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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 이 극로 선생님의 생가 복원에 참여하여 주십시오


한글 학회 회원 여러분,
그리고 한글과 우리말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조선어 학회(한글 학회의 옛 이름)의 간사장을 맡아 『큰사전』편찬에 중추적 구실을 하셨던 고루 이 극로 선생님의 생가 복원에 힘을 모아 주십시오.
이 극로 선생님의 생가(사진 참조)는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에 있습니다. 이 집은 이 극로 박사의 조카가 거주하다가 후손들이 모두 부산, 마산 등지로 이주하는 바람에 약 30여 년 전에 조카뻘 되는 이 필세 님이 사서 살고 있습니다만 기념 표지석 하나 없어 마을 사람들도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한글을 아끼셨던 분, 나라의 문화기둥인 우리말 사전 편찬에 일생을 거셨던 분, 그 분의 생가 보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었어야만 하는 것이지만 단지 해방과 더불어 북녘에 남았다는 이유로 저희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더 시간이 지나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이런 무관심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한글에 평생을 거셨던 이 극로 선생님의 생가를 지켜 주세요”

이 극로 선생님은 어린 나이에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을 거쳐 1916년에는 상해 동제대학 수학, 1922년 베를린대학에 입학하여 조선어강좌를 개설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학생들로부터 “어째서 조선에는 사전 하나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수치와 비애를 절감, 조국에 돌아와 조선어사전 편찬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는 귀국하여 우리말 사전 원고를 만들다 일본인들에게 잡혀가 온갖 고문 끝에 비밀 독립운동 허위자백으로 옥살이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에 최 현배, 이 희승, 정 인승 선생님과 함께 조선어 학회 재건에 착수, 사전 편찬의 일을 계속하여 1947년 10월 9일 조선말 큰사전 제1권이 발행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의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이념 대결 구도에 밀려 이 극로 선생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몰아붙이기 전에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한 인물이고, 조국 광복과 통일을 위해서 몸을 바친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한글을 아끼셨던 분, 나라의 문화기둥인 우리말 사전 편찬에 일생을 거셨던 분, 그 분의 생가 보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었어야만 하는 것이지만 단지 광복과 더불어 북녘에 남았다는 이유 하나로 지금까지 저희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더 시간이 지나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이런 무관심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우리의 손으로 그 분의 뜻을 기려야 하겠습니다.

이 일은 이제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이룩해야 할 과제입니다. 여러 뜻있는 누리꾼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복원 사업에는 수많은 재정적인 부담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작지만 그 정성 하나하나가 모여 큰 산을 이룰 것입니다. 내가 올린 벽돌 하나가 모여 값진 생가를 복원한다는 마음으로 많은 참여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8. 10. 1.



한글 학회

서명하러 가기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60854

 첨부파일
고루_이_극로_선생님의_생가_복원에_참여하여_주십시오_122290902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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