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이전 주시경 선생과 창립의 배경>
1896. 05. | 주시경 선생이 『독립신문』(1896. 04. 07. 창간) 발행에 참여하면서 신문사 안에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활약함. |
1905. 02.~ 1907. 06. 29. | 주시경 선생이 상동교회 청년학원(중등학교)에서 ‘국어’ 과목을 강의함. |
1907. 07.~ 1909. 12. | 주시경 선생이 대한제국 학부에 설치한 “국문연구소”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문과 그 표기법을 연구함. |
1907. 07. 01.∼ 09. 03. | 주시경 선생이 상동교회 청년학원에서 제1회 “하기 국어 강습소”를 운영함. |
1908. 07. 07.∼ 08. 31. | 주시경 선생이 상동교회 청년학회에서 제2회 “하기 국어 강습소”를 운영함. |
<창립 이후 해적이>
1908. 08. 31. | “국어연구학회” 창립(회장: 김정진). |
1909. 07. 10.~ 08. 31. | 부설 교육기관 “하기 국어강습소”를 운영함. 상동교회 청년학원에서 운영하던 제1회와 제2회에 이어 제3회로 시작함. |
1911. 09. 03. | 학회 이름을 “배달말글몯음(朝鮮言文會)”으로 바꿈. “국어강습소”도 “조선어강습원”으로 이름을 바꿈. |
1913. 03. 23. | 학회 이름을 “한글모”로 바꿈(회장: 주시경). |
1914. 04. | “조선어강습원”을 “한글배곧”으로 이름을 바꿈. |
1914. 07. 27. | 주시경 선생 돌아가심. |
1919. 가을. | “조선어연구회”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일어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