘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지 않아 뉴질랜드 사립 창고를 빌려 한 달에 한화로 약 15만원을 주고 물건을 넣어두고 있다. 학교 물건은 주로 책과 문화용품 교재들이 많은데 문제는 이 창고가 우리 학교와 정 반대인 곳에 있어서 창고를 자주 사용하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주 쓰는 교재들은 우리 집 게라지(차고)의 일부를 도배하며 사용하고 있지만 이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일 학기 내내 고민하다 얼마 전에 컨테이너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고 알아봤다.

1학기 마지막 수업을 민속 전통놀이로 마감하는데 그 시간 전에 컨테이너를 구입하고 창고에 있던 물건을 옮겨야 하기에 마음이 급해져 이주일 전에 퇴근하자마자 예약을 하고 교감 선생님과 함께 갔다. 1차 알아본 그 곳에선 2800 달러에 세금 15% 그리고 운반비가 별도로 나왔다. 우리가 필요한건 6M(20피트) 정도면 되고 가격이 저리 나왔으니 운반비 포함 합계 약 3500 달러 정도 되었다.

2000달러를 예상했던 우리 형편과 달라 이번엔 해밀턴 크리스찬 학교가 소개한 곳으로 빗속을 뚫고 다시 달려갔다. 그 곳은 내가 해밀턴에 도착한 14년 전 이후로 처음 가본 곳이었다. 해밀턴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며 물어물어 찾아가니 엄청 많은 컨테이너들이 정말 산더미처럼 보였다. 꼼짝도 않는 기차들 옆에서 위용을 자랑하며.......

예약하고 갔으니 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도 안 들고 비를 맞으며 그 기사가 소개하여 본 컨테이너. 사방이 꽉 막힌 두툼한 컨테이너 문을 열고 창문도 없는 깜깜한 그 안을 들여다보니 이내 흐르는 내 눈물은 빗물 속에 가려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세계 속의 한국인을 가르치는 아이들 교재를 꺼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단 말인가........그 순간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었다. ‘이건 아니다.’ 라고.......

그리고 사무실에 와서 본 팸플릿, 거기에 일반 문을 따로 만든 컨테이너가 보였다.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었기에 그것으로 하자고 교감 선생님과 상의를 한 후 흥정에 들어갔다. 일반 컨테이너는 이곳은 2100 달러에 시작을 하였으니 먼저 집보다는 많이 싸게 먹혔다. 뉴질랜드도 내가 모르는 바가지가 있나???

이렇게 일반 문을 달면 1000 달러를 더 달라고 하는 걸 어려운 학교 사정 이야길 하며 800 달러를 추가로 주기로 하였다. 거기에 한 줄기 빛이라도 더 들어오게 유리창만 있는 창문도 달아달라고 사정을 하니 기사의 눈이 가재 눈이 되었다. 결국 2900 달러에 운반비 120 달러 여기에 세금을 포함하여 3500 달러 가격으로 창문도 있고 문도 달린 컨테이너로 흥정을 마쳤다. 결국 1차로 갔던 집과 동일한 가격에 일반 문과 창문이 추가로 달린 것을 예약하고 돌아오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 상황은 영락없이 한국학교 교장의 입장보단 한국의 또순이 아줌마 같은 느낌이 들어 혼자 나오며 멋쩍게 웃었다.^^

4시 퇴근하자마자 유니폼을 입은 채로 바로 갔기에 두 군데 컨테이너 가게에서 나온 저녁 시간은 6시 가량 되었다. 운전을 좋아하진 않지만 20년 넘은 무사고라 나름 내가 사는 동네는 자신 있게 운전하는데 이 날은 ‘이러다 사고가 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암흑 같을 수가 없었다. 비는 억수로 오고, 퇴근 시간이니 차는 많고, 앞뒤는 보이진 않고.......해밀턴에 와서 안개 등을 켜도 잘 보이지 않는 처음 가본 그 길을 비와 함께 헤매다 돌아오니, 사고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그런 캐빈형(?) 건물을 생각했다가 정말 기차가 싣고 가는 그런 무식한 이사용 컨테이너를 돈이 부족해 계약하니 마음이 참 아렸다. 뉴질랜드의 어느 한글학교에선 사무실형 건물을 구입해 사용하는 학교도 있기에 비교해보니 우리 학교 형편이 매우 씁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반 문 달린 컨테이너라도 계약했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도 이곳의 국제적인 필드데이(Field day)를 맞아 조금 싸게 구입했기에 상대적으로 더 감사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사고위험을 안고 목숨을(?) 담보로 계약한 컨테이너, 하루 종일 전화와 씨름하며 무식해(?) 보이는 공장 안으로 빗속을 달려가 계약한 그 컨테이너가, 이주일이 지났는데도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학교에 배달이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난 이 글을 쓰는 한국학교 가는 토요일 아침까지도 간을 졸이고 있다. 어쩌란 말인가....... 교구들을 꺼내어 학교에 보관해 놓고 전통놀이 수업을 해야 하는데....... 난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볼품없는 중고 컨테이너지만 그것이 훗날 학교 건물이 되는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아니 꼭 되어야한다. 그리고 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학교 교훈처럼 ‘한국인으로 뉴질랜더로 세계인으로’ 자라날 비전의 우리 와이카토 한국학교 꿈나무들을 지금과 같이 키워나갈 것이다. 컨테이너와는 비교도 안 되는 우리만의 학교 건물이 생기는 그 날까지 매주 토요일 아침을 힘차고 당당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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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2편이 이어집니다.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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