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님께 드리는 청원서>
조선어학회 순국선열 추모탑 건립의 일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식민통치가 자행한 가장 잔혹한 민족말살 책동이었으며 우리로서는 가장 처절하고 치열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조선어학회 선열들은 암울한 식민통치 아래서 장차 독립을 기약하는 길은 오직 우리 말글을 지키는 데 있음에 뜻을 모으고 일찍이 한글맞춤법 통일안과 표준말을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천신만고 끝에 무려 16만 어휘를 수록하는 최초의 ‘조선말큰사전’ 편찬에 착수하였습니다. 이를 탐지한 왜경이 1942년 10월 사전 편찬을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33인의 우리 말글 학자들을 함흥 형무소에 구금하고 모진 고문을 가하여 이윤재, 한징 두 분이 옥사하고 다른 분들은 광복과 함께 반주검 상태로 풀려났습니다. 우리 독립운동사상 가장 처절하고 가장 빛나는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의 거룩한 희생이 아직 역사의 그늘에 묻혀 있으니 어찌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계 역사상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하여 이렇게 피나는 투쟁을 한 사례도 없거니와, 그 빛나는 유업을 계승하고도 한 조각 은혜로 기억하지 못하는 못난 겨레도 없습니다.
듣건대, 서울시에서 세종로 일대를 한글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려 한다 합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세종대왕께서 굽어보시는 세종문화회관 옆자리나 현대 역사박물관 뜨락에 ‘조선어학회 순국선열 추모탑’을 크게 세워 온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문화혼을 널리 알리고, 후손들에게는 선열들의 거룩한 뜻을 길이 전하는 역사의 표상이 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화의 거리는 외형으로 꾸미는 것보다 역사로 채우는 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모쪼록 시장님께서는 우리 학회 칠천 회원이 백년 역사를 딛고 드리는 간절한 청원을 깊이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2010. 12. 20.
한글학회 회장 김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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