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
새해를 맞이하여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해를 돌이켜보고 새해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해 초에는 ????우리말 사전????(15만 어휘)을 펴내어 실용적이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또, 지난해 중간부터 ‘한말글 문화지도’ 제작 사업이 시작됐고, 그밖에 언제나 해 오던 여러 가지 일들도 빠짐없이 해 내었습니다. 모두 잘 치렀고 보람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일은 기록에 남겨야 할 것이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학회의 직원 관리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학회의 재정 사정으로 마음 아팠던 구조 조정이 있었고, 시대 흐름에 따른 연봉제를 실시하는 등 운영 체계를 바꿨습니다. 그럼에도 학회 직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맡은 일을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회관 보수에 나서서 쓸모없던 지하 2층을 ‘얼말글 교육관’(강당)으로 만들었고, 허물어진 천장을 수리하는 등, 힘겨운 일들을 불평 없이 해냈습니다.
한글날 국경일 지정에 따른 갖가지 행사도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노력으로 잘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행사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종로구청장과 서울시의회 의장과 함께한 자리에서, 광화문은 한글의 본적지라고 말했습니다.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한 경복궁이 있고, 우리 말글 가꾸기에 우뚝 솟은 봉우리 주 시경 선생의 집터가 있고, 그리고 일제의 억압에서 생명을 걸고 우리 말글과 겨레 얼을 지켜 온 한글회관이 있는 곳이라고 했더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우리 학회에서 펼치고 있는 ‘세계 한국말 인증시험 위원회’(집행위원장: 이 진호) 활동도 변함이 없이 잘 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 시험을 치르고자 하는 외국인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말글의 앞날이 무척 밝게 느껴집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내가 재미 한국인학교협의회 총회와 학술대회에 기조강연의 요청을 받고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미국 25개 주에서 온 교사 600여 명과, 이웃하고 있는 캐나다 등지에서 온 100여 명을 합해 모두 700여 명이 모인 큰 행사였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 사는 한인 기업가가 총회를 그 곳으로 유치했다고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우리 학회에서 1997년부터 해마다 치러 오고 있는 ‘국외 한국어교사 연수회’에 다녀간 이들이 무리를 지어 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국에 며칠 더 계시면서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지를 다녀가시라는, 그분들의 따뜻한 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국외 한국어교사 연수회에 참여했던 2주 동안 환경도 좋고 숙식도 편리한 데서 지내면서, 분야별로 한국 최고 권위의 강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회고했습니다.
12월 1일부터 4일 동안 홍콩 중문대학에서 열린 ‘한국말 연설 대회’에도 다녀왔습니다. 이 대회는 우리 학회와 함께 열었으므로, 내가 그 대학 관계자의 요청으로 기조강연을 했습니다. 또 한 사람 더 기조강연에 초청된 분은 세계의 현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주 강현 한국민속연구소 이사장이었습니다. 홍콩에 사는 한국인 대표와 홍콩 총영사관 홍보관 들을 두루 만났습니다. 어디를 가나 가장 과학적인 한글과 거기에 깊은 관련을 가진 한글 학회에 대해 두터운 정의를 표했습니다. 일본, 중국, 몽골은 물론이요 동남아 등지에 한류 바람이 대단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그믐께 일본에 사는 동포 김 리박 님을 우리말 지킴이로 선정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김 님은 일본에서 자랐고, 어렸을 적엔 우리말도 몰랐는데 성장한 뒤 우리 말글에 심취하여 많은 책을 읽고 짓고 지금 재일한국문인협회 회장과 그밖의 여러 일들을 맡아 우리 말글 홍보와 교육에 여념이 없다고 합니다. 또, 외솔이 일본 교토대학 출신이므로 그 대학에 동상 세울 뜻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나라 밖에서 그런 열정적인 일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나라 안에 있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에 돌아가신 눈뫼 허 웅 스승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묘소에 비석을 세우고 추모 문집도 펴냈습니다. 남은 일은 생가가 있는 김해에 스승을 기리는 기념관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20년 전에 돌아가신 건재 정 인승 선생의 묘지를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했습니다. 선생의 생가가 있는 전북 장수군에 건재 기념관을 세웠는데, 그 일을 이룩한 이가 전남 장수군 군수였습니다. 지금도 학회는 석인 정 태진 선생과 애산 이 인 선생의 유족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남긴 뜻을 한결같이 살피고 있습니다.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한글 학회에 힘을 실어 주는 이들이 많습니다. 외국에서 우리 나라엔 한글 학회밖에 더 있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심정을 헤아릴 때 더욱 무거운 짐을 지게 됩니다.
다가오는 2008년은 학회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주년 기념 사업은 학술 행사와 100돌 기념 회관 건립의 두 갈래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로이신 오리 전 택부 선생님을 중심으로 사업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모든 일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념 회관 건립의 일은 재단 이사 홍 일중(사업가) 님이 정성을 많이 쏟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차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어 말만 앞세우고 실행이 없는 것은 피해 가기로 했습니다.
끝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연구에 있어서 요즈음 너무 자기 지식을 앞세우며 선행 연구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는데, 겸허한 마음으로 알차고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잘되는 일은 자기 공으로 돌리고 잘못된 일은 모두 남의 탓으로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애써 주는 학회 이사님들과, 한글 학회와 깊은 관련을 가진 문화관광부 김 명곤 장관, 이 상규 국어원장, 그밖 기관들의 아낌없는 협조를 바라면서 새해 인사로 갈음합니다.
2007년 새해
한글 학회 회장 김 계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