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언어 정책, 이대로 좋은가?
정권 인수위원회의 발표를 들어 보면, 앞으로 국민 모두가 영어로 생활할 수 있게 영어 교육을 강화한다고 하면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국어나 수학 같은 과목까지도 영어로 수업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세상에 자기 나라 국어를 영어로 수업하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
조선 왕조 500년 동안에는 한자?한문 때문에 우리말이 많이 사라졌고, 일제 때는 일본말 때문에 우리 고유한 말이 많이 죽어 없어졌다. 오늘날 우리말인 줄 착각하고 쓰고 있는 행정 용어, 학술 용어, 신문?방송 용어, 일반 생활 용어 중 상당수가 일본말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일본에 동화되고 말 것이 아닌지 염려될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 학회에서는 식민지 시대부터 우리말을 지키고 보급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써 왔고, 지금도 이 일에 애쓰고 있다. 그런데 새 정부가 자초하여 영어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우리말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지, 우리말의 나아갈 길을 생각한 일이 있는지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일제 때,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학교에서 우리말을 못 하게 하고 일본말만 쓰도록 강요하였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그런데 새 정부는 스스로 우리 국민들에게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으니, 자진하여 미국의 식민지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적이 의심스럽다.
우리말과 우리글은 우리 문화의 근본이요 한국 정신의 샘터이다. 우리 말글을 온전히 이어받아야 할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로 수업하고 영어 교육을 모국어 교육보다 우선한다면, 우리가 자진하여 우리말과 얼을 좀먹게 함으로써 우리의 전통과 애국심을 저버리게 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화 일변도로 나아가면 우리 문화와 우리 얼을 등한시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각급 교육 현장에서 영어만으로 수업한다면, 영어로 수업할 능력을 갖춘 초?중등 교사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갑자기 영어로 수업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이 그 수업을 얼마나 잘 듣고 이해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영어를 잘하게 하려면, 교재부터 새로 개발하여야 하고 수업 방법도 바꾸는 등 교육 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이 앞서야 한다. 일례를 들어 말하자면, 중학교 때부터 영어 회화 시간을 주당 3시간 이상 늘리되 교수 학습은 생활영어를 회화 중심으로 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한다. 새 정부는 더 넓은 안목으로 잘 살펴서 올바른 언어 정책으로 나라의 앞날에 희망을 열어 가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김승곤/ 한글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