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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빠들의 학교 사랑

현종이 아빠가 교무실로 들어오신다. 자주 현종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시기에 얼굴은 익혔지만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현종 is supposed to go to the birthday party of his friend. So, I came here to pick him up early.” ‘으응??… 현종이 아빠는 한국말을 못하나???’ 보조 학생이 현종이를 데리러 간 사이 현종이 아빠와 대화를 나누었다. “You don’t speak Korean, do you?” “I can understand Korean, but it is hard for me to speak Korean.” “When did you come to USA?” “I came when I was 3 years old. At that time, it was hard to find a Korean school, and there were few Korean people. So, I had no chance to learn Korean…” 그렇게 하여 현종이 아빠와 안면을 트게 되었고, 학교에 오시면 나에게 꼭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한국에서 자란 사람과는 사뭇 다르다. 어느 정도 시선이 마주치는 거리에 오면 손을 번쩍 쳐들며 “Hi!” 하며 반갑게 말을 한다. 친구에게 인사하듯 하는 그의 모습에 당황했을 뿐더러, 고개 푹 숙여 인사한 내가 멋쩍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후 그 불평등(?)한 인사가 계속 되면서 매번 고개 숙이는 내가 너무 손해(^*^)라는 생각을 하며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나도 그에게 손을 번쩍 들어 “Hi” 하며 친구처럼 인사할까???... 아니야… 여기는 한국학교!, 현종이 아빠도 한국의 문화를 배우며 한국적인 것을 자꾸 익혀야 해… 내가 그에게 자주 인사하다 보면 그도 한국적인 인사법을 알아가겠지…’ 아니나 다를까. 어느 때부터인가 현종이 아빠도 나를 보면 고개 숙이며 인사를 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지요?” 라는 한국말까지 겻들여가며. “오! 한국말 어디서 배우셨어요?” “현종이한테서요… ” 경인이, 경현이 아빠도 4살 때 미국에 이민 와서 한국말을 할 줄 모른다. 자랄 때는 몰랐으나 어른이 되고 사업을 하면서 한국말을 잘해야 할 필요성을 느낌과 동시에 어려서부터 한국말을 배우지 못한 한(恨)을 가지고 있기에 아이들이 한국학교 다니는 것에 대해 절대적이다. 혹 아이들이 토요일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운동이나 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해도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무조건 일순위는 한국어다. 그런 경인이 아버지는 내게 너무나 든든한 백이다. 비록 한국어를 못하시지만…^*^ . 한국학교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로 학교 행사에도 자주 오시고, 기부도 많이 하신다. 연말 파티에 오셔서 인사를 나누었으나 한국말을 못하는 지라 사람들 사이에 어울리기가 쉽지 않은 가 보다.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말도 많은 편인데 한국사람들 모임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 자루가 되요.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한국학교를 다니며 한국말을 하기 시작하니까 제법 따라 하며 본인도 한국말을 많이 하려고는 해요…” 경인이 어머님은 남편이 한국말을 못해 한국사람들 모임을 꺼려하지만 그럴수록 일부러 많이 다닌다면서 남편도 빨리 한국말을 잘하고 그 문화에 잘 어울렸으면…하는 바람을 이야기 하였다. “여보세요? 경인이 어머님 계신가요?” “지금 없어요. 밖에 잠깐 나갔어요. 30분 후쯤 있다 올 거예요. 어디십니까?” “네, 한국학교입니다. 그럼 30분 후에 다시 걸겠습니다….” 분명 남자 어른의 목소리다. 경인이 집에 남자 어른이라고는 경인이 아빠 뿐인데.. 경인이 아빠치고는 발음도 좋고 말도 너무 잘하고…. 집에 손님이 오셨나??? “선생님… 전화하셨다면서요? 경인이 아빠가 그러던데…” “정말 그 분이 경인이 아버지세요? 저는 한국말을 너무 잘 하셔서 긴가 민가 했어요.” “이젠 제법 한국말 해요. 아이들하고 항상 한국말 하려고 하고, 저하고도요… 결혼 초기에는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지금은 한국말로 대화를 해서 저도 너무 좋아요. 잘 모르겠으면 아이들한테 물어보고 그래요. 이젠 쓰기도 하고자 하는데 너무 못하니까 아이들이 놀리죠. 그래도 아빠는 싱긍벙글이에요. 아이들이 일기를 혼자 척척 쓰는 것을 보며 너무 대견해 하지요… 아이 아빠는 아이들이 한국말 느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그 행복으로 사는 사람 같아요… ” 규태, 소희 아버지는 7살 때 미국에 오셨다. 역시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한 분이다. 어머니는 4살 때 와서 한국말이 더 서툴다. 부부가 꼭 같이 다니셔서 잉꼬부부임을 과시했으며, 한국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써야 한다며 꾸역꾸역 한국말 대화를 열심히 하신다. 그러다 어려운 표현에서 규태 어머니가 영어를 할라치면 다시 한국말로 가르쳐주실 만큼 한국어에 남다른 정열을 보이신다. 그런 규태 아버님의 한국어에 대한 학구열은 더욱 뜨겁다. 어느 때부터인가 한국말을 모르는 학부형이 40%를 넘어서면서 모든 공문을 한, 영 이중으로 내보냈다. 규태 아버지는 분명 한국어 편지가 어렵고 무슨 말인 지 모르는 부분이 많을 텐데 편지를 볼 때는 꼭 한국말부터 본다. 나는 유심히 그의 얼굴을 살핀다. 잘 모르는 것이 있는 눈치이다. 그러면 뒷장의 영문 내용을 봐도 될 텐데 꼭 질문을 한다. “대여”가 무슨 뜻이에요? “네… 빌려준다고요. Rent!” “으응… 대여…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한다. 그러면 맞나요?' “네... “ “아, 감사합니다. 오늘 또 하나 배웠네요… 대여, 대여…” “한국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시네요…” “네… 그냥 말은 하겠는데 한자말 어려운 것이 참 많아요. 특히 문장읽기는 제게 너무 힘들죠. 그러나 아이들도 배우는데 저도 배워야죠. 솔직히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한국적인 것의 소중함을 잘 몰랐어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대한 의식도 별로 없었고요.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였을 거예요. 카페테리아에 가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같은 인종끼리 앉아요. 저 자신도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지요. 대학 때오니 그제서야 분명해지더군요. 미국인 친구들과 다른 무엇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에 사로잡혔어요. 참 혼란스러웠지요… 한국인, 한국문화와 말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늦은 만큼 열심히 한국적인 것과 접했어요. 한국에서 유학 온 친구들 덕을 많이 봤지요. 오랜 간 사귄 미국인 친구보다 한국에서 유학 온 친구들에게 더 친근감이 생기고 그들과 더 자주 어울리게 되더군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한국인임을 잘 알고 한국말도 체계적으로 배워서 저 같은 혼란을 덜 겪었으면 해요…” 지수, 민호 아버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민 오셨다. 한국인과의 접촉이 거의 없이 자라셔서 그런지 생각과 분위기가 1.5세라기보단 2세에 가깝다. 역시 영어가 편하신 분이다. 몇 몇 아버님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오기는 하나 전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학교가 마칠 때까지 상주하는 분은 한 분도 없었기에 금방 눈에 띄는 분이다. 3년 정도 늦게 한국학교에 입학했다며 아이들이 적응을 잘 하는 지 곁에서 지켜보며 챙겨주는, 자상함이 철철 넘치는 아빠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인데.... 그 긴 시간… 처음엔 온통 엄마들 뿐인 카페테리아 한 켠에서 혼자 “New York Times”를 훑어 보시고, 옆에서 들려오는 엄마들 수다도 슬쩍 훔쳐 듣기도 하시고… 그것에 지치면 학교 옆 Bagel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곤 하셨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시간… 아이들을 기다리는 4시간은 참 지루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머님들과의 대화에도 어울리며, 부족했던 한국어 실력도 늘리고 한국적 마인드도 배우면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당신도 한국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아이들도 처음엔 한국학교가 어색했겠지만 어느 덧 한국무용에 어깨와 발의 스텝을 맞추며 미소짓는 지수, “태권!”을 힘차게 외치는 민호처럼 저도 이젠 매주 고향에 오는 기분으로 학교 를 찾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국학교는 지루함의 장소가 아닌 아이들과 저와 함께 느끼는 소중하 고 편한 장소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학교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며 특유의 온유함과 사회성으로 학부모님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시더니 학부모회장으로 당선되셨다. 직장일로도 많이 바쁘실 텐데 학교 발전을 위해 크고 작은 일을 살피는 그 정성과 배려에 당시 새내기 교장이 되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 “교장 선생님… 이번 연말에 모두 단합 할 수 있는 잔치를 하려고 해요. 마침 현종이 아빠가 좋은 장소를 제공해준다고 했어요…” 현종 아버지(학부모회장님과 친구사이다)가 직접 설계하고 투자하신 카페를 빌린단다. 그곳은 그 유명한, 세계 최대의 ‘락카펠러 센터 크리스마스 트리’가 한 눈에 보이는 멋진 곳이다. 화려함이 반짝이는 연말, 그것도 주말 저녁 시간에 그 환상적인 장소가 한국학교 가족을 위해 제공된다는 사실에 많이 감사하고 감격했다. 모두들 그 아름다운 밤을 기대하며 마음 설레 할 동안 지수 아버님은 학부모회 임원 들과 여러 가지 의논을 하며 바삐 움직이시더니 근사한 초대장도 만들어 오셨다. 파스텔 톤 연녹색 바탕에 초록빛 크리스마스 트리, 그 위의 금색 장식이 초대장의 품위를 더욱 높여준다. 예쁜 카드라 열어보는 마음이 더욱 밝아진다. 그런데 카드를 열어 내용을 보니 온통 영어다. ‘…한국 학교 행사인데 모두 영어로 하셨네… 한국어 글쓰기가 서툴다 보니 이렇게 하셨나 보다. 의욕적으로 열심히 일해주시는 분 한데 이것을 어떻게 말씀 드려야 마음이 덜 상하실까? ’ 로 고민에 빠져 있는데… “아이고, 이거 한국학교 카드에 한국어가 있어야지, 영어가 뭡니까?” 규태 아버님의 커다란 목소리에도 놀랐지만 직설적인 지적에 모두들 깜짝 놀란 표정이다. 그래도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미국 문화에 익숙해서 인지 회장님은 별로 기분이 안 나쁜 눈치라 다행이다. “예… 죄송합니다. 한국말로 했어야 했는데 너무 바빠서…. 시간에 맞추다 보니 한국말로 바꿀 여유가 없었어요… 회사나 집에선 한국말 잘하는 사람도 없고…” “그럼 저한테 전화하시지요… 우리 직원 중에 한국말 잘하는 사람 많은데…팩스하면 한국말로 금방 고쳐서 보내줄 수 있어요. 다음엔 그렇게 합시다.… 아니다… 이 기회에 나도 크리스마스 카드 쓰는 것 좀 배워야 겠네요. 교장 선생님…이거 좀 같이 번역해 봅시다…” “잠깐!!! 공부는 나중에 하시고요… 봉투에 학부모 이름 쓰는 것 좀 도와주십시오. 아이들 하교하기 전까지 카드를 다 나누어 주어야 해요.… 자 모두들 모이세요…” 규태 아버님의 남다른 학구열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학부모들께 볼펜을 나누어 주는 회장님 손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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