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뜻말맛] ‘기쁘다’와 ‘즐겁다’ / 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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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서 ‘기쁘다’를 찾으면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나다.” ‘즐겁다’를 찾으면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 이렇다. 기쁘다와 즐겁다는 같은 뜻을 지녔다는 소리다. 같은 뜻이라면 무슨 까닭에 다른 낱말을 쓰겠는가? 둘 다 느낌을 뜻하는 말이다. 그냥 느낌일 뿐만 아니라 좋은 쪽의 느낌이다. 마음이, 기분이, 몸까지도 좋다는 느낌이라는 쪽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두 말은 느낌이 오는 뿌리에서 다르다. 좋다는 느낌의 뿌리가 마음 깊숙이 박혀서 몸으로 밀고 나오면 기쁜 것이다. 좋다는 느낌의 뿌리가 몸에 박혀서 마음으로 밀고 들어오면 즐거운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기쁘다’는 느낌은 마음에서 오고 ‘즐겁다’는 느낌은 몸에서 온다.
일테면, 달고 향긋한 참외를 맛나게 먹으면 즐겁다. 눈으로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보거나 좋은 영화를 보아도 즐겁다. 이런 즐거움들은 모두 입·눈·귀와 같은 몸이 먼저 좋고 나서 마음으로 좋음이 번져 들어온다. 한편, 전쟁에 나갔던 아들이 탈없이 집으로 돌아오면 어버이는 기쁘다. 몸져누우셨던 어버이가 깨끗이 나아 일어나시면 아들딸은 기쁘다. 이런 기쁨들은 어느 것이나 몸과는 상관없이 먼저 마음속에서 좋고 그런 다음 몸으로 좋음이 번져나간다. ‘기쁨’은 혼자 마음속에 간직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으나 ‘즐거움’은 홀로 가만히 감추고 있기 어렵다. 즐거운 것은 몸과 더불어 바깥으로 드러나기 마련이고 남들과 함께 나눠야 제격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왜냐면] ‘기쁘다’와 ‘즐겁다’에 대한 다른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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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는 좋은 일이 눈앞에 생겨 느낌이 곧바로 오는 것이다. 반면에 ‘즐겁다’는 좋은 기분이 꾸준히 유지되는 것이다.
5월29일치 〈한겨레〉 ‘말뜻 말맛’에 실렸던 “‘기쁘다’와 ‘즐겁다’”를 잘 읽었다.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는 김수업 선생의 뜻에 매우 공감한다. 하지만 이 글에 약간 이견이 있다. 김 선생은 ‘기쁘다’는 느낌은 마음에서 오고 ‘즐겁다’는 느낌은 몸에서 온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기쁘다’는 좋은 느낌이 ‘곧바로’ 오는 것이고 ‘즐겁다’는 ‘지속되고 있는’ 그 시간적 차이에서 구별되는 것이라고 본다.
‘기쁘다’는 좋은 일이 눈앞에 생겨 느낌이 곧바로 오는 것이다. 김 선생이 든 보기들, 곧 “전쟁에 나갔던 아들이 탈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 어버이는 기쁘다”나 “몸져누우셨던 어버이가 깨끗이 나아 일어나시면 아들딸은 기쁘다”가 그런 보기들이다. 대학 합격이나 회사 취직도 ‘기쁜 소식’이다. 기쁜 일은 순간적으로 생기므로 그 반응도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기쁜 느낌은 얼굴에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희색이 만면하다”는 표현이 있다. 반면에 ‘즐겁다’는 좋은 기분이 꾸준히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즐기자’거나 ‘즐기며 살자’고 한다. 하지만 ‘인생을 기뻐한다’거나 ‘기쁘게 살자’는 말은 없다. ‘취미로 낚시를 즐긴다’는 말도 있다. 지금 낚시를 하고 있지 않아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지속되는 일에 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즐기다’가 김 선생 말처럼 몸에서 오는 느낌이라면 “독서를 즐긴다”는 표현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즐거우면 그 느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인생을 즐기는 사람의 얼굴이 진지하거나 심각할 수도 있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의 얼굴도 대개 덤덤하다. 그러나 월척을 낚은 순간은 ‘기쁨’이 얼굴에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기쁨’은 혼자 마음속에 간직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으나 ‘즐거움’은 홀로 가만히 감추고 있기 어렵다”는 김 선생의 말은 거꾸로 된 것이다. 오히려 “‘즐거움’은 혼자 마음속에 간직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으나 ‘기쁨’은 가만히 감추고 있기 어렵다”고 말해야 맞다.
〈논어〉의 첫 구절,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는 바로 이런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혀서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 곧바로 좋은 기분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반면에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면, 그 벗과 함께 공부도 하고 문학과 인생도 논하면서 지속적으로 좋은 느낌이 우러나오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요컨대, 자식을 낳으면 ‘기쁘다’. 그리고 자식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 ‘즐겁다’.
김창진 /초당대 교수·‘한국어 바르고 아름답게 말하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왜냐면] 다시 ‘기쁘다’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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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다’와 ‘즐겁다’는 저마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짝과 더불어 쓰인다. ‘기쁘다’는 ‘슬프다’와 짝이고, ‘즐겁다’는 ‘괴롭다’와 짝이다.
내가 쓴 ‘기쁘다’와 ‘즐겁다’의 뜻풀이(〈한겨레〉 5월 30일치)를 읽고 다르게 본다는 분이 있고, 그분이 그렇게 보는 바를 서슴없이 글로 써서(6월 9일치) 세상에 내놓으니 참으로 반갑다. 게다가 나에게 다시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니 신문 편집하는 분들 또한 고맙다.
내가 알기에 우리 토박이말의 뜻과 쓰임새를 놓고 옳고 그른 바를 따지고 밝혀 보자며 나서는 사람도 일찍이 없었고, 우리말의 뜻과 쓰임새를 두고 생각을 나누도록 자리를 마련한 신문도 일찍이 없었다. 그만큼 우리 토박이말은 생각하고 따지고 밝힐 만한 것도 아니라고 여기며 살았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나는 더없이 반갑고 고맙다.
사실, 내가 ‘기쁘다’와 ‘즐겁다’의 뜻을 지면이 좁아 겨우 뿌리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김창진 교수처럼 고개를 갸우뚱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헷갈리게 써온 지가 이미 반세기를 넘어 머리에 남은 체험의 기억은 믿을 것이 못 되고, 지난날 쓰임새를 낱낱이 찾아 살피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까닭에 섣불리 나서서 가늠해낼 사람은 흔치 않다. 이제부터라도 짓밟히며 견뎌온 우리 토박이말을 살피고 돌보려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기쁘다’와 ‘즐겁다’는 내가 우리 토박이말에 처음으로 눈길을 돌린 스무 해쯤 들이께부터 마음에 걸려 있던 낱말이다. 그때 내가 몸담았던 대학에서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을 적에도 김 교수와 같은 의견을 내놓는 학생들이 있었다. 김 교수가 ‘기쁘다’는 “곧바로 왔다가 (사라지고)”, ‘즐겁다’는 “꾸준히 이어진다”고 했는데 그런 느낌도 뿌리가 마음에 내린 것과 몸에 내린 것의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쉽게 가닥이 잡혔다.
김 교수는 두 낱말이 쓰이는 보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가운데는 헷갈려 쓰인 것도 없지 않으나 거의는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 뿌리가 속의 마음에서 오는 것과 겉의 몸에서 오는 것으로 밝혀지는 것들이다. 일테면, 〈논어〉에서 보기를 끌어왔는데 그것은 중국 글말을 뒤친 것이라 꼭 마땅한 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침은 요즘처럼 헷갈림이 없던 지난날 우리 겨레의 쓰임새라 살펴볼 값어치가 있다.
알다시피 ‘기쁘다’는 ‘열’(說=悅)을 뒤치고, ‘즐겁다’는 ‘락’()을 뒤친 말이다. 그런데 열(悅)은 ‘마음’(心)이 ‘풀어짐’(兌)을 뜻하는 글자고, 락()은 ‘큰북’(白)과 ‘작은북’( ‘나무받침’(木)에 올려놓고 두드린다는 뜻으로 만든 글자다. 이것으로도 ‘기쁘다’가 마음에서 오고 ‘즐겁다’가 몸에서 온다는 느낌의 뿌리를 올바로 가늠할 만하지 않은가!
그리고, ‘기쁘다’와 ‘즐겁다’는 저마다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짝과 더불어 쓰인다. ‘기쁘다’는 ‘슬프다’와 짝이고, ‘즐겁다’는 ‘괴롭다’와 짝이다. 그런데 ‘슬프다’는 속인 마음에서 솟아나 몸으로 퍼지는 느낌이고, ‘괴롭다’는 겉인 몸에서 일어나 마음으로 들어가는 느낌임을 좀 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줄 안다. 그러나 내 뜻가림도 온전하다고 우길 생각은 없다. 우리 함께 깊이 살피고 헤아리며 밝혀가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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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쁨'과 '즐거움'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 dongsanp ┼
│ 수고 많으십니다. 낱말 뜻에 궁금한 것이 있어 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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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쁘다(喜)와 즐겁다(樂)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 같은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일반 국어사전을 봐서는 그 미묘한 뜻의 차이를 알 수가 없어서 여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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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엠파스 국어사전 검색결과
│ * 기쁘다: 마음에 즐거운 느낌이 있다. ¶더없이 기쁘다. ↔슬프다.
│ * 즐겁다: 마음에 흐뭇하고 기쁘다. 즐거-이[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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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