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한글날과 우리글자의 세계화 .........고준환 박사의 발표문
(1번에서 계속 됩니다.
3.한글의 원형-정음正音 가림토
현재 우리나라 옛글자로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경남 남해섬 이동면 낭하리 바위글자로서 상형문자
- 평북 정주군 대산리 질그릇 부호 글자
- 경북 울주군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 글자
- 중국 섬서성 백수현 창힐사당의 새 발자국 글자와 한갈래 글자로서 영변지에 있는 16자 신지 글자.
- 해동 죽지에 기록된 평양 법수교밑 비석에 새겨진 신지神誌글자
- 일본 이세신궁에 가림토와 같은 아히루문자 문헌 99점田多井四朗治의 日本神代文字論
그러면 훈민정음은 세종이 처음 창제한 것인가? 아니면 재창제된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세종때 반포한 한글이 전서篆書인 가림토 문자를 본받아 만들었다는 것은 단군조선 때 가림토 문자 38자 중에서 10자만 빠진채 한글의 원형이 되었다는 것과 「세종실록」, 정인지의「훈민 정음 시문」, 신경준의 「세종대왕 훈민정음」기술 등에 옛글자를 본받아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 23년 반포한 글을 세종실록 103권에 실었는데, 그것은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글자는 아니다. 언문은 전조선前朝鮮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라는 것이다.(최만리의 상소문 등)
또 세종실록 25년 계해년(단기 3776년) 12월 초에 “10월초 친히 말글 28자를 만드시니, 그 글자는 옛 전자古篆字를 모방하였다”고 되어 있다. 한글은 세종때 옛글자를 모방해 재창제되었다는 것이다.(字倣古篆)
그러면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는 언제 창제되었는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단기고사를 보면 단군조선 3세 가륵단군 2년(단군 152년 경자)에 단군이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바른소리) 38자를 만들게 했는데, 이를 가림토加臨土, 가림다伽臨多 또는 가림땅글이라고 했다.(黃海道 白岳山 馬韓村에 고비문있음)
38자는 ? ㅣ ㅡ ㅏ ㅓ ㅗ ㅜ ㅑ ㅕ ㅛ ㅠ × ∃ ㅇ ㄱ ц ㅁ ㄴ ㅿ ㅈ ㅊ ㅅ ? ㆆ ∧ м р ㄹ ㅐ ㅒ ??? ??? ㅊ ? Ι ㅍ ??? 등이다.
가림토문자는 현재 한국에서는 남해섬의 계문자와 유사하고 그 밖에 사용된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없으나, 외국인 일본, 인도, 스리랑카, 볼리비아 등에는 가림토가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글 원형인 가림토는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일본에 전해져 신대神代문자인 아히루문자가 되었는데, 이는 지금 대마도 이즈하라의 대마도 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 등에 보관되어 있다.
가림토문자는 그밖에 몽고 파스파문자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서부 인도 해변에 가까운 구자라트 주 글자와 비슷하고(드라비다 족), 2300년전에 지은 스리랑카 캔디시 부근 패엽경사 바위에도 사찰건립시에 쓴 것으로 보이는 글자가 가림토와 비슷하고, 남미의 볼리비아 원주민 글자도 가림토와 비슷하다고 한다.
최근 중국 산동성 환대桓臺 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지하 6m 깊이에서 발굴된 녹각에 새겨진 人 ㅈ X T 등의 문자)는 C14 측정결과 지금으로부터 3850년전의 것으로 확인되어, 환단고기의 가림토문자가 4천년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 일본 구주의 마토노 신사의 돌비석에서 해독 가능한 가림토문자가 발견되어 사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재야 사학사인 김인배?김문배 형제는 단기 4327년 12월 1일 일본 구주 미야지키 현 기타모르가타군에 있는 마토노 신사의 4개 석비에 각각 가림토문자가 새겨져 있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들석비에는 「미 ㅇ ㅜ 디 니 시 ㅇ ㅗ 이 디 너 ㅁ ㅜ」「시 바 ㅅ ㅜ 기 디 니 디」「다 더 마 ㄷ ㅜ 그 ㅜ」등이 새겨져 있다.
김인배씨는 이를 해석하여 「서방정토를 향한 영면이므로, 감은 눈속에서 지향하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축원하며, 잡목의 삼나무땅에 그 영혼을 봉안하노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상고사에 있어서 배달국시대에는 문자로서 신지혁덕이 만든 녹도문鹿圖文, 자부선인이 만든 비글雨書, 꽃글花書, 산목, 각필 등이 있었으나, 원시적인 것이었고, 천지인天地人 합일인 신선도 실천의 하나로 멋진 문화글자가 이루어진 것은 가림토라 하겠다.
4.한자는 본래 우리글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일만 달러가 넘어가도 국가의 기초가 흔들리는 것은 학문적으로 국학國學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사학에서는 사대식민사학과 계급사학을 극복하는 일이 긴요하고, 국어학에서는 국자정책이 확정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정책에 있어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한자문제다.
우리나라 교육당국은 한자가 우리나라 글자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기본정책을 확립하지 못하고 한글전용이니, 국한國漢혼용이니 하여 갈팡질팡하였다.
이를 해결하려면 먼저 한글과 한자의 국적을 살피고, 시대에 맞는 국자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존재론적으로 한글은 물론, 아시아의 국제어인 한자도 본래는 우리 글자라는 것이다. 한글은 양서이고 한자는 음서이다. 음양이 합해야 화평을 이룬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대중시대이므로, 한글을 대중적 입장에서 기본으로 쓰면서 한자도 우리 글자이기에 필요에 따라 당당히 자유롭게 써야 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지금까지의 고정관념(한자는 중국글자라는)과 달리 한자가 본래 우리 글자인가?
한자의 창제에 관하여 특정인이 그 많은 한자를 한꺼번에 전부 제작하기는 힘들 뿐 아니라 이는 지혜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산물이므로 그 체계적 집대성 작업의 공적을 세운 이를 찾는 일이 중요하다 하겠다. 많은 자료가 고대 우리민족인 동이족의 창힐倉? 씨에게 그 공을 돌리고 있는 것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언어학계의 통설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외국에서 수입했다는 국사상 기록이 전혀없는 것은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힐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면 복희伏羲의 팔괘창작설을 비롯, 주양?저송?거려 등에게도 기원을 두고 있지만, 창힐설이 중국에서도 보편화되어 있다.
순자 해폐 편에는 “일을 좋아하는 자가 많았지만, 창힐이 홀로 전한 것이다.” 한비자 오두 편에 “창힐이 글자를 만들었다.” 여씨춘추 군수 편에 “창힐이 처음으로 글자를 만들다.” 역대신선통감에“창힐이 문자를 만들다” 등이 그것이다(참조 許世旭 , 中國文化槪說, 法文社)
배달국의 창힐 씨는 천부경, 삼일신고, 음양오행서 등 신선도의 경전사상을 바탕으로 새발자국, 새의 깃털, 거북무늬, 물고기 등을 보며, 신지현덕의 녹도문, 복희씨의 팔괘 등 고문자를 집대성하여 한자를 정리함으로써 문자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창힐씨의 한자제도에 관련하여 역대 신선통감이 기록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창힐씨의 성은 원래 후강侯岡이요, 이름은 힐?인데, 동이인인 진창인陳倉人이므로 창힐이라 했다. 창힐은 천지의 변화를 궁리하고 위로 별들의 원곡圓曲을 관찰하고, 복희씨 앞 하상河上에서 문자를 만들었다.
문자는 6서書의 체體로 만들었다. 그 여섯 가운데 1은 상형象形, 2는 가차假借, 3은 지사指事, 4는 회의會意, 5는 전주轉注, 6은 해성諧聲이다.
한자는 본래 우리 글자이고 지금은 아시아의 국제문자이므로 우리는 한글과 함께 한자를 우리 글로 알고, 대중시대에 맞춰 한글을 기본으로 하되, 한자도 우리 글로써 필요에 따라 당당히 써야 하겠다.
5.일본어와 영어의 기원 - 고대한국어
다음엔 한국어와 일본어 및 영어의 기원 관계이다.
일본 동경대학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교수는 서기 7세기말 현재 한반도에서 건너간 일본 이주민이 약 80~90%이며, 원주민은 10~20%로 이때까지도 야마도大和나 아스카飛鳥 사람들은 한국의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신화도 한국신화가 태반이고 한국어를 사용하였다 한다. 『일본서기』고대어는 한국어로 쓰였으며, 적어도『일본서기』와 『만엽집』의 7세기 이전 노래들은 한국어로 쓰였다 한다. 일본사의 천지개벽신화는 한국이 1차적이고, 2차적으로 일본 섬들이 창조되었으며, 천조대신은 일신日神으로 천국天國, 韓國에 있고 월신月神은 한국과 일본사이 바다를 다스리고 소잔명존은 일본을 다스린다고 하였다.
일본어의 뿌리는 알타이어계인 한국어이며, 백제가 망하고 일본이 신생하면서 일본어는 고대 한국어로부터 독립하여 현대 일본어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단군조선 시대에 왜국은 조선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가림토와 한자를 쓰고 말도 같았으며, 조선의 이두吏讀: 鄕札인 가명假名도 그대로 쓰이는 등 서기 7세기 후반기까지는 동경대 하니하라 교수 말처럼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한다.
『일본어 뿌리는 고대 조선어였다.』를 쓴 박병식(朴炳植, 일본 島根대학종합연구소 객원연구위원)씨도 일본에서 오래 살면서 연구한 결과 일본말은 소리변화 법칙이나 대명사의 대응으로 보아, 그 뿌리는 우리말이라고 주장했다.
전 20권에 4516 수나 되는 일본 최고의 노래묶음인 『만요슈萬葉集』가 우리말로 읊은 노래를 일본식 향찰로 표기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만요슈가 의미불통이요, 난훈가難訓歌이며, 마쿠라고도바枕詞라 하여 해석되지 않고 제쳐버린 마디가 1078 구나 된 채 방치된 원인을 규명하여 한?일 양국에서 주목을 받은 이영희씨는 ?우리말이 일본에 가서 일본말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또 한국어로부터 소리의 옮김, 뜻의 옮김, 한자를 통한 소리와 뜻의 옮김을 거쳐서 일본어가 고대 한국어로부터 독립하여 현대 일본어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지적한 것을 참고하여 구체적으로 살피면, 상고시대로부터 일본이 신생할 즈음까지는 한국말과 이두가 그대로 쓰였고, 서기 759년 마지막 작품이 실린 언어문화의 혁명기 작품집인 『만엽집』에는 ?한?일의 음?훈법?으로 읽는 혼독混讀의 표기로 되어 있어 읽기가 어려우나, 당시의 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은 사실이어서 만요가나萬葉假名라 한다.(서기 8세기 중반 이후에는 우리 이두로 쓰는 표기는 없어짐)
그 뒤 일본은 서기 10세기 이후平安朝 한자의 초서체에서 본을 따 히라가나平假名를 만들고, 한자의 일부를 따서 표음문자를 만든 가다가나片?名를 만들어 쓰면서 도쿠가와德川 막부 때까지는 한국과 사실상 국교를 단절하여 양국 사이에 많은 언어차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계통의 언어임을 증명하자면 조어祖語인 신체어?천체어?수사가 서로 대응하여 일치되어야 하는데 현재 서로 대응되는 한?일 두 나라말의 수효는 1천여 단어라 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몇 가지만 비교 대응해 보기로 한다.
<일본어>
<한국어>
가사笠
→
갓
시마島
→
섬
고야산高野山
→
고야산
마쯔리祭り
→
맞으리神
자루ざる
→
자루
사무라이さむらぃ
→
사울아비
조로조로
→
졸졸
스루스루
→
술술
도로도로
→
돌돌
고오리
→
고을
무라
→
마을
무레
→
무리
이후
→
입
기꾸
→
귀
`
(졸저. 하나되는 한국사. 범우사. 1991. pp.298~302 참조)
끝으로 영어나 미국어는 지금 세계 제일의 유력어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그 영어의 대부분이 고대 한국어(동이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어나 미어는 라틴(Latin)어(고대 로마어)에서 왔고, 라틴어는 고대 그리스어, 그대 그리스어는 인도?유럽어(Indo-European)에서 왔고, 인도어는 고대 한국어인 동이어에서 왔다. 약 2천년 전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사해문서에는 帝, 日, 屍 같은 한자가 발견되었다. 영국인 월리암 존스는 유럽제어는 인도고어 산스크리트어에서 왔다고 말했으며, 독일학자 쟈콥 그림은 서양 언어학 발달을 연구 비교하여 동이어에서 산스크리트어가 왔다고 말했다.
예하면, 반야심경 끝의 반야바라밀주문 “가데가데 파라가데 파라상가데 보리사바하”는 우리말 “가세가세 건너가세 모두 건넜네. 깨달음, 원만성취여”에서 온 것으로 보여진다.
영어의 중요 어근 333개 중에 약 70% 어근이 동이어에서 왔으며, 언어의 흐름도 역학易學 상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간방(艮方 → 東北方)인 한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에서 끝난다고 한다. (박대종. 나는 언어정복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대종언어연구소. 1999.8.28 참조)
실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영어에서 동서문화를 잇는 말 가운데 실크로드(silk road, 비단길)의 silk는 한국어의 ?실?과 ?깁(다)?에서 왔다 한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이기문李基文 교수는 1991년 2월 22일 ?한국문화와 실크로드?를 주제로 한 경주 세미나에서의 발표문 ?한국문화와 실크로드?에서 silk에 관하여 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1969)는 Korean sil로 표기한 바, 한국어 ?실?은 제사기술이 발달한 이후의 산물이며 견직물은 ?깁絹日及이라 했는데, ?실깁?에서 ?실크?라는 말이 생겼으며 몽골어로는 silk를 Kib이라 한다고 밝혔다.
I go(to)Korea town → 我去高麗屯
I sent(to)you → 我送汝
그밖에 영어의 여러 가지 말이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실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視(시) → see
誦(송) → song
費(비) → fee
病(병) → pain
地(지) → geo
民(민) → men
旦(단) → dawn
液(액) → aqua
萬(만) → many
汝(여) → you
願(원) → want
阿斯達(아사달) → avatar
達(딸 달, 땅) → tata(terra)
朴(박) → bark
戀(연) → yearn
愉感(유감) → euphoria
鉢(발) → bowl
桶(통) → tank
ㅅ백 → 白(백) → speak
腿(퇴) → thigh
送(송) → send
畏(외) → awe
鋒(봉) → point
涕(체) → tear
光(광) → candle
索(색) → search
色(색) → sex
拉(납) → rap, nap
굿 → good
오르가슴(가슴에 오름) → orgasm
肋(륵, 갈비) → rib
樂(락) → love
職(직) → job
宿(숙) → sleep
室(실) → cell
戶(호) → house
숯 → soot
怖(포) → fear
우리는 위에서 한국어와 일본어 및 영어의 기원관계를 살펴보았다.
이와 같이 국사, 국어 정책에 관련하여 우리는 중심을 잡고 정체성을 찾아 국기를 튼튼히 한 후에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민족의 전통을 지키며, 민족이익을 추구하고 민족의 비젼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비전은 열린 민족주의와 확립된 국학 위에 민주통일복지民主統一福地를 이루고 더 나아가 하나의 평화세계를 달성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글자인 한글은 물론 한자가 우리글자이며, 세계 주요 언어의 기원이 된 것을 널리 알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적극적 세계화에 나서야 할 소이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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