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려주고 싶어요…” 얼마 전 한 입양아에 대한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7년 전, 서울에 주재했던 유럽 외교관 집안에 입양됐던 한국의 여자 아이(제이드, 8세)가 양부모의 파양으로 1년이 넘게 홍콩에서 국제미아로 떠돌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외교관 부부는 당시 부인이 불임이었으나 그 뒤 아이를 낳았고, 제이드는 입양된 뒤 지금까지 네덜란드 국적을 받지 못해 국적은 한국이라고 한다. 영어와 광둥어는 잘 하지만 한국어는 구사하지 못하며, 갓난 아기 때부터 외국에서 자랐기에 한국으로 입양될 경우 그 문화적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단다. 그래서 가능하면 한국보다는 홍콩에 있는 현지 교민들의 입양을 기대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외모와 국적은 한국인인데 한국어는 못하고, 한국문화가 생소한 제이드… 어린나이에 겪은 불행과 정체성의 혼란에 마음이 아파옴과 동시에 필요에 따라 아이에 대한 사랑이 변하는 비정의 부부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좋은 양부모를 만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내가 만난 한 아이를 떠올리며 위안을 삼아본다. 학기 시작 3주 전쯤에 사전 등록을 받는다. 새로 한국학교를 찾는 학생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맞는 것처럼 설레고 흥분된다. 새로 오는 학생의 정보를 정리할 때마다 소중한 보물이 쌓여가는 느낌이다. “학생이름 : 용기 Morgan / 아빠 : Smith Morgan / 엄마 : Susan Morgan” 부모의 성(姓)이 모두 Morgan 으로만 되어 있다. ‘이 학생은 엄마아빠가 모두 미국인인가???’ “용기 엄마입니다. 용기가 갓난 아이일 때 한국에서 입양했어요… 저는 용기가 모국 ‘한국’에 대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저희 부부가 ‘용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한국학교에 보내고자 합니다… 작년에 한국학교를 알았는데 4살부터 가능하다고 해서 1년을 기다렸답니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음성이 살아 움직이며 마음 안에서 심장과 함께 두근거린다. 서류상, 생활상 내 아이가 되었지만 나와는 다른 '인종적' 정체성을 찾아주어 그가 성장하면서 겪을 세상에서 바로 서게 해주려는 배려… 양부모는 용기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단순히 아이를 좋아하는 외골수 적인 사랑이 아니라, 폭넓고 다양한 각도로 본 사려 깊은 사랑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며 입학원서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한글 이름 쓰는 난에 또박또박 ‘한글’로 쓰여진 ‘용기’ 라는 글자! 이 분들이 한글을 어떻게 배웠을까? 신기하고 감격스럽다. 대부분의 한국인 2세 부모들은 한글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한국이름 쓰는 난을 비워놓고, 미국 이름 쓰는 난에 ‘영어’로만 학생에 대한 정보를 쓴다. 그런데 한국과는 무관한 미국인 부부가 쓴 ‘한글!’ 그 글자는 내 가슴에 뭉클 들어와 감동과 감사로 메아리친다. 지금 내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용기 양부모님이 입학원서에 쓴 “한글이름, 용기” 라고 말하겠다. 드디어 06 가을학기 입학날. 백인 부부와 함께 나타난 용기! 까무잡잡한 피부색깔 때문인지, 작고 마른 체구 때문인 지 표정이 어둡고, 움츠려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옮겨 심은 나무가 주는 시들한 느낌이랄까? 나는 그를 꼭 안으며 고국의 품 같은 푸근함을 느끼기를 바랬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국에 관한 것을 접할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었던 반면, 그렇지 못한 용기는 처음 대하는 한국 사람, 낯선 한국어가 영 어색한 분위기다. 게다가 유난히 수줍을 타고 내성적인 성격이었기에 학급에서의 적응 또한 쉽지 않았다. 결국 5분을 못 넘기고 자주 움직이며 교실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보조 교사가 용기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잘 못 알아듣는 가 싶으면 영어로 얘기해주는 등 곁에서 도와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유난히 우울해 보였던 용기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위안 삼으며 그렇게 몇 주를 보냈다. 용기 부모님은 용기가 태어난 나라에 대해 알고, 용기의 모국 사람들과 만나는 일 자체를 즐겨 하셨다. 둘째 주에는 보행기에 남자아이를 태워 함께 오셨는데 그 아이 또한 한국아이다. 용기 동생이란다. 생김새가 용기와 너무 흡사해 순간 형제를 같이 입양한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니란다. 이름을 물어보자 영어 이름 대신 ‘일환’이라는 어려운 한글이름을 발음하며 내가 잘 못 알아듣자 글로 써주는데 역시 ‘한글’이다. 어디서 한글을 배웠냐고 물으니까 배운 것이 아니라 한글로 쓴 그 글자를 ‘외운 것’이란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쓸 수 있는 한글은 쉬운 ‘가나다’가 아니라 ‘용기, 일환’ 이렇게 딱 4글자인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받은 그 아이만의 고유한 이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한글 4자’를 열심히 외우신 양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한국인 틈에서 어색하기도 할 텐데 ‘학부모 회의’에도 참석하셔서 참 고마웠다. 교장 인사 순서 때, 그 날은 특별히 용기어머님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 한국말을 모르는 2세 학부모의 증가로 한국어/영어, 두 언어로 인사를 해야 한다. 용기어머님을 소개해 드렸다. 그리고 입학원서에 쓰여진 ‘한글이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용기어머님이 찾아 오셨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어서 고맙다고… 그러나 나는 더욱더 고마웠다. 성장을 위한 영양보다 '정서적 영양'이 더욱 중요한 시기의 용기에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사랑을 듬뿍 받게 하고, 그 사랑이 넘치고 넘쳐 한국학교까지 찾아주었으니 그 감격과 감사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용기어머님은 학교에서 보내주는 안내서를 꼬박꼬박 챙겨가며 용기의 한국학교 교육에 정성을 다했고, 그 결과 한국인 부모를 둔 아이들과 똑같이 용기는 숙제 또한 매주 빠짐없이 해올 수 있었다. 공개수업 일에는 부부가 와서 수업을 참관하며, 한국 노래와 율동도 배우면서 그들이 너무도 사랑하는 용기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에 용기는 오지 않았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용기의 모습이 떠오르며 예전 애나벨 생각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가 왔다. “용기가 한국말이 서툴다 보니 수업에 잘 적응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낯선 환경에 두기에는 용기가 너무 어린 것 같고요… 이러다 영어도 안되고 한국말도 안되겠어요. 영어로 한국어 수업을 할 수는 없을까요? 그러면 용기가 잘 알아듣고 그렇게 산만하지는 않을 텐데요. 용기에게 물어보니 용기도 한국어 수업 받기 싫다고 하네요…” “아니요… 아이들은 일단 한국말을 많이 들어야 해요. 용기 나이에는 언어를 공부로 하기보다 그 환경에 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용기가 힘들어 해도 한국어, 한국 사람이 있는 환경에 두셔야 합니다.” “아니요… 용기가 힘들어 하니까 한국어 수업을 쉬게 하고 싶어요. 그러나 태권도 시간은 참 흥미있어해요. 그래서 태권도만 시키고 싶습니다…” “처음보다 점점 나아져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고, 표정도 많이 밝아졌어요. . 용기는 이 시기를 피할 것이 아니라 잘 ‘극복’해야 합니다…” 너무나 간절한 마음으로 30분 넘게 통화를 했건만(부족한 영어로 어찌 그리 오래 통화했는 지 끊고 나니 신기할 정도다.) 아이들이 흥미 있어 하는 것만 배우게 하는 미국인들의 보편적인 교육관처럼 결국 용기 부모님은 한국어 수업은 중단시키고 태권도 수업만 보내셨다. 그리고 그 다음 학기에는 아예 등록을 안 하셨다. 용기가 좀 더 커서 수업시간에 잘 적응할 수 있을 때 다시 보내겠다고… 나는 무척 아쉬웠지만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비록 한 학기였지만 한국학교를 찾아내어 한국사람을 만나고, 한국문화를 접하게 해 준 용기 부모님의 ‘의식있는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랑이 있는 한 용기는 자신의 뿌리는 ‘한국’임을 잊지 않고, 한국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계속 가질 수 있을 테니까… 태어난 나라와 길러준 나라가 다른 용기... 비록 유전적 환경이 확연히 다른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그 유전의 '다름'을 극복하고도 남을 양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기에, 그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행복하게 자랄 것이다. 훗날 그가 비록 ‘외국인’으로서 고국을 방문할 지라도 정체성의 혼란기를 잘 극복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당당한 걸음을 내디딜 것을 믿으며, 그의 미래가 더욱 밝고 굳건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