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민주당이 제주도를 국제 자유 도시라는 미명 아래 영어 공용어권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 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는 정책을 세울 때마다 '국제'나 '세계'란 말만 나오면 외국 의 시녀가 되어 버리는 꼴들을 자주 본다. 국제화와 세계화 시대를 표방하던 정권들은 경제를 파 탄의 지경으로 몰아넣었고, 어설픈 의약 분업 등의 실패한 정책의 여진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 마당에 국제 도시를 만든다는 구실로 영어를 부추기는 이 현실은 참으로 한심할 뿐이다. 영어 공용화는 도로 표지와 간판은 물론이고 행정 기관의 모든 문서도 한국어와 함께 영어로도 적는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학교에서는 물론, 일상 생활에서도 영어를 규범어(표준말)로 자유 롭게 쓴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며 바람직한 일인가? 한 마디로, 영어 공용화는 치졸하고 허황되며 반민족적인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당의 이른바 '국제 자유 도시 정책기획단'에 행여라도 영미 문화 사대주의자가 끼여 있다면, 그 동안 영어 공용화를 위한 갖가지 책동이 어떻 게 국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왔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정부가 끝끝내 제주도를 영어 공용어권으로 밀어붙일 경우,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러가면 제주 도 지역의 사람들과 이른바 육지 사람들 간에 더욱 이질감이 생길 것이다. 영어 공용어 지역에서 는 언어 패권주의의 속성에 따라 차츰 순응주의에 빠지고, 드디어 사대적 종속 사상에 젖어들 가 능성이 아주 많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육지로 올라가 확대될 위험성이 있다. 제주도의 영 어 공용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 전체의 말글살이에서는, 외국어와 외래어 남용의 문이 열림으 로써 말의 중병 현상이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날 민족의 비운으로 남 북한 언어 이질화 의 골이 깊어 가고 있다. 이제 이를 크게 걱정하고 그 이질화 극복에 노력해야 하거늘, 오히려 국토의 일부를 다시 영어에 내주어 겨레의 참 모습을 영구히 파괴하려 하니, 역사 앞에 그 큰 죄 를 어찌 다 갚으려 하는가? 정부와 민주당은 최근 잇따른 졸속 정책으로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 국민 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내팽개치는 정책 추진은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게 하며, 나아가 고통을 이겨 낼 의지마저 빼앗아 버린다. 교육부가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올해부터 강행한, 영어만을 사 용하는 초등 학교의 영어 수업도 결국 파행을 낳고 말았다. 제주도 관광 특구 사업에 눈이 멀어 엉뚱하게도 영어 공용화를 밀어붙인다면, 이는 우리 민족을 국제 떠돌이로 전락시켜 제2의 만주 족을 만드는 역사상 가장 중대한 죄악이 될 것이다. '국제 자유 도시 정책 기획단'은 우리 고유 문화와 언어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이런 식 의 사대주의적인 개발의 위험성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그렇잖아도 영어 침투 때문에 쇠퇴하고 있는 한국어를 주저앉히면서까지 영어 공용어를 시행한다고 외국 자본이나 관광 수익이 크게 증 대된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생기는 비효율과 혼란은 커다란 사회적 부담이 될 것 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외국 관광객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정교한 안내서와 표지 판, 내실 있는 구경거리, 간편한 제도, 친절한 서비스 등이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슈퍼마 켓 점원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영어 공용어 발상을 즉각 거두고 당당하고 효율적인 관광 정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2001년 5월 29일/ 한글 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