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교육청은 초등학교
한자 교육 시행을 중단하라!
서울 강남교육청은 교육청 특색 사업이라면서 10월부터 관내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최소한 900자의 한자를 익히도록 하며, 이를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한자 교재를 나눠 주기로 했다고 한다. 강남구청에서는 예산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는 소식도 보도되었다. 한 사람의 교육장이 교육과학기술부의 승인도 없이 불법으로 교재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은 올바른 교육자의 태도인가? 우리 아이들에게서 가까스로 벗겨 준 한자의 멍에를 강남교육청에서 다시 지우려 하는 처사는 어린이 학대 정책에 불과하다.
우리는 광복된 뒤에도 한자 사용의 폐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여, 오랫동안 교육계와 학계에서 소모적 논쟁을 펼친 끝에, 마침내 아이들의 어깨에서 무거운 한자의 짐을 내려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정신 활동이 강화되었고, 한자에 비해 수백 배 뛰어난 표기 수단인 한글의 잠재력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한글의 잠재력이 겨우 일부분만 개발되었을 뿐인데도, 여기에 한글세대의 창조적 정신 활동의 성과가 보태어져,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첨단 정보산업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교육 일번지로 자처하는 강남교육청이 다시 어두운 과거로 뒷걸음질 치는 한자 교육을 시행하려 하는 것은 교과과정에도 없는 억지 교육을 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영어 숭배 사상이 사회 전반에 걸쳐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고 있는 판국에, 이미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는 한자의 망령까지 초등 교육에 다시 끌어들인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한자 교육 시행의 바탕에는 요즘 아이들의 어휘력 부족이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자낱말의 뜻을 알기 위해 그 한자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파탄’이나 ‘궤변’ 같은 낱말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것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자낱말은 한자로 써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은, 한글만으로 적은 글은 자주 읽어 보지 못하고 한자를 섞어 쓴 글만 주로 읽어 온 기성세대의 습관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이요 궤변이다.
우리의 글자살이는 이제 거의 한글만 쓰기로 굳어졌다. 나라 안의 거의 모든 출판물이 한글만으로 펴내어지고 있으며, 오랫동안 이에 저항하던 일간신문들도 한글 전용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한자에 대한, 한글의 절대 우수성에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글자의 역사는 복잡하고 어려운 데서 간단하고 쉬운 데로 흐르는 것이지, 그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흐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남교육청은 초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부활시키려는 교육 처사를 지금 곧 거두어야 한다. 학교 교육을 과거로 되돌려 옛 서당식 교육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21세기 첨단 정보화 시대에도 역행하는 일이며, 우리 겨레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창조적 정신 활동을 가로막는 죄악이다. 그리고 강남교육청의 한자 교육 시행은 현행 교육과정을 위반하는 처사임을 지적하며, 서울시 교육감은 이러한 위법적인 처사를 당장 바로잡기를 촉구한다.
초등 교육의 본질을 망각하고 끝내 이번 처사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한글문화 관련 단체를 비롯한, 우리 말과 글을 사랑하는 칠천만 겨레는 결코 이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2008년 9월 18일
한글 학회(회장 김승곤)
세종대왕 기념사업회(회장 박종국)
외솔회(회장 최기호)
한글문화연대(대표 고경희)
한말글 문화협회(대표 문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