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 휴정(休靜)스님 지으신 선가귀감에 자신의 선교관(禪敎觀)을 매우 쉽게 표현한 것을 법정스님이 옮겨논 글에는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이다.'하셨는데 나름대로 옮겨보면 '참선은 깨달은 이 마음이고 가르침은 깨달은 이의 말씀이다.'라는 뜻이기도 헌데...
'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과 아난이다. 말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敎)다 또한 마음은 선법(禪法)이고, 말은 교법(敎法)이다. 법은 비록 한맛(一味)이지만 뜻은 하늘과 땅만큼 아득히 떨어져 있다.'
이와 같이 선과 교가 둘이 아님을 밝히면서도 먼저 깨달음을 주장하여 선을 우위에 두었다.그리고 선가(禪家)에서 흔히 무시해 버리거나 멸시하기 일쑤인 정토사상(淨土思想)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깨달으면 그만이라는 사이비선승들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인이 지녀야 할 일상적인 행동 규범을 간곡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선가에서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불가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요소를 간결한 말 속에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주로 출가 수행인을 대상으로 말하긴 하지만, 제정신을 지니고 살려는 일반인들에게도 지혜롭게 사는 길을 열어 보인다.
조선 중종15년(1520) 3월26일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나 아홉살에 어머니를, 열 살에 아버지를 잃고 의지할 데 없었는데 총명하고 글재주가 뛰어나 고을에 왔던 원이 서울 성균관에 넣어 주었다 그때 열두 살..그 후 지리산에 들어가 상계사 숭인(崇仁)화상을 만나 불경을 배우고 열여덟에 부용영관(芙蓉靈觀)선사에게 선을 배워, 스물한 살 때 알아차린 바 있어 비로소 계戒를 받고 스님이 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순아홉의 늙은 몸을 이끌고 승의병을 일으켜, 이때 팔도 십육종 도총섭에 임명되었다.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은 시를 지어 이렇게 칭송했다 '공명을 마다하고 도만 닦아 오시더니, 나랏일 위급함에 큰스님 나오셨네..'
서울을 되찾어 왕을 환궁케 한 뒤, 늙은 몸으로 군사를 맡을 수 없다고 사임, 제자 사명과 처영 두 사람을 천거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오가며 지냈는데 따르는 제자들이 항상 1천여 명을 넘었고 그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들만도 70여명이나...
손수 남기신 서문에 '부족한 내가 옛 글에 뜻을 두어 대장경의 거룩한 글로써 보배를 삼기는 하지만 그 글이 너무도 많고 장경의 바다가 하도 넓고 아득하므로 훗날 도반들이 가지를 헤쳐가며 잎을 따는 수고를 겪을까 하여 그 중 가장 요긴하고 간절한 것 수백 마디를 추려서 한 장에 써 놓았다. 글은 간단하지만 뜻을 두루 갗추었다고 할 만하다..' 가정嘉靖 갑자(1564년) 여름 청허당 백화도인 씀.
제자(사명대사)가 남긴 발문에는 '마침 큰스님께서 서산에 계신지 10년 동안 소를 먹이는 여가에 50여권의 경론과 어록을 보시다가 그 속에 꼭 필요한 말이 있으면 기록해 놓으시고 때때로 몇몇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양 떼를 먹이듯 하여, 지나치는 이는 누르고 뒤떨어진 이는 채찍질하여 크게 깨치는 문 안으로 몰아넣으려고 애를 쓰셨다.
허나 다들 어리석어 도리어 법문이 높고 어려운 것으로써 탈을 잡으므로 노스님께서 가련히 여겨 다시 각 구절마다 주해를 달아 풀이하고 여러 마디가 한 줄에 이어지고 핏줄이 서로 통하여 팔만대장경 요긴한 곳과 다섯 종파의 뿌리가 모두 여기에 갖추어진 것이고 말씀마다 이치에 들어맞고 구절구절이 깨우침에 들어맞아, 치우치든 이는 원만해지고 걸렸던 이는 통하니 참으로 선과 교의 거울이요 깨닫는데와 닦아 가는 길에 좋은 약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므로 추려낸 공로와 깨우쳐 준 은혜는 산같이 높고 바다처럼 깊다 이를테면 천 번 몸을 갈고 만 번 목숨을 바친들 어찌 털끝만큼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으랴, 천리 밖에서 듣고 보아도 놀라거나 의심하지 않고 받들어 보배로 삼는다면 참으로 천 년 뒤에도 밝은 등불이 될 것이다.
-만력 기묘(1579년) 봄 조계종 유손 유정惟政은 구결에 절하고 삼가 발문을 쓴다-
* 禪家龜鑑 깨달음의 거울 서산 지음 법정 옮김 (동쪽나라 초판3쇄 2006.11.30)
참선이란 '깨달은 이(붓다) 마음'같고, 모든 가르침(종교)은 '깨달은 이의 말'에 있다는 것이든가..?
얼이 말이구 말이 글이 됐다네 그리하여 얼말글 속에 깨우침이
늘 살고 있다는 구먼, 그려 그렇군 그러네 허허 허- 오늘은 이만 !
http://cafe.daum.net/nicebook 말없이 옮겨선 안돼는 글..? 좋은책나눔에서 이풀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