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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4 (물새와 함께 한 즐거움)

가을엔 중창 대회가 있다. 합창 대회보다 지도하기가 편하다. 일단 수가 적고,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서 연습을 시키기 때문이다. 곡목은 ‘물새’라는 우리 가곡으로 정했다. 중 2학생이 부르기에는 좀 어려운 곡이지만 노래 잘하는 여학생이 많았기에 도전을 해보았다. 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곡이기에 욕심을 부렸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지도시키려고 굳은 마음을 먹었다.^*^ “머언 먼… 바닷가에 외면할 수 없는 저 물새. 어쩌면 물결같이 출렁이고, 어쩌면 구름같이 떠다니고… 노을 빛 휘어져 내린 금 물결 위에 비끼어 나는 한 점 생명이여.” 정말 아름다운 가사다. 곡은 더욱 아름답다. (혹 기회가 되는 분은 찾아서 들어보시길….절대 후회 안 함을 장담함) 중 2의 애띤 아이들이었지만 곡을 너무도 잘 소화시켰다. 열심히 하면 ‘학년 1등’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열심히 연습을 시켰다. 중창에 뽑힌 학생 중에 문희도 있다. 문희는 1학년 때까지는 모범생이었는데,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일함으로 인해 점점 집 밖으로 나돌게 되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성적도 떨어져 걱정이 되던 학생이었다. 문희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아이들은 중창연습을 문희 집에서 자주 했다. 그래서 나는 퇴근하고 문희 집으로 가서 아이들을 연습시키곤 했다. 중창대회 날이 점점 다가오고 막바지 점검으로 본인들이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들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서로 의논을 해서 부족한 점을 고치며 연습을 하라고 지시를 했고, 아이들은 내 말을 따라서 정말 최선을 다해 연습을 했다. 갈수록 노래 실력이 느니 아이들도, 나도 정말 신이 났다. 내일이 중창대회 날이다. 공교롭게 아침에 허리를 삐끗해서 간신히 학교에 갔고, 하루종일 힘겹게 움직였다. 그러나 아이들 연습은 봐주어야지… 아픈 허리를 이끌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퇴근 후 문희 집으로 갔다. 아이들 눈이 동그래진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자기들을 격려해주기 위해 온 선생님이 못내 고마운 눈치다. 녹음해 놓은 것을 같이 듣고 마지막 점검을 하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千命)’이라는 거창한 문구를 떠올렸다. 정말 우리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기에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주시리라… 완벽했다! 정말 완벽했다!! 아름다운 곡을 완벽하게 불렀으니 금상첨화이다. 드디어 심사 발표다. 수상은 학년 별로 동상, 은상, 금상을 주고 3개 학년을 통틀어 대상을 준다. 학년 별로 수상을 한다. 2학년 순서다. 그런데... 우리 반이 불리지를 않았다. 내심 금상을 기대한 나와 아이들은 모두 실망한 눈치다. 하나뿐인 ‘대상’은 졸업반인 중 3에게 주는 것이 통례이기에 대상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너무 잘해서 안 주었나…’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을 어떻게 위로 해줄까로 고민하고 있는데… “대상!! 2학년 5반, 물새!” 야호!!!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 함성을 지르고 서로 껴안고… 상을 받으러 달려가는 학생들의 모습 뒤로 최선을 다한 뒤에 얻은 환희의 빛이 퍼지고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 오니 내 책상에 편지가 있다. “선생님, 문희예요… 그동안 공부 열심히 안하고 친구들하고 밤늦게까지 놀기만 했었어요. 왜냐하면 공부보다 즐거웠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진짜 즐거운 것’이 무엇인 가를 중창대회를 준비하면서 알았습니다.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친구와 놀러 다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즐거움’은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에 남아 저를 끊임없이 기쁘게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더욱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이런 소중한 것을 느끼게 해 준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문희를 안듯이 편지를 꼬옥 껴안았다. “ ..…. 선생님, 이곳은 남아프리카입니다. 앞으로는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리라는 생각에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했습니다. 부모님을 떠나서, 외롭고 힘들지만 미래를 위해 참기로 했습니다. 아직도 3년 전, 선생님과 같이 열심히 준비한 중창대회가 생각이 납니다. 그 때 주셨던 무언의 가르침은 지금 제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똑똑하진 않지만 영어라도 잘해서 제 나름의 힘을 갖고 싶습니다.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고 2 때 남아프리카로 유학간 문희와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어디서든 최선을 다한 후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유난히 뽀얗던 문희의 피부같이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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