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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버리 그 이후…

따르릉 따르릉... ... '오클랜드 공항 경찰 '존 니콜'입니다. 한 번 더 자세한 그 날의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모든걸 다 내려놓고 이제는 보험처리며 노트 속 잃어버린 기억을 어떻게 되살리나 고민하던 일 주일이 지나던 때이다. 난 그 당시 입은 옷이며 시간 그리고 인삼 사건으로 제법 긴 시간을 지체했으니 CC TV 에서 날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 한번 설명을 했다. 전화를 내려놓고 1 % 의 희망으로 기대하던 그 기대를 가져봤지만 못 찾을거라 싶었다. 마지막 검색대를 통과한 후 두고 왔으니 내 다음 승객이거나 직원이 챙겼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 이었는데, 아직 아무 소식이 없는걸로 보아 아마 어느 승객이 가져가지 않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 가방은 기내로 직접 들고 들어갔기에 이름표도 없었다. 난 일주일 동안 공항에 정말 30 번 가까이 전화를 한 것 같다. 여기로 하면 저기로 하라 하고,저기로 하면 또 다른 곳으로 하라 하고, 이사람 통화하면 저 사람 담당이라 하고 저사람 통화되면 없다 하고...어쩌다 얘기되면 수도없이 반복되는 내 사건 이야기...그 가운데 존 니콜은 참 친절했다. 공항 경찰에 직접 신고하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바로 니콜이 해주었기에 이틀이 지나 신고하러 다시 공항에 간 것이다. 그 니콜이 약 한 시간이 지나 또 전화가 왔다.'찾았다. CC TV 에서 널 찾기는 너무 쉬웠고 금방 알았다. 그리고 가방도 어느 것인지 확실히 알았다. 가져간건 네 다음 승객인 아주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건장한 마오리 남자였다. 그러니 컴퓨터 조회를 해서 그 사람을 찾아 연락주겠다. 기다려달라' 기절할 것 같았다. 정말 놀라왔다. 그 수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만나고 했는데, 어느 소수민족 말도 어눌한 아줌마가 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가지고 저리도 안달복달을 하나 하는 이미지로 날 포기하게 만들었는데, 이 니콜만큼은 끝까지 날 위해 포기하지 않고 찾아준 것이다. 너무 고마워 만약 그 가방안에 물건이 하나도 없다 해도 그저 내 노트만 찾으면 된다 싶어 이걸로 만족이다 싶었다. 사실 내가 전화하다 불편하면 아들이 했고, 그것도 부족해 어느부분 자기나라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냉대(?)를 받나 싶어 어려운일 있을 때마다 통역시키는 우리학교 학생인 리챠드 목사님에게 확인 전화를 여러번 한 상태였다. 경찰에 직접 신고 후 집에 와 확인해보니 그 신고서에 중요한 내 노트 이야기가 빠졌기에 재 확인차 목사님에게 부탁한 것이다. 난 분명 말했는데 왜 빠졌는지... 이런 상태에서 다시 한 시간이 지나 세 번째 전화가 울린다. '정미, 네 가방을 찾았으니 가지러 와라. 지금 내 자리 옆에 잘 두었다' 난 믿을 수 없어 다시 한번 아들과 재차 확인한 후에야 이게 꿈이 아닌 생시인걸 알았다. 어떻게 이런 놀랍고 고마운 일이... 사건은 당일 내 가방은 마오리 원주민이 가져갔고 이틀 안에 분실물 쎈타안에 들어왔는데 언제 누가 갔다 놓았는지는 모른단다. 좌우간 가방 속 물건은 그대로 있는것 같다는 설명과 함께 기쁨의 메세지를 전해준다. 난 너무 흥분되었고 기도하며 어느부분 끝까지 최선을 다한 내가 고마웠다. 이제 어쩌지? 공항에 한 번도 혼자 올라가 본적이 없는데...장거리 운전을 절대(?) 안시키는 반쪽덕에 단 한 번도 공항 운전을 안해 보았기에 그 밤에 올라가는게 영 찜찜한 상태다. 이제 고 3 인 큰 아들이 옆에서 자기가 간다고 우긴다. 오잉? 이제 남편 대신 아들이? 흠..^^ 엄마가 올려다 보는 듬직한 이제 운전 3 년차인 아들의 첫 공항 운전이 시작된다. 떠나기 전, 어떡하지? 무얼 주지? 어떻게 고마움을 표하지? 누구하나 거들떠 안보고 확인했다고 하는데도 '없다' 하고, '다시 확인한다' 하고 매일 내일 내일로 미루던 그 상태에서, 오로지 존 니콜만이 내 애타는 마음을 읽어 주어 이런 결과를 낳게 했는데 어떻게 감사함을 표하지? 한국에서 사온 선물들은 이미 다 나눠주어 없는데...흠...집안을 뒤져 우리 고유의 것 한 개와 멋진 볼펜 그리고 정성을 다해 감사 카드를 준비했다. 그 와중에 감사의 마음으로 돈도 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아들이 한다. '그것도 좋지' 하며 우리는 카드와 함께 정성의 마음을 담는다. 공항에 올라가는 마음은 누구를 마중하고 배웅하러 가던 그 수십번의 마음과 확연히 달랐으며 아들의 염려스런 첫 운전에 기도하며 가는 모든게 평화스러워 보였으니...그저 감사가 끊이질 않는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 경찰서, 존 니콜은 앳띠게 보이는 키위였고 총각이냐는 물음에 홍조를 띠고 결혼 반지를 보여주며 자랑하는 새내기 아저씨(?)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선물을 받고 우리나라 것이 최고(?)라는 설명에 끄덕임이 사실이길 바라는 맘과 함께 카드와 조그만 맘의 물질도 주었더니 카드만 받는다. 자기는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받지 않는다고...카드와 선물 만으로도 넘 감사하다고...그럼 옆에 맥도널드가서 함께 저녁을...그것도 맘만 감사히 받는다고...그럼 동료들과 함께 마실 커피라도 사다드릴까 라는 작은 성의도, 우리나라 정서닮은 고개짓으로 도리질을 하며 환한 웃음을 보인다.분명 이 도리질은 내가 인삼을 가져가길 부탁하며 냉정하게 거절했던 그 도리질과는 차이가 있었으니 일 주일 차이에 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 난 지금 존 니콜에게 그리고 공항 홈 페이지에 올릴 글을 준비 중이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달리 보답할 길이 없기에 이 길만이 내가 할 일 같아 정성스런 편지를 쓰고 있다. 영어가 아닌 한글이면 벌써 그 밤에 올렸을걸 하는 맘이지만 그래도 부족한 자에게 이렇게나마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고마울 뿐이다. 2007 년 9 월 9 일, 난 오늘 이민 10 주년을 맞으며 10 년전 뉴질랜드에 도착하여 우리 가족의 앞길을 두고 함께 기도하며 어떻게 또 다른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간구했다. 크고 작은 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오늘의 축복...10 년 전, 내 계획에는 없었지만 꿈나무 차세대들을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교사로 서있게 한 사실에 감사한다. 앞마당에 바라보이는 우리집 가든의 자목련이 오늘은 유난히 환한 함박웃음으로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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