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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에서 결혼까지

매년 여름방학이면 학생들이나 다른 선생님들은 그동안의 수고를 뒤로 하고 계절을 만끽할 때 난 학예회에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느라 여름을 다 보내곤 한다. 우리 학교는 크리스마스에 학예회를 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 하니 가을 학기 시작할 때 무엇을 할지 결정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책도 들춰 보고 가지고 있던 모든 자료들을 돌아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한국어와 영어로 한국인의 생활에 대해 여러가지로 알려 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출생에서 장례까지 ?? 바로 이것이다 싶었다. 간단하지만 생활 속의 풍속이 무엇이며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또 우리가 어떻게 지내야 히는지 등 내가 모르던 것까지 알게 되면서 나 자신도 흥미로와 졌다. 먼저 출생에서 결혼(장례는 아직 아이들에게 알리기 어렵기도 하지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결혼까지만 다뤘다.)까지 자연스레 알리기 위해 짧은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우리 학교가 빌려쓰는 곳이 제대로 된 강당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대신 큰 강의실을 쓰는 처지라 의자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으나 무대는 커녕 각종 영상기기와 수도시설까지 되어 있는 큰 상이 가운데에 영구적으로 설치되어 있어 연극하기가 늘 어려웠기에 단막극 형식을 빌어 설명도 곁들여 해 보기로 했다. 개학하자마자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얘기하자 아이들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겐 먼저 그 책을 통해 출생 때, 돌잔치, 중매를 통해 사주 단자를 보내며 청혼하고 함이 오고간 후 결혼식 하는 것까지 자세하게 살펴보게 한 후 잘 준비하여 학예회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다른 학생들과 학부형들께 알려 드리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면 주인공은 당연히 신랑과 신부일 것인데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세상에 나는 것 부터 돌잔치, 그리고 결혼식 장면에선 원삼과 족도리 사모관대도 입히려다 보니 아이들이 서로 얼마나 하고 싶을까 싶어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약간 망설였다. 그러다 통일교도들로 5-6살 때부터 우리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 지금 고등학생이 되도록 다니는 희숙(외국아이인데도 한국이름을 가지고 있다.)이와 크리스를 주인공으로 삼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이들에게 너희는 부모님이 한국인인 이상 정말 결혼하게 될 때 이런 경험을 하게 될 확률이 높으니 그 아이들에게 양보하면 어떻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착한 우리 아이들 기꺼이 그 둘에게 주인공 자리를 맡기겠노라고 박수를 쳐 주었다. 남은 아이들에게 희숙이, 크리스의 부모, 중매를 하게 된 방물장수, 함잡이, 결혼식을 진행할 사람들 등 역할을 맡기고 중간중간 설명은 한국어로는 물론 영어도 곁들이기로 했다. 일부 한국 아이들을 입양한 부모님이나 성인반, 그리고 한국어에 서투른 아이들에게까지 전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어 설명 부분은 되도록 짧게 만들어 여러 사람이 나누어 하더라도 꼭 외워서 하게 했으며 외국 배경을 가진 아이들은 꼭 한국어로만 하게 했다. 한국 부모님을 가진 아이들은 한국어 설명 순서도 맡았지만 영어 설명 부분은 몇 가지를 묶어 한 사람씩 맡아 읽어 드리는 것으로 하고 대본 연습을 하면서 한편으론 단막극에 쓸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문에 내거는 삼줄을 만들기 위해 새끼줄을 구하느라 홈디포며 로스를 몇 번씩 왔다갔다 하다가 아주 비슷한 로프를 찾았다. 극에선 아들 하나 딸 하나, 둘 만 필요하겠지만 아이들에게 경험을 하게 하기 위해 각자 하나씩 만들어 보게 했다. 홈디포에선 친절하게 끝이 풀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길이로 자른 후 끝을 그슬려 주었다. 겨우 새끼줄 거리를 찾고 나니 그 다음은 숯을 어디서 찾느냐가 큰 일이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작은 아이 친구 가족 두 집과 가진 저녁 파티가 생각이 났다. 우리는 10여년에 걸쳐 세 집이 모여 1년에 한 번 씩이지만 서로 음식을 나누며 좋은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늘 갈비를 재워가곤 했는데 그 해엔 Hannah 아빠가 charcoal 대신 숯 비슷한 걸로 갈비를 구워 내던 생각이 났다. 알아본 결과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한참인 웰빙을 표방하는 유명한 마켓에서 구입했다고 알려 줬다. 그곳은 모든 제품-채소, 고기까지도 무공해 등 건강에 좋은 것만 공급하는 곳으로 charcoal도 석탄으로 된 것은 취급하지 않고 한국식 숯처럼 생긴 것만 파는 곳이었다. 그렇게 구한 숯과 새끼줄, 고추, 솔잎, 그리고 하얀 헝겊 등을 이용해 책에 있는 대로 삼줄을 만들고 보니 너무 그럴 듯 했다. 삼줄을 걸기 위한 희숙이네와 크리스네 집 대문은 접기식으로 된 큰 presentation board를 펴서 대문을 그리고 그 위에 지붕은 construction paper를 붙여 기와 기분을 내 봤다. 거기에 삼줄을 걸어 보니 예전 우리 어렸을 때 동네에서 보던 삼줄 못지 않았다. 이번엔 돌고임을 만들었다. 그냥 쌓기는 너무 힘들어 생각해 낸 것이 가운데 paper towel을 세워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돌고임은 커다란 마쉬메로우를 이용해 두 개를 만들어 가운데 축 돌이라고 쓴 것과 나머지는 젤리 캔디와 cereal 중 색깔 있는 걸로 몇 개 만들긴 했으나 쌓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과일들을 세워 몇 개 더 만들었다. 하나씩 완성이 될 때마다 아이들이 너무 신기해 하고 자기네들을 대견해 하기도 했다. 그걸 보는 내 맘은 정말 뿌듯했다. 결혼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제일 먼저 방물장수가 중매하는 과정을 그려 봤다. 방물장수 역을 맡은 효주가 천연덕스럽게 희숙이와 크리스 집을 오가며 중매를 성사시켰다. 함잡이로는 효주 동생 승현이가 오징어로 만든 가면까지 쓰고 잘 해 내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주변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어 만들기가 어렵긴 했어도 해낼 수가 있었지만 사모관대와 원삼 족두리 빌리는 일은 뉴욕이면 모를까 이곳 보스톤 근처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언니네가 뉴저지에 살아 거기서 얻은 한인업소록을 보고 미용실 등을 돌며 사정을 얘기하고 알아봤더니 웨딩드레스 대여하는 곳에 가 보라 했다. 바로 그런 곳으로 찾아 나섰다. 웨딩샵이나 한복집엔 정말 너무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원삼들이 있었다. 그런데 비용이 삼백불 이상이니 우리로서는 쳐다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더구나 뉴욕, 뉴저지가 아니면 그 돈으로도 빌릴 수가 없다 했다. 너무 낙심하고 있는 나와 남편이 그래도 측은해 보였던지 잔치집을 알아 보라며 일러 줬다. 잔치집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주에서 온 사람에게는 빌려 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잔치음식을 주문하면 서비스 차원으로 빌려주던 터라 이틀 이상은 빌려 줄 수도 없다 했다. 담보로 돈을 맡겼다가 빌려 쓰고 다시 받겠다 해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정말 기가 막혔다. 자라나는 2세들을 위해서 무료로는 고사하고 돈을 맡기고, 또 나중에는 비용도 내겠다 해도 믿어 주지 않는 그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여러가지 상황을 듣더니 언니가 좋은 방법을 제안했다. 자기가 뉴저지에 사니 자기 이름으로 빌려 볼테니 와서 가져 가라 했다. 그곳은 내가 사는 곳에서 3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이기 때문에 갔다가 7시 학예회 시간까지 대어 오려면 아침 일찍 떠나고도 아침, 저녁 러시아워를 감안하면 불안하기까지 했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나야 한인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일이 좋아서 매달린 일이었지만 남편은 뒤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발로 뛰며 날 도와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가 나서 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빌려온 의상들은 너무 구겨져 있었으나 시간이 없어 그대로 써야 했지만 다행히 상, 돗자리, 주전자, 약간 헐었지만 병풍까지 포함하고 있어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어 학예회는 시작되었고 어린 아이들의 귀여운 순서들을 마치고 우리반 순서가 됐다. 희숙이와 크리스가 응애~ 소리로, 그리고 그 부모역을 맡은 아이들이 아들, 딸 얻은 것을 기뻐하며 삼줄을 거는 것으로 극은 시작되었다. 가끔 대사를 불러 줘야 하긴 했어도 아이들이 열심히 외워준 덕에 진행이 잘 돼 주었다. 보는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하나하나 순서를 지켜 보고 있었고 어른들은 “맞아, 맞아! 그랬었지.” 무릎을 치시며 즐겁게 보시고 계셨다. 특히 주인공을 맡은 희숙이와 크리스 부모님들은 크게 기뻐하시며 아이들이 너무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줘 감사하다고 몇 번 씩이나 인사를 하셨다. 결혼식 사회를 맡은 지미는 빌려 입은 두루마기 덕에 어찌나 점쟎아 보이던지. 5살 무렵부터 나와 같이 지내온 아이들인데 어느 새 이렇게 자라서 여러가지 역할들을 의젓하게 해내고 있는지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벅차 올랐다. 그 날 남편과 나는 돌아와 완전히 뻗고 남편은 다음 날 빌려온 물건들을 돌려주기 위해 다시 뉴저지로 떠나야 했지만 아이들과 준비하며 지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얼굴엔 저절로 웃음이 피어 올랐다. 이런 보람이 있기에 오늘도 난 20년 째, 매 순간 “아, 요것은 아이들 수업에 이렇게 적용할 수 있겠구나!' 하며 하루를 보낸다. 부끄럽지만 공감하시리라 생각하며 올렸습니다. 여러 샘들도 가지고 계신 이야기들 풀어 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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