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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은 계속될 것이다…

'진정한 정체성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토요일 아침 7시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선다. 23가 Park Ave. 에 내려 2nd Ave. 에 있는 학교를 향해 걷는다. 한 10분 거리이다. 작은 공원이 나오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내 발걸음은 더욱 활기차 지고, 마음은 공원의 푸르름보다 더 환한 생동감으로 벅차 오른다.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뿌듯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뉴욕에 와서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니… 눈물나도록 감격스럽다. 동해에서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의 감격과는 또 다른, 가질 수 없는 보석을 얻은 것 마냥 매주 토요일이 행복에 젖는다. 강원도 작은 도시에서의 시작과 달리 내 교육인생 2막은 세계의 심장인 뉴욕 맨해튼에서 펼쳐지게 되었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용광로 같은 도시…. 맨해튼 유일의 한국학교로 20여 년의 전통과 실력을 갖춘 뉴욕브로드웨이한국학교의 교사가 된 것은 행운이었다. 어쩌면 한국의 아이들을 뒤로 하고 온 내게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행운도 가볍게 얻어진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기적 같은 손길이 있었지만 그 과정은 생략! 중요한 것은 미국에 와서도 비록 일주일에 한 번 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좋게 좋은 Full Time Job 도 갖게 된 나는 한국학교 가는 기대 때문에 돈만을 위해 일하게 된 직장마저도 기쁘게 다닐 정도였다. 그만큼 뉴욕생활의 활력소인 한국학교는 내게 풍성한 보람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오늘은 숙제, 내일은 수업자료, 그 다음 날은 알림장… 매일 퇴근 후에 한국학교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오히려 피로를 씻어주었으며, 오고 가는 출퇴근시간에 수업을 어떻게 전개시킬까를 고민하며 혼자 심각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던 그 시간의 소중함, 충만함…. 그러면서 나는 한국학교에 빠져들어갔고, 한글을 가르치면서 ‘정체성 교육’이라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거대하면서도 새로운 교육의 장(場)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 학교를 다닐 때는 한국학교의 중요성, 정체성 교육, 이런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냥 가르치는 것이 너무 좋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처음 한국학교에서 일할 때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 ‘태권도, 무용’ 대신 한국어를 가르쳐서 한국어 실력을 더 늘렸으면… 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끝내는 학습발표회를 보면서 나는 한글 교육에서 한국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가슴으로 터득했다. ‘아, 이것이 진정한 ‘한국학교’구나. 한글학교가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발표하며 이들은 진정한 한국인이 되고, 몸으로, 정신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구나….’ 상민이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처음 상민이를 한국학교에 데리고 오며 너는 한국인이니까 한국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그랬더니 상민이는 자기는 미국인이라고, 절대 한국인이 아니라고… 그렇다 이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 선서를 외우고, 미국국가를 배우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아이이다. 학교에 가면 온통 백인 아이들이지만 그들은 자신과 그들이 틀리다 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미국인에 대한 고집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꺽이지 않는다. 그런데 1년을 채워갈 무렵 상민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매주 한국학교에 와서 자신과 비슷한 친구, 교사, 학부모님들과 만나며 그 속에서 한국말, 한국문화 등을 배우면서 미국 학교와는 틀린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터득했던 것이다. 자신이 American 이 아니라 Korean- American 이라는 것을.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것을. 인종시장이라 할 만큼 다민족이 북적대는 뉴욕에서 그들은 그렇게 자기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내가 맡은 반은 중급반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미국의 학교에 다니고 토요일엔 한국학교에 와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운다. 다른 친구들이 더 자고 더 놀고, 자기들이 진짜 배우고 싶어하는 것을 뒤로 하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영어와는 너무나 다른 한국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대견한 지… 이 아이들이 투자하는 토요일 오전이 훗날 그들에게 큰 재산이 되도록 해주고 싶었다. 어려운 한국어 공부를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까? 어떻게 하면 한국어 배우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할 수 있을까? 다행이 아이들은 너무도 착하고 똑똑해서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향상되며 간단한 문장이나마 자신의 생각을 일기로 잘 표현한다. 아이들의 일기를 통해 그들의 뉴욕생활을 알아가며 한국의 아이들과는 제법 다른 생활에 생소하기도 하고 부러워하면서 그렇게 아이들과 미국을 알아갔다. 그러다 교장 선생님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나는 교사를 한 지 6년 차에 얼떨결에 교장을 하게 된다. 미처 준비도 없이 교장을 하게 되며 학교 이사, 교사 채용 등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고 한 학기 한 학기 채워온 것이 5학기를 마쳤다. 더 배우고 경험한 후에 했어야 했는데 너무 일찍 교장이 되는 바람에 낑낑대며 학교를 운영했지만 학급 아이들만 바라보던 시선이 학교라는 큰 시선으로 옮겨지며 정체성 교육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학교의 200년 후의 청사진을 향해 기쁘고 보람되게 달려왔다. 이제 그간의 경험을 살려 부족했던 점을 채워야 할 시간이 필요하건만 학교를 떠나야 한다. 나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꼭 돌아가리라 다짐한 시간들이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막상 떠나려니 시시때때로 눈에 밟히는 한국학교.... 한국에서 학교를 떠날 때는 정말 많이 울었다. 1시간 이상 쉬지 않고 울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떠난다는 아쉬움이 참 컸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번엔 덜 울어서 다행이다.^*^ 그것은 한국학교를 떠난 다는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리라. 미국에 와서 발견한 정체성, 뿌리 교육! 너무나 소중한 교육이기에 비록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한국학교에 영원히 남을 것이고, Korean-American 2세들을 위한 일을 하리라 다짐한다. 우리 아이들이 세계 강대국인 미국땅에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성공하는 미국인, 한국인, 세계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내 교육의 가장 근본 철학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키우는 거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귀하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의 존엄성을 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다’ 라는 당당함!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고 지킬 때,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당당하게 개척하고,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획일적이고 성공지향적인 한국교육에도 필요한 일이고, 다민족이 북적대는 곳에서 백인이 절대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아니 세계 어디에 있든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를 바란다. 진정한 정체성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나오니까…” -------------------------------------------------------------------------------------- 그 동안 ‘내 생애의 아이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귀국관계로 일단 마무리를 짓습니다. 토요일 아침, 졸린 눈 비비면서도 열심히 다닌 한국학교 아이들의 얘기는 애절하리 만치 사랑하는 나의 고국에서 그들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며 쓰겠습니다. 고국에서의 교육인생 3막은 한국의 아이들과 미국의 아이들 모두에게 더욱 소중한 것을 안겨주는 교육이 되길 기대하고 갈망하면서… 즐거운 연말과 행복이 주렁주렁 열리는 희망찬 2007년이 되시길 기원하며,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김별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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